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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6억명 찾은 日 롯폰기 힐스…'도심 재생’으로 늙은 도쿄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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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타운 20년, 도시를 바꾸다

일본 도쿄 중심부 복합 상업지구인 ‘롯폰기 힐스’ 내 맥도날드에 지난달 30일 저녁 들어가자 좌석의 4분의 1 정도가 외국인이었다. 높이 238m인 지구 내 초고층 건물 모리타워엔 미국 골드만삭스·구글 등 굵직한 해외 기업을 포함해 120여 사가 입주해 있다. 롯폰기 힐스 모리아츠센터에선 디즈니사가 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100주년 전시회’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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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롯폰기 힐스의 상징 54층 높이 모리타워. /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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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업무·예술 등이 한 공간에 집결된 롯폰기 힐스는 2003년 4월, 민간에 의한 일본 최대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했다. 폭이 4m도 안 되는 작은 도로를 가운데 두고 무계획하게 지어진 목조 건물과 연립주택 단지를 재개발해 만든 최첨단 복합 단지다.

설득해야 하는 권리자만 500명이 넘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롯폰기 힐스가 성공적으로 재개발을 마치고 손님을 맞은 지 20주년이 되자 일본에선 이를 기념하는 행사와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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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롯폰기 힐스의 상징 54층 높이 모리타워. /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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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폰기 힐스는 성공한 부동산 개발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지역에 예전부터 있었던 ‘모리빌딩’ 소유주인 모리사(社), 아사히TV 등 민간이 주도했고 정부는 과감한 규제 완화 등으로 재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프로젝트를 완성시켰다. 롯폰기 힐스는 2018년 방문객 6억명을 돌파했다. 성공 사례가 일단 나오자, 도쿄에선 민관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제2의 롯폰기 힐스’가 잇따라 탄생했다. 도쿄미드타운(2007년), 긴자식스(2017년)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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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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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거품 경제’의 붕괴로 활력을 잃어가던 도쿄의 이미지는 롯폰기 힐스 개장 후 20년 동안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바뀌었다. 매력적으로 변하는 도쿄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2004년 418만명이었던 도쿄의 외국인 관광객은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19년 1518만명으로 급증했다. 도쿄에선 올해만도 대형 재개발 복합상업지구 두 개가 추가로 문을 열 예정이다.

도쿄의 변신은 각종 규제와 정치 논리에 묶여 대형 재개발 프로젝트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서울과 대비된다. 예컨대 2017년 문을 연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는 ‘한국판 롯폰기 힐스’를 표방하며 공사를 시작했지만 주변 지역의 개발 제한 등이 발목을 잡으면서 제대로 된 ‘복합 단지’로 개발되지 못했다.

도쿄의 도심 풍경은 20년 전 롯폰기 힐스의 탄생 이후 계속 바뀌고 있다. 그전의 도쿄는 1960~1970년대에 5~10층짜리 건물과 단독주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이젠 빈 땅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건물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찬 상태였다. 1978년 지어진 선샤인60 빌딩(240m, 당시 아시아 최고층)이 고도성장기의 부(富)를 상징했지만 이후 제대로 된 개발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도시가 낡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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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문 여는 아자부다이 힐스 - 일본 도쿄 롯폰기 힐스에 위치한 모리타워 52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도심 야경. 사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올가을 문을 여는 아자부다이 힐스다. 오른쪽에 있는 붉은 조명의 건축물은 도쿄타워, 왼쪽에 멀리 보이는 초록 빛깔의 전파탑은 ‘도쿄 스카이 트리’다. /롯폰기힐스 전망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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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문을 연 롯폰기 힐스는 활기를 잃어가던 도쿄의 변신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 약 11만㎡ 부지에 모리타워와 주거지, 호텔, 영화관, 쇼핑몰, 방송국 등 10여 개 건물이 들어선 복합 타운이 완성되자 ‘도쿄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루에 약 10만명이 방문하는 롯폰기 힐스는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한 해 내·외국인 4000만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됐다.

롯폰기 힐스의 재개발이 줄곧 수월히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소형 주택과 상가가 뭉쳐 있는 지역을 갈아엎어야 하는 탓에 개발사는 기존 거주자와 건물 소유주 등 500명을 일일이 설득해야 했다. 프로젝트의 밑그림이 나온 때는 1986년이었지만 17년이 지난 뒤에야 문을 열 수 있었던 이유다. 도시재생특별조치법과 같은 파격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재개발을 지원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는 20년 전 개장 행사에서 “민간의 힘이야말로 도시 재생과 구조 개혁의 열쇠라는 것을 증명했다”며 민간에 공을 돌렸다. 거품 경제 붕괴로 인한 불황 타개책으로 2002년 마련된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은 용적률 상향, 인·허가 간소화, 세제 혜택 등을 골자로 한다.

롯폰기 힐스의 성공 스토리는 도쿄 도심 재개발의 새로운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주변의 수많은 낡은 건물을 해체해 넓은 부지를 확보하고 200m 이상의 초고층 빌딩을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복합단지를 건설하는 방식이다. 2000년 이후 도쿄에 새롭게 등장한 200m 이상 초고층 빌딩은 30개에 달한다. 이전까진 9개에 불과했다.

산케이신문은 “롯폰기 힐스의 차별점은 경제 논리에만 치우치기 쉬웠던 기존 도시 재개발의 가치관을 뒤집어 ‘문화 도심’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롯폰기 힐스 이후 이를 본떠 도쿄 미드타운, 도라노몬힐스(2014년), 도쿄미드타운야에스(2023년) 같은 도쿄 도심 재개발의 성공 사례가 완성되어 갔다.

도쿄의 도심 재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 20년보다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재 200m 이상의 초고층 건물 29곳이 동시에 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땅이 넉넉한 도쿄 외곽이 아닌, 미나토구(11곳)·지요다구(4곳)·주오구(8곳)·신주쿠(5곳)·시부야(1곳) 같은 기존의 핵심 상권에서 이뤄지는 재개발이다.

현재 초대형 공사가 진행 중인 도쿄역 뒤편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도쿄의 도약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지역이 될 전망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2시 도쿄역 뒤편으로 걸어나오자, 대형 크레인 5대가 동시에 움직이며 1만㎡의 부지에 250m(51층)짜리 빌딩을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옆엔 230m 빌딩이, 한 블록 건너선 다시 220m 높이의 건물 공사가 한창이었다. 원래 일왕이 거주하는 고쿄(皇居)와 마주한 도쿄역 앞편은 오피스 거리이지만, 뒤편(야에스)은 전당포 같은 10층 안팎의 허름한 건물들이 가득 찬 칙칙한 지역이었다.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던 이곳에서 니혼바시로 이어지는 약 2㎞의 거리엔 재개발을 통해 앞으로 5~6년간 200m 이상 초고층건물 7개, 100m 이상 건물 14개가 한꺼번에 만들어진다. 도쿄역 뒤편의 변신은 2027년 완공할 예정인 높이 390m 건물 ‘도치 타워’에서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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