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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힘, 그것이 창의성이다[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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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창의적 융합형 인재란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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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교육청 ‘진로융합교육원’이라는 곳에서 5월과 6월에 걸쳐 개원 기념으로 그 지역 중·고교 교장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받았다. 필자가 교육학 전공자도 아니고 현 중·고교 교육 현장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약간 고민을 하였지만, 학생들에게 다양한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주기 위한 기관 설립 및 운영의 취지가 좋고, 공교롭게도 그 기관이 있는 지역이 어린 시절 여름이면 외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가던 외갓집과 같아서 어릴 적 받은 좋은 추억에 나름 보답할 기회라고 생각해 동의하였다. 하지만 짧다고 할 수 없는 길을 가야 하는 곳이기에 나한테도 조금 더 재미가 있어야겠다 싶었고, 내가 다시 어린 학생이 된다면 교장 선생님들의 눈길을 모을 방법이 무엇일까 곰곰이 궁리해보았다. 그런데 지금 나의 평소 모습이라면 거의 충분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곱슬머리 장발을 묶고 다니는 사람이니까 머리에 물만 들이면 되는 거 아닐까 싶었다. 교장 선생님들 만나러 갈 거니까 염색해달라는 요구에 집 앞 미용실의 젊은 헤어스타일리스트가 적지 않은 걱정을 했지만 필자는 그분들과 나이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난생처음 머리를 물들였다. 파랗게. 그러고 나서 ‘바이크에서 내린 염색한 사람’이 알고 보니 자기들에게 강연하러 온 사람이라는 반전을 깨달은 교장 선생님들의 표정을 상상하며 며칠 동안 혼자 키득거렸다. 민소매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는 어떨까 상상하다가 조금 과하다 싶어 첫 강연엔 참았지만 두 번째엔 어떻게 할지 모르는 일이지.

조금 습했던 5월 하순의 날씨를 뚫고 강연장에 도착하자 관계자분이 교장 여럿에게 나를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이분이 오늘 강연해주러 오신 교수님입니다” 하자 우연찮게도 처음 소개받은 교장 한 분이 “교수처럼 안 생겼네”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의 선입견을 따를 의무가 없는, 먼 길을 온 손님에게 작지 않은 결례를 범한 것이지만 그런 반응을 유도하려고 했던 나로서는 계획이 성공했다면서 속으로 조금 자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그렇게 차려입고 간 것은 ‘높은 지위’를 가진 학교장들에게 내가 어린 시절 하지 못했던 튀어보이기를 뒤늦게라도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요청받았던 ‘창의적인 융합 인재 교육을 위한 제언’의 핵심 내용이 바로 주어진 틀을 벗어나는 사고와 행동의 자유를 아이들에게 주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한 그 강연의 내용을 아래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뜻깊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충남 전역에서 교장 선생님들이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서, 평소보다 옷을 좀 얌전하게 입고 왔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청중 웃음).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진로를 융합적으로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에 관해 말하기에 앞서 저는 그러한 창의적인 인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 인류에게 미래란 무엇인가

언제나 미래를 꿈꾸는 동물 ‘인류’
과학기술·욕망 충족의 역사가
과거의 미래였던 오늘을 만들어

왜 우리는 미래의 인재를 기르려고 하는 걸까요. 인류는 언제나 미래를 꿈꾸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음날, 다음 해, 그리고 다음 세대의 세상을 상상하지요. 누군가는 우리의 미래를 ‘운명’이라고 멋지게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 즉 역사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오늘이 과거 인류에겐 미래이자 운명이듯 우리 미래는 우리의 과거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History Makes Destiny’, 즉 ‘역사에서 운명으로’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먼저 인류의 근대 역사를 두 가지 관점에서 정리해보겠습니다. 하나는 과학기술적인 관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인간 욕망 충족의 관점입니다.

■ 과학기술 관점의 인류 역사

과학기술의 관점에서 역사는 다음처럼 세 번의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기와 현재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제1차 산업혁명(1760~1840): 고전역학과 열역학에 기반한 증기기관과 수력발전으로 인한 생산의 기계화를 통해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무한한 물질 생산능력이 생김.

2. 제2차 산업혁명(1871~1914): 전자기학에 기반한 전신(電信)과 철도의 등장에 힘입은 시공간의 축소로 장거리 소통과 교류가 가능해짐으로써 한 지역에서는 만들 수 없던 새로운 발명품이 등장하고 전 지역으로 유통됨.

3. 제3차 산업혁명(1940~ ): 양자역학에 기반한 트랜지스터 발명에 따른 전기 기기의 발전과 컴퓨터의 발명에 힘입어 사람의 사고와 행동보다 빠른 자동화 기술들이 등장함.

4. 현시기(1980년~ ): 광통신과 컴퓨터 성능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간을 흉내내는 기계가 등장하기 시작함.

이렇게 산업의 중심은 기계→통신→계산→인간의 모방으로 이동해왔고, 우리가 사는 현시기를 이 틀에 맞추어 ‘제4차 산업혁명기’라고 부르려는 성급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 인류 욕망 해소의 관점에서

만약에 근대 인류 역사를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여기에는 20세기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1908~1970)가 주창한 인간 욕구 단계론이 유용하게 쓰입니다.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가 생존을 위한 물질적인 욕구에서부터 자아실현을 위한 창의적 욕구까지 다층적으로 존재한다고 하였는데, 사람에 따라 그 사이를 다르게 세분화할 수 있지만 단순화해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생존·안전의 욕구: 배고픔과 추위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물질을 확보하고 지키고 싶은 동물적인 욕구.

2. 소속감·자존감의 욕구: 생존과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타인과 교감을 하고 자신의 성취를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3. 자아실현과 창의의 욕구: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상태에서 자신의 진정한 삶의 목적을 깨닫고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실현하고 싶은 욕구.

이렇게 인간 욕망의 대상은 물질→사회적 관계→자기 자신으로 변천해간다고 하는데, 위의 산업혁명의 역사와 대조를 해보면 잘 들어맞기도 합니다. 즉 제1차 산업혁명은 1번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켰고, 제2차·3차 산업혁명은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2번 소통과 교류의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컴퓨터 성능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한 인간 모방력의 증가’가 ‘인간의 자아실현·창의의 욕구’를 가능하게 할까요? 실제로 요즈음 음악·그림·글을 만들어내는 ‘생성 인공지능’이 사람의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최고 욕망 실현의 도구가 될 것만 같습니다.

사실 어떤 시대, 기술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당대에서 할 수 없을 것이지만 만약에 그게 사실이 된다면 우리가 만들어내고 싶은 창의적인 인재는 ‘인공지능을 잘 쓰는 인간’이기만 하면 되는 걸까요?

■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2세대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
과학적 발견의 의미에 대해 성찰
“과학·예술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조화로운 구조에서 생긴다” 주장

산업혁명·인간의 사색·탐구 등
다른 관점에서 찾은 ‘깨달음’ 묶여
하나의 사상적·철학적 구조 탄생

그에 대한 답을 해보기 전에 일단 창의성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근본이 물리학자인 저에게 창의성에 대해 제일 심오한 생각을 하게 해준 사람으로 데이비드 봄(1917~1992)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요즘 언론에서도 양자물리학(quantum physics)이라는 이론이 종종 이야기되는데, 보어·하이젠베르그·슈뢰딩거·디락 등이 1세대였다면 봄은 파인만·필립 앤더슨 등과 함께 대표적인 2세대 양자물리학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봄은 우리가 고체·액체·기체를 아울러 물질의 3상이라고 하는 것에 더하여 제4상이라고 하는 플라스마(plasma)가 자연공간 속에서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규명한 업적으로 아주 젊은 시절에 유명해졌습니다. 봄의 이론이 발표되고 1, 2년도 지나지 않아 미국 물리학회의 정례 모임에서 관련 분과가 생길 정도였는데, 일생을 바친 연구가 생전에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불운한 학자가 수두룩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영광이었겠지요.

그러나 막상 봄 자신은 곧 깊은 절망에 빠졌다고 합니다. 새로운 물질을 이해함으로써 느끼게 된 과학자로서의 기쁨을 나누려고 들어갔던 학회장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온갖 물리학 상수를 남들보다 소수점 한 자리라도 더 정확하게 계산하려고 경쟁하는 ‘기계 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실망한 봄은 물리학계와의 관계를 서서히 단절하고서 ‘창의성’ ‘아름다움’ ‘질서’와 같은, 자기가 생각하는 진정한 과학적 발견의 의미를 사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 <창의성에 대하여(On Creativity)>라는 책에서 봄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과학이나 예술과 같은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사람이 찾아내는 새로운 기본 구조는 ‘조화로움’과 ‘전체성’의 성질을 갖고 있고, 여기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연의 질서 찾아내는 창의적 활동
궁극의 욕망 ‘자아실현’으로 연결

경향신문

맨 왼쪽의 무질서한 세계에서 맨 오른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름다움과 전체성을 갖춘 질서를 찾아내는 능력이 바로 인간의 창의성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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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창의성이라고 하는 것은 조화롭고 전체를 아우르는 기본적 구조를 찾아내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고, 이렇게 발견된 구조로부터 아름다움이 생겨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그림1’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림1’의 왼쪽을 보면 여러 뾰족한 선분들이 어지럽게 아무 자리나 차지하고 있으면서 우리의 눈은 피로하고 마음을 분주하게 합니다. 봄은 특히 현대사회의 겉모습이 이렇게 지저분하고 무질서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선분들을 잘 옮겨서 재배치한다면 ‘그림1’의 오른쪽처럼 모든 선분들이 하나의 규칙 아래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봄이 말하는 ‘조화로움’과 ‘전체성’을 가진 기본 질서를 나타냅니다. 왼쪽의 무질서로부터 오른쪽의 질서를 찾아내는 능력, 그것이 바로 인간의 창의성이라고 한 것입니다.

봄은 이러한 창의성이 있는 사람은 세계로부터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연의 질서와 인생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자아실현’이라고 다르게 표현해본다면 결국 양자물리학 같은 어려운 과학으로부터 시작된 깊은 사색이 심리학자 매슬로가 주창한 궁극의 인간 욕망과 연결되는 것이지요.

■ 창의성과 융합의 관계

저는 이렇게 산업혁명의 역사, 인간의 욕망에 대한 사색, 과학의 탐구 과정으로부터 사람들이 제각각 찾아낸 ‘창의성의 의미’가 결국 하나로 연결되는 것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찾아낸 깨달음들이 묶여 더 높은 차원의 총체적인 사상적·철학적 기본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달라 보이는 개념이나 사물들을 이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것, 혹시 그것이 창의성의 본질은 아닐까요? 그리고 바로 그러한 주장을 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 인물의 이야기는 다음번에 이어서.

박주용 교수

경향신문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트워크와 복잡계 물리학에 기반한 융합 데이터 과학 전문가로서 노트르담대학교, 하버드 의과대학 데이너-파버 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예술과 과학의 창의성을 연구하고 있으며, AI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카이스트 포스트AI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고안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시간이 생긴다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박주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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