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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이런 갑질 행정은 또 처음"… 광주시 빗나간 자율방재단 복장 구매 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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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끼·모자 1710개씩 입찰 발주
견본도 안 주고 시제품 제작 재촉
시제품 나오자 색상 차이 꼬투리
계약에 없는 색차 시험 결과 요구
복장 치수별 수량 확정 시간 끌다
납기 넘기자 지연 배상금 '으름장'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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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도 이런 갑질이 어디 있답니까?"

광주광역시에서 근무복 제작 업체를 운영하는 A(75)씨는 최근 광주시가 발주한 지역 자율방재단 활동 복장(여름용 조끼·원형 모자) 구매 입찰을 따냈다가 황당한 일을 겪고 있다. 복장 제작에 필요한 견본도 제공하지 않았던 입찰 발주 부서 공무원들이 A씨가 자율방재단을 통해 확보한 견본으로 시제품을 제작해 오자 색상 차이를 문제 삼아 6개월째 복장 치수별 납품 물량도 확정해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A씨는 "담당 공무원들이 계약 내용에도 없는 원단 색차(色差) 시험 결과를 요구하며 시간을 끌더니, 이제 와선 납품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지연 배상금을 물리겠다고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가 광주시와 자율방재단 물품 납품(2인 이상 수의 견적) 계약을 체결한 것은 4월 24일. 당시 A씨는 적정 이윤까지 포기한 채 저가 낙찰 금액(3,928만289원)으로 여름용 조끼와 원형모를 각각 1,710개씩 만들어 광주시에 1개월 내로 납품하기로 했다. 이에 A씨는 광주시에 "시제품 제작에 필요한 조끼와 모자 견본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광주시는 "견본을 구하기 힘들다"면서 A씨에게 자율방재단원 등을 통해 직접 견본을 구해서 시제품을 만들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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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와 지역 자율방재단 활동 복장(여름용 조끼) 납품 계약을 맺은 A씨가 직접 구한 견본(왼쪽)과 이를 토대로 만든 시제품(오른쪽). A씨는 광주시가 견본을 제시하지 않아 모 자치구 자율방재단을 통해 견본을 확보한 뒤 시제품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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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기가 막혔지만 수소문 끝에 B자치구 자율방재단을 통해 조끼와 원형모 견본을 구한 뒤 6월 중순에서야 시제품 제작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광주시는 납품 계약 기간을 7월 22일로 연장해 줬다. 이후 광주시의 태도는 돌변했다. "견본을 구할 수 없다"던 광주시는 A씨가 시제품을 내놓자 돌연 C자치구 자율방재단 조끼를 견본으로 내놓으며 색상(녹색) 불일치를 지적했다. A씨가 "이제 와서 엉뚱한 견본을 제시하는 게 말이 되냐"고 반발하자, 광주시는 6월 21일 "원래 견본(B자치구)과 시제품의 색상이 같다"며 한발 물러서는 듯했다.

하지만 광주시는 돌연 보름 뒤 "견본과 시제품의 색상 차이가 확연하다"며 계약 내용에도 없는 측색(測色) 시험 결과를 요구했다. A씨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어쩔 수 없이 국가공인 시험연구기관인 KOTITI시험연구원(옛 한국섬유기술연구소)에 견본과 시제품에 대한 색차(色差) 측정 시험을 의뢰했다. 그 결과 국제조명위원회 색차 계산식에 따른 색차(ΔEab)값은 1.79였다. 이 수치는 색차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미국 국립 표준사무국(NBS)의 NBS 단위로 환산하면 1.62이다. 특히 섬유업계에서 주로 쓰는 계산식으로 따지면 색차값(ΔEcmc)은 0.85로 낮아진다. NBS 단위 0~0.5는 '미약(trace)', 0.5~1.5는 '근소(slight)', 1.5~3.0은 '눈에 띌 정도(noticeable)', 3.0~6.0은 '상당할 정도(appreciable)', 6.0~12.0은 '많은(much)', 12.0 이상은 '매우 많은(very much)'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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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가 2018년 7월 개최한 자율방재단 활성화 간담회에서 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자율방재단원들이 다소 색상(녹색) 차이가 나는 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광주광역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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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광주시가 규격서에서 복장 제작 방법으로 제시한 전국자율방재단연합회 운영 세칙엔 색상에 대해선 '밝은 녹색'으로만 규정하고 있어서 이 같은 색차 측정 시험이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광주시는 "견본 색상과 일치하도록 시제품 원단 색상을 더 진하게 물들이라"고 요구했다. 한마디로 원단을 좀 더 '어두운 녹색'으로 다시 염색하라는 것인데, 이는 운영 세칙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A씨는 "원단 재염색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발했지만 광주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광주시의 터무니없는 요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A씨는 납품 계약 이후 조끼 치수별 납품 물량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줄곧 "통상적 수량으로 제작하라"는 황당한 답변만 반복했다. A씨는 "담당 공무원들이 시제품 색상에 대해 생트집을 잡고 조끼 치수별 물량도 정해 주지 않으면서 납품을 방해하더니, 납품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지연 배상금을 물리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며 "광주시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사업을 포기시킨 뒤 다른 업체에 이 사업을 주려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물품 구매 발주 당시 규격서에 따라 견본과 시제품의 색상 불일치에 대한 교정을 요청했지만 A씨가 응하지 않으면서 납품 계약 기간이 지난 것"이라며 "치수별 물량을 통상적 수량으로 납품하도록 한 것은 A씨에게 자율성을 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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