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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혈세로 여행 가고 정권 퇴진운동···정부 "비위땐 5년간 지원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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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보조금 복마전]비영리단체 전수조사 결과

횡령·유용·리베이트 등 비일비재

개인계좌로 이체 뒤 연락 두절도

비위 수위 심각한 86건 수사의뢰

분기별 현황점검 등 제도개선 박차

연내 보조금 '전자증빙' 의무화도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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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4일 공개한 비영리 단체의 국고보조금 부정 사용 내역은 충격적이었다. 공익 등을 위한 사업을 하는 것처럼 예산을 신청해 놓고 해외여행을 가거나 휴대폰을 구매하는가 하면 사업 예산 집행액 중 일부를 뒷돈으로 받아 챙기는 사례가 낱낱이 밝혀졌다. 심지어 국민 혈세로 받은 예산을 정치적 목적의 정권 퇴진 운동에 활용하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겉으로는 온갖 정의로운 척을 하면서 속으로는 횡령·리베이트 등 부정부패를 일삼는 시민단체들을 과거 정부가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나랏돈이 줄줄 새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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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개한 ‘비영리 민간 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 및 개선 방안’에 따르면 한 통일 운동 단체는 “묻혀진 민족의 영웅들을 발견한다”는 명목으로 6260만 원을 수령해 ‘윤석열 정부 취임 100일 국정 난맥 진단과 처방’ 등을 강의했다. 강의에는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서겠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조금을 주어진 목적에서 벗어나 정치적 의도로 사용한 전형적인 사례다.

보조금을 사적으로 횡령·유용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한 시민단체 사무총장은 국내외 단체 간 협력 강화 사업으로 보조금을 받은 뒤 사적 해외여행 비용으로 사용하거나 출장을 가지 않고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1344만 원을 착복했다. 호남권에서 활동하는 한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청년 창업 지원 사업 용도로 배정된 1000만 원을 개인 계좌로 이체해 사용한 뒤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 비용을 수령한 뒤 일부 금액을 돌려받는 ‘리베이트’나 시민단체 대표 가족·지인에게 사업비를 지급하는 ‘내부자 거래’와 같은 범죄행위도 다수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비영리 단체는 행사 참석 인원을 부풀리거나 현수막 등을 ‘포토숍’으로 조작해 보조금을 수령하는 행위를 관행적으로 반복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감사를 통해 적발된 비영리 단체 보조금 회계 부정에 대해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하고 앞으로도 감시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감사원 역시 17일 대통령실과 별도로 1억 원 이상의 국고보조금을 수령한 911개 비영리 단체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여 10개 단체 16명을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이 수석은 “횡령·리베이트·서류조작 등 비위 수위가 심각한 86건은 사법기관에 형사 고발 및 수사 의뢰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목적 외 사용, 내부자 거래 의심 사건 등 300여 건은 감사원에 추가 감사를 의뢰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를 계기로 혈세가 허투루 쓰이지 않고 비영리 단체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앞으로도 비영리 단체 보조금 집행 현황을 꾸준히 감시하는 한편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수석은 “각 부처들은 소관 보조금에 비위 행위가 없는지 추가로 검토하고 있다”며 “감사에서 적발된 단체들은 향후 5년간 보조금 지급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수석은 “기획재정부 주관하에 44개 전 부처가 참여하는 보조금 집행 점검단을 만들어 분기별로 집행 현황을 점검할 계획”이라며 “국민의 신고 기능도 강화하기 위해 포상금 지급 요건을 완화하고 지급 한도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지난해 12월 발표했던 국고보조금 회계 투명화 방안도 연내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보조금을 수령한 단체뿐 아니라 그 단체로부터 위탁·재위탁받는 단체까지 ‘e나라도움’에 모두 등록하게 해 횡령, 내부자 거래 등을 방지한다. 그동안 종이 영수증 제출 방식으로 관리되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회계 역시 전산 시스템을 연말까지 신설해 ‘전자증빙’을 의무화한다.

보조금을 수령하는 비영리 업체의 회계·공시 의무도 강화할 계획이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정산보고서 외부 검증 기준을 현행 3억 원 이상 사업에서 1억 원 이상 사업으로 낮춘다. 외부 회계법인으로부터 의무적으로 감사를 받아야 하는 보조금 사업자 역시 보조금 총액 10억 원 이상 사업자에서 3억 원 이상 사업자로 확대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외부 감사 대상 확대의 경우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며 “2020년에 이양수·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해둔 개정안을 바탕으로 국회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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