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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죄송하다”는 정유정, 반성 안 한다는 3가지 결정적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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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현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조선일보

정유정이 빈 캐리어를 끌고 피해자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 /부산북구청


일면식 없는 또래 여성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23)이 2일 검찰로 구속 송치되면서 취재진 앞에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범행 수개월 전부터 ‘살인’을 검색하고, 피해자를 만나기 전 중학생인 것처럼 교복을 입고 가는 등 계획적 범행의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마치 우발적 범행인 것처럼 말한 건데요. 정유정은 정말 반성하고 있는 걸까요?

◇정유정은 기자 앞에서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반성으로 볼 수 있을까요?

진정한 반성은 말과 행동이 일치합니다. 정유정은 적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신상공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기자 앞에 섰습니다. 6월 2일은 코로나와 관련된 모든 방역 조치가 해제된 이후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무참히 살해한 정유정은 자신의 얼굴이 국민에게 알려지는 것은 아주 싫었나 봅니다. 신상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나온 행동과 ‘피해자 유족에게 죄송하다’는 말은 전혀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반성하지 않는다는 첫 번째 증거입니다.

다음으로 정유정은 기자들이 “피해자를 왜 살해했나요?”, “피해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특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범행 수법은 어디서 배웠나요?” 등의 질문엔 답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답변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국민이 가장 알고 싶은 범행의 동기, 수법, 피해자를 특정한 이유 등엔 답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반성’을 했다면 기자들 앞에서 모든 질문에 사실 그대로 답한 뒤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했을 겁니다. 게다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답은 수사에서 방어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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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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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살해 직후 정유정이 집에서 캐리어를 갖고 길을 걷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습니다. 걸음이 가벼워 보이던데요?

정유정은 1999년생입니다. 지금 23세죠. 이전에 살인죄를 범한 경력이 없습니다. 해당 장면은 피해자를 살해한 뒤 집으로 가 사체를 유기할 캐리어를 들고, 사체를 손괴할 도구를 준비해 다시 범죄 현장으로 가는 모습입니다.

반성하지 않는다는 두 번째 증거입니다. 정유정은 어떠한 죄책감도 없는 모습입니다. 일반적으로 살인 현장에 다시 간다는 건 두렵고 무서워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한 주저함이 없는 모습은 분명합니다. 범죄 후의 정황은 절대 범죄를 후회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더욱 섬뜩한 건 저 캐리어를 집에서 가지고 왔다는 사실입니다. 외부와 단절된 채 휴대전화 통화 한 통 없던 피의자가 여행용 캐리어는 왜 가지고 있었을까요? 게다가 정유정은 증거인멸을 서두르기 위해 시신 일부만 먼저 훼손해 유기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저 캐리어는 피해자의 신체 일부만 담을 수 있는 크기라는 점에서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정유정은 범행 당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두 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정유정은 긴급체포 후 “사람을 살인해 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이 현실로 옮겨진 트리거를 찾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제정신이 아니게 만든 이유, 바로 범죄의 동기입니다.

다음으로 정유정은 처음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허황된 거짓 주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변호인 입회 없이는 진술하지 않겠다고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자들 질문에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등의 말에 비추어 보면 심신미약을 주장해 형량을 줄여보겠다는 ‘꼼수’일 수 있습니다. 반성하지 않는다는 세 번째 증거입니다.

하지만 범행 전후의 범행 준비, 살인 후 캐리어를 가지고 오는 행동 등을 고려하면 범행 당시 심신미약을 인정할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또 형법은 과거와 달리 심신미약이 인정되더라도 ‘감경할 수 있다’고 개정됐습니다. 반드시 감경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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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찰청은 1일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부산 또래 살인' 사건의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했다. 피의자 이름은 정유정, 나이는 1999년생으로 23세다. /부산경찰청 제공


◇제2, 제3의 정유정을 막을 방법은 무엇인가요?

현재 우리는 극단의 개인주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공동체 사회에서 유아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습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철저히 익명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코로나로 인해 혼자 살아가는 것이 더 편해졌습니다. 오히려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해졌죠. 모든 개인이 외톨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누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발생하는 모든 살인을 막을 순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비정상적인 살인 범죄를 꼼꼼히 살펴 그 범죄 원인과 세상 문을 연 열쇠를 찾는다면 현재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살인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를 위해선 범죄자들에 대한 생애 연구가 필요합니다. 녹록지 않은 연구입니다. 그러나 해야 합니다. 당장 정유정의 가정환경, 고등학교 학창 생활, 졸업 후 5년 동안의 은둔 생활 전반을 역추적해야 합니다. 정유정을 저렇게 만든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성(城)에서 살다 세상 문을 연 열쇠 역시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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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선DB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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