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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교실 들어가면 숨이 안 나와” 교사 26%, 민원·학생갑질에 정신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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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초등교사 A(36)씨는 “아직 교실에 들어가면 숨이 안 나올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3년전 한 학생이 방과후 수업에서 앞니가 깨지면서 몇달 동안 학부모에게 시달려야 했다. A씨의 수업이 아닌데도 학부모는 A씨를 비난했고 ‘민원 진행상황 보고서’를 매일 A4 한 장으로 써서 내라는 요구까지 했다. 학교장은 “어쨌든 아이가 다쳤다”며 교사를 외면했다. 고립된 A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고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그는 “쉬는 시간엔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기도 한다”고 했다.

최근 A교사처럼 정신과 치료와 심리 상담을 받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지난 4월 전국 교사 1만1377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최근 5년 동안 교권 침해 때문에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은 26.6%에 달했다. 교사 4명 중 1명이 교권 침해 문제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17개 교육청 치유지원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받은 교사 건수도 2021년 1만3621건으로 5년 전의 3498건에 비해 4배 넘게 증가했다. 교사가 겪는 학교 내 폭력과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날로 심각해진다는 뜻이다. 한 교사는 “부당한 민원이 많아 심적으로 고통스럽다”며 “교실에서 대응할 방법도 마땅치 않아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조선일보

학생, 학부모의 교권 침해에 시달리다 정신병원을 찾는 교사가 늘고 있다./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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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교원노조 조사에 따르면 교사 70.4%가 학생으로 인한 교권 침해를 경험했다. 인천의 4년차 초등교사 B(26)씨는 일부 학생이 성적(性的) 단어를 떠들며 수업을 방해하는데도 “적절한 단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혼내면 ‘아동 학대’로 고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일이 반복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지난 3월 처음 찾은 정신과에서 우울증과 불안 장애 진단을 받았다.

경기도의 3년차 초등교사 C(24)씨는 학생과 학부모의 폭언으로 발령 1년만에 불안 장애가 생겼다. 한 학생에게 ‘수업 태도를 바로하라’고 했더니 그 학생은 “엄마 아빠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는 주제에 혼내면 안 되죠”라고 대꾸했다. 경험이 적은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초임이니 애들 수준도 제대로 파악 못한다” “애를 안 낳았으니 학부모 마음을 이해하겠느냐” 등의 폭언을 듣기도 일쑤다.

이 같은 스트레스로 병원을 찾는 교사가 많다 보니, 학교에 병가 등을 내기도 힘들다. 부산의 8년차 초등교사 D(32)씨는 “주변 젊은 교사는 절반 이상이 정신과를 정기적으로 가는 것 같다”며 “병원에서는 ‘잠시 쉬라’고 하지만 병가를 내면 문제 학생·학급은 결국 동료 선후배 교사나 기간제에 떠넘기는 꼴이 돼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학교장·교감 등 관리자도 교사의 심리 상태를 배려해줄 여력이 없다. 민원의 최고 책임이 학교장·교감을 향하는 데다, 심리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교사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교사들을 담임이나 부장 업무에서 다 빼면 학교엔 일할 사람이 안 남는다”고 한다.

당국도 교사 심리 상담을 지원하고 있지만, 폭증하는 교권 침해 피해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라는 반응이다. 교원지위법에 따라 시도교육청은 2017년부터 각 권역에 ‘교원치유 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심리 상담 등을 제공을 지원한다. 지원센터가 교육청과 협약을 맺은 지역 내 심리상담센터 등 기관과 교사를 매칭해주고, 이후 치료비 지원 같은 행정절차도 도맡는 형태다. 하지만 이 지원센터 자체가 권역별로 1~6곳 정도 설치되는데 그친다. 경기도의 중학교 교사 E(51)씨는 “경기도는 학교만 2400개에 인구가 1000만명이 넘지만, 센터는 권역별로 6곳 뿐”이라며 “그냥 사비를 내고 병원에 가는 교사가 더 많다”고 했다. 서울교사노조 측은 “교육청도 지원과 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교권침해 사례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했다.

심리상담 전문성에 아쉬움을 표하는 교사도 있다. C씨는 “협약 기관에서 심리 상담을 받았는데 교육 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 ‘그래도 교사는 전문직이고 얼마나 좋냐’ 등의 발언을 해 황당했다”고 했다.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본부장은 “교권침해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심리 상담 지원 기관 규모를 현실화해야 한다”며 “근본적으로는 교사의 교권침해 피해를 줄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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