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서 ‘넷플릭스&박찬욱 with 미래의 영화인’ 행사
1960년대생 두 사람, 비디오 가게서 일하며 비디오로 영화 탐닉
서랜도스 “영화는 연결이자 탈출구…괴물보고 한국 영화 관심
지금은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시네필’에게도 황금기”
박찬욱 “부글부글 끓는 한국 영화… 인류 보편적 정서 건드려
미래 겁도 나고 기대도 있다… 영화, 스마트폰으로 안 봤으면”
비디오 대여점에서 일하거나 이를 운영했고, 비디오를 통해 영화를 배웠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극장에 가거나 TV·모바일 기기를 통해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보는 게 익숙한 시대지만, 각각 1963년생과 64년생인 박 감독과 서랜도스는 ‘MZ세대’에게는 낯선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고, 영화를 꿈꿨던 세대다.
서랜도스 CEO와 박찬욱 감독은 21일 서울 용산 CGV에서 영화 학도를 대상으로 열린 ‘넷플릭스&박찬욱 with 미래의 영화인’ 행사에서 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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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으로 미래가 안 보이고, 또 결혼도 했고 하니까 먹고 살기 막막해서 친구하고 동업했어요. 지금도 옆집 사는 음악 감독 조영욱씨와 (비디오 가게를) 했습니다.”
1992년 데뷔작인 ‘달은… 해가 꾸는 꿈’의 실패 후 박 감독이 비디오 가게를 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 시절에 좋은 영화를 많이 확보해서 그 비디오를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진열하고, 추천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죠. 근데 성과는 별로 없었어요. ‘네가 뭔데 나한테 이런 영화를 봐라 마라 하느냐’ 이런 반응이었거든요. 좋은 영화, 고전 영화, 예술 영화 보기 쉬워진 요즘 오히려 또 그런 영화를 보는 사람이 줄어든 거 같아 씁쓸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예술·독립영화로 주목받긴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박 감독은 기술의 진보를 탓하진 않았다.
“여러분 나이 때 저는 어떻게든지 좋은 영화 한번 찾아보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요즘에는 좋은 스트리밍 회사가 많기 때문에 거기 들어가면 옛날 영화부터 최신 영화까지 좋은 영화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시대잖아요. 이렇게 보면 얼마나 좋은 시대를 여러분이 즐기고 있는지. 세상이 꼭 다 나빠지는 것만은 아니구나 생각합니다.”
동네 비디오방 아저씨에서 지금은 명감독이 된 그는 넷플릭스와 협업 중이다. 넷플릭스 현 CEO인 서랜도스도 비디오방의 추억이 많다. 비디오 대여점의 10대 ‘알바생’이었던 서랜도스는 우편으로 비디오 대여 사업을 시작해 세계 최대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된 넷플릭스의 최고위직에 올랐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일하면서 어떤 게 좋은 영화인지 이미 다 배운 것 같습니다. 그때 종일 아무도 안 왔어요. 그래서 온종일 비디오를 보고, 돈도 벌고 좋은 직업이었죠. 넷플릭스는 처음 시작할 때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니었고 DVD를 우편으로 보내주는 서비스였어요. 소도시 작은 비디오 점엔 없는 그런 영화 들을 메일(소포)로 보내 드릴 수 있었고,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었죠. 넷플릭스의 비디오라는 매체가 사람들을 연결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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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박 감독은 넷플릭스와 협업으로 한국 사극 ‘전란’을 제작 중이다.
“사극이고 무협 액션이고 하니까 어느 정도의 규모가 따라줘야 하는 작품이에요. 넷플릭스하고 이런(지원) 문제 협의가 잘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돈이 아주 넉넉하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박 감독은 넉살 좋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영화 산업에 있어 넷플릭스는 경계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좋은 파트너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똑같은 영화인데 100억원으로 찍느냐 150억원으로 찍느냐에 따라서 결정적인 차이가 벌어질 수도 있거든요. 그다음에 (협업) 결정에 있어서 결정권자들의 취향이 얼마나 고급진가 이런 거에 많이 좌우되기 마련인데, 전란에서 만큼은 아직 잘 진행되고 있어요.”
서랜도스는 “한국영화와 사랑에 빠진 지는 이미 수년이 됐다”며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저희 넷플릭스의 첫 번째 국제적 영화도 봉준호 감독과 함께한 옥자였고요, 그때부터 제가 한국영화에 대한 어떤 족집게 강의를 받은 거 같습니다. 수준에 대해서는 정말 대단하다, 따라올 자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이번 전란의 경우 한국에 굉장히 밀접한 주제를 가지고 거장의 손에서 탄생이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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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OTT 업체인 넷플릭스의 CEO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영화를 볼 때 사람들은 두 가지를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들과 감정적인 ‘연결’, 두 번째는 ‘탈출구’죠. 다른 사람과 공감하거나 아예 두 시간 동안 현실 세계에서 다른 곳으로 탈출하고 싶어하는데요. 좋은 영화는 이 둘 중 하나를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스토리가 아주 새롭고 또 진실할수록 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2004년쯤 아마 괴물을 처음 보고, 그때가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 이후로 한국영화를 정말 많이 보게 됐죠.”
박찬욱 감독은 비슷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 다른 생각을 들려줬다.
“사람은 누구나 개인으로서의 경험이 한정돼 있고 만나는 사람의 숫자도 뻔하고 만날 집, 학교, 집, 학교 그러잖아요. 근데 그것을 넓혀주는 것을 잘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저는 생각해요. 지독하게 파고든다. 뭐가 됐든 나와는 다른 사람, 내 식구나 친구와는 다른 사람과 세계 이런 것을 실감 나게 보여주고 연결하는 영화라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박 감독은 한국영화, 한국 콘텐츠가 뜨는 이유에 대해선 조심스럽게 생각을 풀어놨다.
“어느 나라 사람의 무슨 ‘종특’ 그게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개개인, 필름메이커의 개성이 중요하고 큰 거 같은데, 굳이 얘기를 해보자면, 우리는 부모, 조부모 세대의 영향을 쭉 받아왔을 텐데 한마디로 말해서 너무 고생했잖아요. 그 고생한 한국 사람의 역사가 제일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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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용광로 같은 우리나라의 시대적 배경이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다.
“일본 강점기, 전쟁도 겪고, 독재정권 하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으며 산업화가 갑자기 이어지면서 또 계급 갈등의 문제, 젠더 갈등, 얼마나 복잡한 힘든 일들이 많습니까. 그런 것을 압축적으로 겪으면서 이제 웬만해선 끄떡도 안 하는, 웬만한 자극이 와서는 흥미가 당기지도 않는 그런 나라에서 살다 보니까 우리나라 영화와 드라마는 확실히 자극적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웃기기도,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다 있어야 돼요. 하나의 작품 안에 많은 감정이 다 이렇게 부글부글 끓고 있어야 하는 거죠.”
박 감독은 한마디로 “인류가 가진 보편적 감정을 다 건드리니까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된 거 같다”고 정리했다.
영화의 미래는 두 사람 모두 긍정적으로 봤지만 약간의 견해차는 있다.
서랜도스 CEO는 “여전히 깜깜한 영화관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엄청나게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것은 굉장히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제 옵션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더 방대한 영화 세계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시네필’(영화팬)이 되기에도 황금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 감독은 “(보통사람과) 똑같이 겁도 나고 기대도 있다”며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도 영화를 만든다. 만드는 데 있어 장벽은 많이 낮아졌다”면서 “영화를 극장에서만 보던 시대가 있었는가 하면 지금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보는 시대가 있다). 다만 전화기로 보지는 않아 줬으면 좋겠다. 그건 좀, 이것만큼은 좀 힘들더라(싫더라)”고 했다.
21일 서울 용산 CGV에서 박찬욱 감독(오른쪽)과 테드 서랜도스 CEO(가운데)가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넷플릭스&박찬욱 with 미래의 영화인’ 행사를 갖고 있다. 이날 사회는 이동진 영화평론가(왼쪽)이 맡았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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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기준을 말하긴 힘들지만, 영화사에서 중요 인물이 된 두 사람은 젊은 세대를 위한 조언을 덧붙였다.
“80년대 초중반에 한국의 대학가는 모두가 데모하던 때였어요. 싸움하고 돌 던지고 그러던 때였는데 히치콕 영화를 좋아하면 그건 좀 바보, 머리에 든 것이 없는 열정도 없는 그냥 아주 한심한 놈 취급받기 딱 좋은 취향이었어요. 그때 대학생이라고 하면 볼리비아에서 만든 좌파 다큐멘터리 이런 걸 봐야 하는데 근데 저의 마음은 히치콕을 향해 갔던 거예요. 어쨌든 그 시대의 요청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이라는 것을 지금 다시 한 번 느낍니다.”(박찬욱)
“사람들이 ‘열정을 쫓아라’ 이렇게 말하는데 저는 이게 좋은 조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잘하는 걸 찾으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본인이 잘하는 걸 찾으면 그것에 대한 열정이 생깁니다.”(서랜도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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