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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올해 임신 마세요" 이런 말도 들었다…도 넘은 학부모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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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전국교사모임 주최로 열린 서초 서이초 교사 추모식 및 교사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교사 처우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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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결혼했어요? 아 아직이시구나. 미혼 선생님이 아이들을 열정 있게 잘 가르쳐주시던데 선생님은 제 아들 졸업할 때까지 결혼하지 마세요.

이는 유아특수교사 A씨가 입학식 날 3세 특수반에 입학한 유아의 학부모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다.

24일 교사노동조합연맹 경기교사노조는 ‘교육을 죽이는 악성민원, 교사에게 족쇄를 채우는 아동학대 무고. 이제 이야기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사이트를 개설, 학부모 악성민원 사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교사노조는 지난 21일 오전 11시에 이 사이트를 개설하며 2만2000여명의 조합원 교사에게 사이트 개설을 알리는 문자를 보냈다.

사이트에는 문을 연 지 나흘째인 이날 오전 9시까지 A씨의 글을 비롯해 1653건의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게재됐다.

이 중에는 A씨 사례처럼 결혼이나 임신 등 교사 개인적인 사안에 대한 민원 사례가 여럿 있었다. 한 교사는 모친상으로 5일 자리를 비웠는데, “장례는 3일인데 왜 5일이나 자리를 비우냐”고 항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임신 계획이 있으시냐. 올해는 임신하지 말라”거나 “왜 방학을 놔두고 학기 중에 결혼을 하느냐”, 임신한 교사에게 “왜 우리 애는 맨날 이런 선생님만 담임 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발언을 한 학부모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 특수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선생님, 저는 무기가 많아요”, “학부모회,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제가 다 위원인 거 아시죠?”, “내가 아동학대로 고소해야겠어요? 우리 애가 선생님 싫다는데 내가 학운위라 교장선생님 봐서 참아주는 거야” 등의 협박성 발언을 들었다며 교육활동에 학부모의 참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던 한 교사는 학부모가 입학 이후로 “한약을 보낼테니 데워 먹여라” 등 수시로 민원 전화를 반복하더니, 어느 날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고 한다. 이 교사는 불안과 불면 등으로 9개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에 의한 명예훼손 사안까지 발생했지만 학부모는 사과 없이 아이를 다른 학교로 전학 시켰다고 한다.

이밖에 술만 마시면 밤늦게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와 이혼했는데 아직 아내를 사랑하니 선생님이 아이 엄마한테 잘 말해달라”는 남자 학부모, 길 건너 아파트에서 망원경으로 교실을 지켜 본 학부모, 크리스마스 아침 7시 30분에 전화를 걸어 “놀러가야 하는데 애가 방해되니 출근해서 애 좀 봐주고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한 학부모 등 다양한 학부모 악성 민원 사례가 올라왔다.

경기교사노조는 교사들이 마음껏 피해 사례를 알릴 수 있도록 기한을 두지 않고 사이트를 운영할 계획이다.

황봄이 경기교사노조 교권보호국장은 “사례 수집과 함께 교사들이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털어놓고 마음의 위로를 찾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당분간 사이트를 운영할 것”이라며 “사이트에 올라온 사례들을 보고 정리한 대안을 오늘 교사노조연맹과 교육부 장관 간담회 때 전달해 교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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