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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갑질·무시···'극단적 자기애'가 사회 우울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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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저자

원은수 디에프서초클리닉 원장 인터뷰

관심 갈구하고 타인 깎아내리는

나르시시스트로 인한 우울증 많아

오래 고통받다 자책·무력감 오기도

3년여간 유튜버로 대응법 알리고

'상처받을 이유'출간 문제점 지적

절대 자신 잘못 탓 아님 깨달아야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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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와 면역력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많이 받으면 정말로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거나 소화기질환·자가면역질환·우울증 등 심각한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죠. 저는 오늘날 대인 관계에서 경험하는 스트레스의 많은 부분은 지독히도 이기적인 사람들, 즉 나르시시스트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악성 나르시시스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를 펴낸 원은수(사진) 디에프서초클리닉 원장은 책을 쓰게 된 이유로 “오늘날 나르시시즘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사회의 나르시시즘이 일으키는 문제란 단순히 ‘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영역을 넘어 누군가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 때로는 심각한 사회 이슈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천시정신건강증진센터장, 차병원 교수 등을 지내며 우울증에 관해 깊이 연구해온 그는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우울이나 불면·불안이 사실은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원 원장은 “정신과 의사로 몇만 건의 상담을 진행했는데 오히려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한 환경과 관계 속에서 고통을 받다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특히 상당수는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배우자나 연인, 부모·형제, 매일 마주치는 직장 상사나 동료, 가까운 친구·지인 등과의 해결되지 않는 갈등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다가 ‘모든 게 다 내 탓’이라는 자책감이 커지며 무력감과 자존감 하락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처럼 우리 삶을 휘두르고 있는 나르시시스트의 존재와 수법을 파악해 적절히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나르시시즘이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된 상태로 통상 ‘자기애’로 번역된다. 단어 자체는 중립적이고, 건강한 나르시시즘은 긍정적 측면도 크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으로 가득한 나르시시스트들은 주변인을 고통에 빠뜨린다. 자신의 재능과 업적을 과대평가하면서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대단함을 칭찬해주는 존재로만 소모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상대의 감정과 가치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고 무시한다.

그는 오늘날 악성 나르시시즘이 일으키는 문제는 개인 관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영역에서 발견되고 있다고도 했다. 예를 들어 청소년의 우울증이나 자해 등의 배경에는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는 “겉으로는 우리 아이를 굉장히 사랑한다고 열렬하게 표현하면서 사실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거나 내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할 때만 조건적으로 사랑과 인정을 주는 부모들로 인해 아이들의 정서가 파괴되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고 했다. 또 한국 사회의 오랜 문제인 고부 갈등이나 남녀 간의 의처증·의부증, 외도, 데이트 폭력,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 등도 악성 나르시시즘의 큰 범주 안에서 설명되는 부분이 많다고 한다.

원 원장이 2019년부터 3년 반 넘는 시간 동안 유튜브 채널 ‘토킹닥터스, 토닥’을 통해 나르시시스트의 존재와 대응법에 대한 영상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나타나는 문제 양상을 달라도 뿌리에는 비슷한 악성 나르시시즘 이슈가 있는 경우가 많기에 모두가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았다”며 “직접 상담할 수 있는 사람 수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더 넓은 면을 가진 플랫폼을 통해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혹자는 어떻게 나르시시스트 한 주제로만 3년 이상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지 묻는데 나는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여전히 너무 많다”며 “그만큼 우리 삶 전반에 걸쳐 나르시시즘의 문제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담자들을 만나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지금 이 고통이 내 자신의 잘못이나 나약함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자책하는 모습이었어요. 나쁜 상대가 반복적으로 상처를 주는 상황이 절대 나의 잘못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제 책과 콘텐츠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서울경제


다음은 원은수 원장과의 일문일답

-건강한 나르시시즘과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은 어떻게 구분하나.

△모든 사람은 누구나 자기애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걸 좋아하고,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아 우쭐하는 모습만으로 나르시시즘적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또 나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굳건히 믿으며 흔들리지 않는 것 자체는 건강한 나르시시즘에 가깝다.

다만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건강한 나르시시즘은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측면만큼이나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그런 양면적 모습이 통합된 하나의 개체라는 것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감이 견고하다. 반면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의 핵심은 불안정한 정체성과 자존감에 기인한다. 이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칭찬을 받으면 자신을 특출나게 뛰어난 사람으로 여겼다가 비난을 받으면 스스로를 턱없이 못난 사람으로 여기는 등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극단적으로 격변한다. 자신의 부정적 측면이 두려운 나머지 자신을 돋보이는 환경을 만드는데 빠져들고 집착한다.

또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은 관심과 칭찬을 원하고 주목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성공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정도로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면 적절한 선에서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줄 안다. 반면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은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고 심취한다. 그래서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이 훨씬 더 큰 자리를 잡아 다른 사람들에게 고의적이거나 반복적으로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나르시시스트라고 한다.

-나를 괴롭히는 나르시시스트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싸워서 이긴다는 말은 내게 피해를 준 사람의 잘못을 직면시켜 책임을 지게 하고 피해를 보상받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의 가장 큰 성격 특성 중 하나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인식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무능감이 자극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실수를 돌아보는 행동 자체를 하지 않는다. 또 공감 능력이 손상됐기에 자신의 잘못으로 상대가 얼마나 큰 아픔을 받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니 책임을 논하는 단계로는 나아갈 수가 없고, 아무리 책임지라고 외쳐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조심해야 할 부분이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정말 잘못했더라도 공개 지적을 받을 경우 엄청나게 폭발적인 분노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워낙 싸움을 즐기고 잘하기에 정면돌파할 경우는 오히려 피해자가 더 오랫동안 고통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나르시시스트의 잘못에 대해서도 우리는 참을 수밖에 없는 건가.

△그들의 잘못을 묵인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서 스스로 행동을 제어할 능력도 부족하기에 누군가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그냥 넘어간다면 ‘내가 계속 이렇게 해도 되는 거네’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렇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릇되게 행동할 여지가 관계 안에서 싹트는 것이다.

결국 나르시시스트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착취 대상(서플라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인정과 확인을 통해서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존감을 유지한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타인의 찬사를 갈구하고 그런 칭찬이 없으면 결국 자존감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착취 대상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나를 괴롭히는 나르시시스트가 부모인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족 안에서의 문제는 케이스가 모두 다르기에 조언이 쉽지 않다. 나르시시스트를 대하는 원칙 중 대표적인 것이 ‘적절한 거리 두기’인데 가족일 경우에는 이 방법이 오히려 죄책감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곡된 사회·문화·종교적 가치관들로 인한 정당하지 않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평생 나르시시스트 부모와의 학대적 관계 안에 머물러 있는 것 또한 결코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중요한 점은 스스로가 어느 정도의 선을 찾아내는 것이다. 적대적인 면이 극심해 어떤 교류라도 있다면 결국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면 거리를 확실하게 두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반면 어느 정도 교류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하겠다면 그렇게 하는 편이 좋다. 다만 교류를 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기대치는 낮춘 상태로 이어가야지 또다시 상처받는 일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두면 좋겠다.

-내 상처가 내 탓이 아니라니 위로가 되지만 나를 둘러싼 관계 문제 모두를 나르시시스트 상대방에 돌려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

△물론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사람을 나르시시스트로 규정해서야 관계를 맺기도 어렵고 있는 관계도 분열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결함을 감추기 위해 나를 비난하고 깎아내려 반복적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을 곁에 둘 필요는 없다. 보통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감정적 갈등이 일어났다면 원인은 양쪽 모두에 있는 게 맞다. 그런데 갈등 원인을 전적으로 나에게 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는 이 상황을 만들어가는 상대가 나르시시스트가 아닌지, 상황을 교묘하게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나르시시스트의 존재를 파악하고 나르시시스트를 알아채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도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 견고한 정체성과 안정적인 자존감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 안에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이 있다면, 그런 심리를 자각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대인관계를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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