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새벽 요란한 경보…그런데 어디로 대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서울시가 31일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직후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를 발령했으나 행정안전부가 약 30분 만에 “서울시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라고 정정하면서 시민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 이날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의 스마트워치에 위급재난문자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1일 북한의 우주발사체 발사에 따른 서울시의 경계경보 오(誤)발령 소동은 재난안전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사이 소통 부족과 기계적인 매뉴얼 대처에 따른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이른 새벽부터 960만 서울시민을 혼란에 빠뜨린 이날 소동은 지난 6년간 북한의 공습 상황 등을 가정한 민방위 훈련이 실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관(民官)의 구멍 뚫린 ‘비상대비’ 실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대피 이유와 대피소가 담기지 않은 허술한 위급재난문자에 시민들 불만이 쏟아졌다. 행안부 국가재난안전포털이나 안전디딤돌 애플리케이션에는 비상시 행동요령도 나와 있고, 집·직장 주변 ‘민방위 대피소’도 안내돼 있다. 하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평소 훈련을 하거나 홍보를 널리 하지 않으면 시민들이 알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과거에는 민방위 훈련을 통해 이를 숙지해 왔지만, 전국단위 민방위 훈련은 2017년 8월 이후 폐지됐다. 이후 대비가 없었던 탓에 갑자기 발생한 상황에 모두가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비상상황에 대비해 시민 개개인이 인근 대피소 위치나 안전조치 방법을 스스로 숙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6시41분 “오늘 6시32분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란 내용의 위급재난문자를 보냈다. 동시에 일부 지역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방송을 들으면서 지시에 따라 행동하라. 실제 상황”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북한은 이날 군사정찰위성을 탑재했다고 주장하는 우주발사체 ‘천리마-1형’을 쐈지만 로켓 엔진과 연료 결함으로 실패했다. 북한은 발사 2시간30분여 만에 이를 공식 발표했다. 대통령실은 북한 발사체를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했다.

경계경보는 적(敵)의 공격이 예상될 때 발령하는 민방공 경보다. 공습경보보다는 한 단계 아래다. 그러나 이날 무슨 일 때문에 경계경보가 발령됐는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등의 내용은 재난문자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경계경보 문자와 방송 내용은 행정안전부 예규인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나와 있는 표준문안을 그대로 전송한 결과였다. 이 예규 10조 2항은 재난정보 입력자가 재난정보 입력 시 표준문안을 활용하되 재난 상황에 맞는 문안으로 수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이날 사용기관명을 행안부에서 서울시로 바꿨을 뿐 표준문안을 그대로 전송했다. 이와 달리 일본 정부는 이날 오키나와현에 전국순시경보시스템(J-ALERT)을 발령하면서 주민들에게 발송한 문자에 ‘미사일 발사,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대피하라’는 구체적 내용을 담았다.



일부 지역, 사이렌에 “실제상황” 방송까지…경보 ‘오발 소동’



중앙일보

북한이 31일 오전 6시29분쯤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이날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위급재난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위급재난문자의 발송 시간이 한발씩 늦은 것도 논란이다. 이날 북 발사체에 따른 첫 위급재난문자는 경계경보 발령(오전 6시32분) 9분 뒤 발송됐다. 발사 시점(오전 6시29분)으로부터는 12분 뒤다. 서울시 민방위경보통제소가 행안부 중앙통제소의 ‘지령 방송’을 받은 뒤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 위급재난문자 등록→서울시 승인→문자발송 과정을 거쳤는데 9분이 걸렸다.

행안부와 서울시의 비상상황 대응 과정에서 엇박자도 문제다. 행안부 민방위 경보 발령·전달 규정 6조에 따르면 민방공 경보 발령 단계와 시간은 모두 군(軍)에서 지정한다. 지자체장이 자체 발령할 수 있는 ‘재난 경보’와는 다르다. 그런데 서울시가 군에서 요청이 오지도 않았는데도 행안부 중앙통제소의 ‘백령면·대청면에 실제 경계경보 발령.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을 담은 지령 방송을 ‘발령 행위’ 요청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이날 오전 6시41분 서울시가 발송한 서울지역 경계경보 발령 위급재난문자, 7시3분 행정안전부가 서울시가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임을 알리는 정정 문자, 7시25분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발령 해제 문자.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 민방위경보통제소 측은 “우리는 중앙통제소가 발령 행위를 요청하면 이에 따라 발령 행위를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군에서 판단한 발령 지역(백령면·대청면)을 17개 시·도에 전달만 했을 뿐이다. 발령 지역 판단은 군에서 해야 한다. 행안부는 물론 서울시가 판단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날 시민들은 문자 안내가 늦은 데다 대피 이유와 장소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27)씨는 “만약 미사일이 서울로 발사됐다면 문자를 받았을 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에 사는 이모(52)씨는 “대피하라고만 나와 있고, 왜 대피하라는 건지 나와 있지 않아 뭘 할 수가 없었다”며 “뭔 일인지 알아야 그에 맞춰서 적절한 곳에 대피할 거 아니냐”고 했다. 문자 수신 직후 네이버 앱부터 열어 본 대학생 김지은(21)씨는 “잠깐이었지만 앱도 먹통이라 정말 무슨 일이 났나 싶었다”며 “대피소가 어딘지 몰라 허둥지둥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안전디딤돌


전문가들은 이번 소동을 집·직장 주변 대피소 위치나 기본적인 안전 조처 방법을 숙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대피해야 할지 우왕좌왕한 건 아쉽지만, 거꾸로 보면 스스로 대처법을 모르고 있다고 인식하게 된 기회가 됐을 것”이라며 “위급 상황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생활 반경 내 대피처를 미리 알아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참에 정부와 군의 경보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명국 전 방공포병사령관은 “군의 탄도미사일 경보 체계를 행안부·지자체와 연동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소동”이라며 “군은 미사일을 발사하면 예상 낙탄 지점 근처 부대에 자동으로 경보를 발령한다”고 설명했다.

김민욱·문희철·장서윤·김민정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