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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박기자 쇄담] ‘WBC 술 3인방’의 진짜 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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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의 무게는 온데간데없고

간절하게 응원한 팬들을 기만한 게

이들이 범한 罪

[쇄담(瑣談) : 자질구레한 이야기]

올해 3월 일본에서 열린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섰던 투수진 김광현(35·SSG), 이용찬(34·NC), 정철원(24·두산)이 대회 기간에 심야 음주를 했음을 1일 시인하고 한꺼번에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30일 한 온라인 매체가 “WBC에 출전한 선수들이 호주전 전날인 3월 8일과 일본전을 앞둔 9일에 새벽까지 도쿄 아카사카 고급 ‘룸살롱’에 들렀다”고 보도한지 이틀만이었다. 보도와 함께 이들이 사실상 특정돼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없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위 보도가 나오자마자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각 구단들과 함께 경위서 등을 통해 WBC 대표 선수들의 대회 기간 행적을 파악했다.

선수들의 해명에 따르면 김광현은 오사카에서 도쿄로 이동한 3월 7일엔 지인과 마셨고, 3월 10일 일본전 이후엔 고교(안산공고) 후배 정철원과 함께 음주를 즐겼다고 한다. 이용찬은 일본전 이후에 지인과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룸살롱’이 아닌 일본의 보편적인 주점 형태 중 하나인 ‘스낵바’에서 마셨으며 여성 종업원과의 동석 의혹에 대해선 완강히 부인했다.

다 큰 성인이 음주하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운동선수들도 예외일 순 없다. 그들도 사람이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든 온라인 게임을 하든 카지노를 하든 본인에게 제일 맞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그래서 이들도 어쩌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술을 마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을 경우엔 다르다. 아니 달라야만 한다. 이 씁쓸한 사태의 본질은 사실 술이 아니다. 팬들과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은 단순명료하다. “어떻게 나라를 대표해 나간 대회에서 처참한 성적이 확정되자마자 그새를 못 참고 그랬냐”는 것이다.

◇문제 #1 : 일본전에서 지자마자 술집行

거짓 없이 해명했다면 이들은 호주전(3월 9일 오후 12시)과 일본전(3월 10일 오후 7시)을 앞두고 술판을 벌인 것은 아닌 게 된다. 언젠가 술을 마실 것이었다면 그나마 잘한 일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WBC 당시 한국 야구대표팀은 제대로 된 프로 리그도 없는 호주에 7대8로 충격패하며 8강 진출 가능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다 한때 라이벌이라고 믿었던 일본한테 4대13으로 참패하며 일말의 희망도 사라졌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시차가 없다. 일본전은 오후 7시를 조금 넘어 시작해 오후 11시를 살짝 넘겨 끝났다. 일본전에서 지며 한국 야구는 체코전(3월 12일 오후 12시)과 중국전(3월 13일 오후 7시)에 상관없이 3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란 초라한 성적표를 사실상 확정지었다.

처참한 운명이 예정되자마자 3인방은 마치 뭐에 홀린 듯 술집으로 향했다. ‘어차피 떨어졌고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내일 쉬는데 술이나 마시자’라는 심보였을까. 마침 코로나 마스크도 여전히 많이 쓰는 일본 현지. 모자 눌러쓴 채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던 것일까. 감독이나 코치, KBO 관계자들이 호텔 문 앞에서 불침번 서듯 지킬 일도 없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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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일본전에서 역투하는 김광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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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전에서 김광현은 선발투수로 나서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정철원도 계투진으로 나섰었다. 마무리 이용찬은 이날 던지진 않았다. 어찌됐든 역할을 막론하고 모든 선수에게 당연히 결과는 쓰라렸을 것이다.

이러한 상처를 달래기 위해 굳이 술집에 갔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유니폼에 붙은 태극마크가 주는 무게를 생각했다면 이와 같은 행동은 절제했어야 한다.

◇문제 #2 : 왜 하필 투수들이었나

일본전 직후 당시 본지가 연락한 전문가들은 “투수진의 수준차가 너무 컸다”고 입을 모으며 경기 참패의 주요 원인으로 빈약한 투수력을 꼽았다. 타선은 할 만큼 했는데, 투수진이 기대 이하였다는 것이다.

대패 수모를 겪은 일본전에서 김광현은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 2이닝 4실점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5회부터 7회 2사까진 곽빈(24·두산), 정철원, 김윤식(23·LG), 김원중(30·롯데), 정우영(24·LG), 구창모(26·NC), 이의리(21·KIA) 등 7명의 투수가 2와 3분의 2이닝 8피안타 5볼넷 1사구를 내주며 8실점했다.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마다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지 못해 쩔쩔맸고 난타 당했다.

그렇게 4-6으로 알 수 없던 승부가 순식간에 기울어 간신히 콜드패를 면한 것에 팬들은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 누구도 일본을 무찌르라고 하지 않았다. 지더라도 과거 한국 야구가 보여준 악착같은 집중력과 투혼은 꼭 보여주길 원했다. 하지만 투수들은 볼넷을 남발하고 밀어내기로 점수를 내주며 제대로 승부 한 번 걸어보지 못하고 얻어맞았다. 한국에서 중계 방송으로 경기를 지켜본 한 팬은 “프로 투수들이 맞나 의심될 정도로 창피했다”고 했었다.

이쯤 되면 투수진들만큼은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꼈어야 했다.

WBC 기간엔 기대하고 응원했던 팬들을 생각해 술판을 자제했어야 한다. 정 마시고 싶었다면 왜 호텔 방에서 조용히 마시진 못했을까. 눈치가 없던 걸까, 염치가 없던 걸까.

태극마크를 단 상태에서 유흥업소에 들러 굳이 스트레스를 풀었어야 했는지 의문이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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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호주전에서 역투하는 이용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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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죄명은

향후 KBO는 이들이 제출한 경위서를 검토한 뒤 국가대표 운영 규정에 어긋남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조사하고 후속 조치를 할 예정이다.

3인방은 현재 모두 1군에서 말소됐다.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진 미지수다. 앞으로 마운드에 선 이들을 보면 ‘WBC 음주’밖에 생각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주홍 글씨가 지나친 부분도 있지만, 또 무시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자랑스러웠던 커리어에 스스로 먹칠을 해버렸다.

혹자는 술 좀 마신 것에 비해 대가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대회에서 단순히 음주를 했다는 게 이들의 죄명은 아니다.

잠시를 참지 못하고 국가대표의 무게를 깃털만큼 가벼이 여기며 간절하게 응원했던 팬들을 무시하고 기만한 게 이들이 범한 중죄다.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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