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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카메라 앞에서 감독이 선수와 말싸움...“이게 우릴 뭉치게 한 소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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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스포츠 인사이드] NBA 히트 스포엘스트라 감독

‘눈을 보고 말할 것. 개인적 감정이라 여기지 말 것. 해결책을 만들어낼 것.’

조선일보

에릭 스포엘스트라 NBA 마이애미 히트 감독이 지난달 18일 보스턴 셀틱스와의 동부 콘퍼런스 결승 1차전에서 팀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선수단과 뒤끝 없는 직설적 소통으로 팀의 돌풍을 이끌었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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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스포엘스트라(53) 미 프로농구(NBA) 마이애미 히트 감독이 선수들과 소통할 때 제시하는 세 가지 원칙이다. 그는 카메라가 비추는 곳에서도 선수들과 말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유도해 해묵은 감정을 풀어낸다. 이럴 때마다 현지 언론에서는 ‘무너진 팀워크’라고 대서특필하지만, 선수들은 “이게 히트의 방법”이라며 오히려 단결한다.

히트는 이번 시즌 NBA 플레이오프 최고 이변의 팀이다. 가장 아래인 동부 8번 시드로 출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정규 리그 전체 승률 1위 밀워키 벅스를 4승 1패로 꺾어내며 파란의 시작을 알렸다. 2라운드에서 동부 5위 뉴욕 닉스를 4승 2패로 제압한 데 이어 리그 2위 셀틱스까지 4승 3패로 제쳤다. “스포엘스트라 없이는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평가다.

스포엘스트라는 미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밑에서 나고 자랐다. NBA 여러 팀에서 홍보 업무를 했던 아버지 존 스포엘스트라 덕에 어릴 때 농구를 시작했지만, 선수로서 재능은 크지 않았다. 포틀랜드대를 마치고 독일 프로팀 투스 헨튼에서 선수 겸 코치로 2년을 보낸 뒤 25세에 유니폼을 벗었다.

마이애미 히트 신인 드래프트 관련 잡무를 담당하는 아르바이트로 NBA에 첫발을 들였다. 스포엘스트라는 많지 않던 권한으로도 영민한 감각을 뽐내면서 비디오 분석가로 정식 고용됐고, 2년 뒤 스카우터 겸 정식 코치로 10년가량 일했다. 38세였던 2008년, 그를 눈여겨봤던 팻 라일리(78) 히트 사장이 그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했다. NBA 선수 경력도 없고, 유명인이 아니라 더 파격이었다. 미국 4대 프로 스포츠 첫 아시아계 감독이기도 했다.

시작은 가시밭길이었다. 2010년 히트에는 초특급 스타 르브론 제임스와 크리스 보시가 합류했다. 기존 스타 드웨인 웨이드까지 세 거물과 초보 감독의 불편한 동행이 시작된 것.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히트는 예상을 깨고 NBA 파이널에서 댈러스 매버릭스에 2승 4패로 무릎을 꿇었다. 스포엘스트라는 낙심한 채 눈물을 흘렸고, “그 선수들을 데리고 우승도 못 하냐”는 비판이 폭주했다.

절치부심한 스포엘스트라는 이후 매일 밤을 새우며 빅3를 조화롭게 운용하는 전술 개발에 몰두했다. 리그에선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편인 크리스 보시(211㎝)와 르브론 제임스(206㎝)에게 골밑을 맡기고 대신 속도로 승부하는 ‘스몰 라인업’을 고안했다. 직설적 소통도 스타들을 다루는 그만의 비법이다. 스포엘스트라는 이후 히트를 두 차례 정상에 올렸고, 그 뒤론 아무도 그를 초보라 무시하지 않았다. 지난해 NBA가 선정한 위대한 감독 15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스포엘스트라만의 소통 방식은 히트에 뿌리를 내렸다. 지난 10년 동안 히트를 거쳐간 선수들은 저마다 스포엘스트라와 언성을 높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감독과 선수가 이마를 맞대고 욕설을 주고받는 보기 드문 장면이 이 팀에서는 흔하다. 하지만 그뿐, 감정이 상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2017년부터 4시즌 동안 히트에서 뛰었던 켈리 올리닉(32)은 “감독님은 그 방법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물론 언성을 높이는 ‘맞대결’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올 시즌 내내 주전으로 뛰어왔던 케일럽 마틴(28)은 지난 3월 케빈 러브(35)가 합류하자 후보로 밀려났다. 마틴은 “감독님이 휴대폰 화면 전체를 덮을 만큼 메시지를 보냈다. 단지 팀원이 아니라 인간으로 대한다는 게 느껴졌죠”라고 했다.

히트는 2일 덴버 너기츠와 NBA 파이널 1차전을 치른다. 히트가 우승하면 77년 NBA 역사상 최초로 8번 시드 우승팀이 탄생한다. 스포엘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팀이 응원받는 건 모두의 인생이 힘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때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인생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를 견뎌낸다면 강해질 겁니다. 정규 시즌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플레이오프에서 강해진 우리처럼요.”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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