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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탈중국 탓에 무역적자? 中이 사드 보복으로 한국기업 쫓아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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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체크] 中대사·이재명 발언, 뭐가 사실과 다른가

조선일보

이재명(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일 저녁 서울 성북구의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를 만나 관저 내부를 둘러보며 대화하고 있다. 싱 대사는 이날 “한국의 대중 무역 적자는 탈중국화 시도 때문”이라고 말하는 등 사실과 다르거나 한국을 위협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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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는 지난 8일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가진 만찬 회동에서 대만 문제와 함께 무역, 역사 등 한중 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두 사람의 대화 가운데 잘못되고 과장된 사실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 대중 무역 적자는 탈중국화 때문”

싱 대사는 한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 확대에 대해 “‘탈중국화’ 추진을 시도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었지만 이젠 무역 적자 1위국으로 돌아섰다. 올해 1~4월 기간에만 100억달러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이 한국의 탈중국화 때문이라는 주장은 상식 밖이란 지적이다. 2016년 시작된 사드 보복과 ‘한한령’, 2020년대 ‘궈차오’(애국 소비) 운동 등으로 한국 기업들이 사실상 쫓겨났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2조원을 투자해 지은 중국 공장 2곳을 현재 일주일에 1~2일 돌리는 수준이다. 현대차그룹은 해마다 중국에서 7000억~8000억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 롯데는 10년 동안 10조원을 투자해 중국 내 마트·백화점 유통망 90여 곳을 구축했지만, 2016년 강제 영업 정지, 불매운동 등으로 완전히 철수해야 했다. 한국 화장품은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들의 거부 운동으로 아직도 회복을 못 하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중국 스스로 국제 규범이나 시장 논리를 완전히 무시해 놓고 적반하장식 발언을 한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한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 적극 지지”

이 대표는 “한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principle)’은 중국의 주장으로, 한국 정부가 지지한 적이 없다. 우리 정부는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외교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대륙의 중국 정부가 전체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대만은 중국의 부속영토이고 중국에 흡수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중국이 그런 원칙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대만이 중국 영토의 일부임을 외교적으로 승인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전략적 모호성이다. 이를 하나의 중국 ‘정책(policy)’이라고 한다. 하나의 중국 정책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즉 중국에 의한 대만 무력 합병을 반대한다.

미국 정부는 1979년 수교 때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 측 입장을 인식(acknowledge)하고 있다”고 했다. 동시에 대만관계법(1979년), ‘6개의 보장’(1982년)을 통해 대만 지원을 천명하고, 대만 주권 문제에 대해선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은 1992년 수교 공동성명에서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다. 대신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분임을 승인한다”는 문구를 넣자는 중국의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국 국민 힘 합쳐 독립과 민족 해방 이뤘다”

싱 대사는 “근대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양국 국민은 힘을 합쳐 국가의 독립과 민족 해방을 이뤘다”고 했다. 구체적인 언급 없이 역사적으로 양국 관계가 가까웠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장석흥 국민대 명예교수는 “임시정부 등 한·중 연대의 주요 대상은 장제스의 중화민국이었다”고 했다. 김희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관장(안동대 명예교수)도 “국민당 정부 활동 내용도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현 정부의 활동으로 포함시키는 중국 측 역사관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했다.

중국공산당도 독립운동 세력 가운데 ‘조선의용대’를 후원했다. 조선의용대는 1942년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돼 1949년 북한으로 이동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6·25 전쟁 개전 당시 북한군 보병 사단 10곳 중 3곳이 조선의용군(5만명) 출신이었다고 한다.

싱 대사는 또 “중국은 조속히 ‘쌍중단(북한 도발과 한미 훈련 동시 중단)’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는 중국식 해법이다. 최근 중국은 북한의 잇단 도발에도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국제사회의 대북 추가 제재를 막고 있다.

[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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