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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자유로웠던 평소 모습처럼… 형식 파괴한 부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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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스님 5주기 맞아 부도탑 공개

동해 배경으로 스님의 좌상·詩碑

조선일보

5월 31일 강원 양양 낙산사에서 제막된 무산 스님의 부도탑. 스님의 앉은 모습을 조각한 좌상과 스님으 작품 '파도'와 그림을 새겼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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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양 낙산사의 유명한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 앞에 동해를 배경으로 한 ‘무산 스님과 함께하는 포토존’이 생겼다. 5월 31일 제막식을 열고 공개한 ‘설악 무산 스님 부도탑’이다. 무산(霧山) 스님은 평생 설악산에서 살며 신흥사 주지와 조실(祖室)을 지낸 ‘설악산 호랑이’이자 거침없이 자유로운 성품으로 ‘무애도인’ 등으로 불리다 지난 2018년 입적했다. 속명 ‘조오현’으로 유명한 불교계 대표 시조 시인으로 문인 지원에 앞장선 후원자였다.

31일은 스님의 5주기를 맞은 날. 이날 다례제와 함께 열린 제막식에서 공개된 부도탑(사리탑)은 스님의 삶처럼 파격이었다. 부도탑은 원래 종(鐘) 모양이 일반적. 그러나 이날 공개된 사리탑은 무산 스님의 시조 작품 ‘파도’를 새겨놓은 비석 윗부분 사각 공간에 작은 돌탑을 넣어 봉안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밤 늦도록 책을 보다가/ 밤 하늘을 바라보다가’로 시작하는 ‘파도’는 무산 스님이 낙산사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쓴 작품으로 그의 ‘깨달음의 노래’(오도송)라 부른다.

조선일보

눈길을 끄는 건 시비 옆의 무산 스님 좌상. 멀리 설악산을 보며 스님이 오른손에 찻잔을 들고 다리를 꼬고 앉은 모습을 묘사한 김경민 작가의 작품이다. 등신대(等身大)인데다 색을 칠해 실제 스님이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날 제막식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줄을 지어 차례대로 무산 스님 좌상 옆에 앉고 뒤에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무산 스님의 어깨를 감싸 안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제막식은 줄을 여러 가닥 준비해 참가자 모두가 잡아당겨 부도탑을 감싼 천을 벗기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어 무산 스님의 육성 법문을 듣는 시간과 백담사 유나(維那·승려들의 규율 책임자) 영진 스님의 무산 스님 행장 소개, 자승 전 총무원장의 제막사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동영상 속 무산 스님은 “불심의 근원은 중생심이기 때문에 중생의 아픔을 화두로 삼아야 한다”며 “중생 없이는 부처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며 죽비를 내리쳤다. 무산 스님은 또 “수행자는 지금 세계의 삼독(三毒·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마음) 불길을 잡는 소방관이 돼야 한다. 그림자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은 2017년 겨울 백담사 무문관에서 무산 스님 옆방에서 석 달간 문을 잠근 채 동안거 수행을 한 인연을 소개했다. “어느 날 무산 스님이 ‘들어온나’ 해서 들어가니 종이쪽지를 던지시더라. 읽어보니 ‘삶의 즐거움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는가.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인데…’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스님은 그때 이미 당신 나름대로 생의 인연을 정리하고 계셨던 듯하다.” 자승 스님은 또 “무산 스님의 불심으로 강원도에 산불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강원도를 중심으로 불교가 중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양=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양양=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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