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출신 법학자 홀리 맥기건은 91년 '구타당하는 여성과 정당방위'라는 논문으로,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대응 살인을 과잉방어나 의도 살인으로 판단하던 당시 법조계의 일반적 관행을 여지없이 반박함으로써 피해 여성에게 정당방위의 법적 방패를 부여했다. 그는 대응 살인을 범한 피해 여성의 주된 변론 논거였던 '구타당하는 여성 증후군'과 '학습된 무기력'의 한계와 오류도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N.Y.U. Photo Bureau/Hollenshead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가정폭력을 형법상의 범죄로 규정된 건 100년 남짓 전부터다. 지난 세기 초만 해도 미국 11개 주에서 가정폭력은 가장의 훈육(domestic discipline)이었다. 영국의 오랜 관습법 중에 ‘엄지손가락 법칙(rule of thumb)’이란 게 있었다. 아내에게 매질할 땐 몽둥이(회초리)가 엄지손가락보다 굵지 않아야 한다는 것. 과도한 폭력으로부터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저 ‘인도주의적 불문율’은 19세기 초 미국 여러 주에서 법제화됐다. 16세기 러시아 법에는 아내의 귀는 때려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장애가 생기면 남편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법이 생겼어도 한동안 유명무실했다. 미국의 경우 가정폭력범은 196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드물게나마 입건-기소되기 시작했다. 이제 대다수 국가는, 일부 종교문화권을 제외하면, 저 끔찍한 어제의 세계와 적어도 법-제도로는 결별했다.
하지만 문화-관습의 관성까지 극복했다고 말할 순 없다. 유엔여성기구가 집계해온 젠더폭력 실태가 방증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2021년 기준 성인 여성 3명 중 1명이 물리적 정서적 폭력을 경험했고, 물리적 폭력은 대부분 (전)배우자나 (전)연인에 의해 저질러졌다. 미국서는 분당 약 24명, 한 해 1,200만여 명이 파트너에 의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겪는다. 강간을 포함한 물리적 폭력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사실 법-제도의 현실도 법조문과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법을 집행하고 재판(기소-변호-판결)하는 주체도 결국 문화-관습의 산물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1988년 한국의 만 32세 기혼 여성이 강제로 키스하려던 괴한의 혀를 깨물어 훼손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유죄(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판결을 받았다. 2심에서 뒤집히긴 했지만, 1심 재판부는 피고의 정당방위’가 아닌 검찰의 ‘과잉방어’ 주장에 동조했다. 만일 폭행범이 생면부지의 괴한이 아니라 남편이었다면, 여성이 상대의 혀가 아니라 목숨을 앗았다면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이 휩쓸고 간 70, 80년대 미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방화로 살해해 1급 살인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로 풀려난 프랜신 휴즈(Francine Hughes)의 1977년 사건에서도, 배심원단의 무죄 평결 근거는 정당방위가 아니라 ‘일시적 정신이상(temporary insanity)’이었다. 위험의 임박성과 대응 폭력의 비례성 등 형법상 정당방위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법원은 물론이고 당시 변호사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여성운동 진영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프랜신 휴즈 사건을 소재로 한 84년 TV영화 'The Burning Bed'의 DVD. 배우 패러 포셋이 휴즈를 연기했다. imdb.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뉴욕대 로스쿨 교수 홀리 맥기건(Holly Maguigan)은 1991년 12월 논문으로, 형법 개정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변호사 출신 법학자인 맥기건은 수많은 변론 경험과 조사 자료를 근거로, 잘못된 건 법이 아니라 법 해석과 적용이며 재정의(개정)해야 할 건 법의 (정당방위)증거조항이 아니라 재판의 공정성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논문은, 뉴욕시립대 로스쿨 교수 스티브 자이드먼(Steve Zeidman)의 말처럼 “선구적이고도 충격적으로(… 남편을 살해한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정당방위 주장이 가능하다는 걸 일깨웠다.” 구타당하는 여성들에 대한 그릇된 통념과 신화를 부정하고법 해석 관행의 오류를 반박함으로서 가정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한 수많은 여성(및 변호사들)에게 정당방위의 법적 방패를 쥐어 준 홀리 맥기건이 심장 질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펜실베이니아대 법률리뷰에 발표한 논문 ‘구타당하는 여성과 정당방위: 근년의 법 개정 제안에 담긴 신화와 오해들’에서 맥기건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방어 살인이 위험의 임박성(temporal proximity)과 폭력의 비례성(proportionality of force) 등 정당방위 요건에 위배된다는 판단을 ‘데이터’로 반박했다. 힘없는 여자가 남편을 죽이려면 사전에 범행을 계획한 뒤 남자가 무방비 상태일 때 총기 등 압도적인 물리력을 동원해야 가능하다는 통념. 그는 여러 사회학-범죄학 데이터를 근거로 여성들이 저지른 방어 살인의 70% 이상이 구타당하는 와중이거나 임박한 위험에 직면해 빚어졌고 일부 연구에서는 그 수치가 90%에 육박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리고, 남자가 정당방위로 살인하는 것은 기본권으로 간주하면서 여성이 자신과 자녀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살해하는 것은 충격적인 범죄로 보는 배경에 “무력하고 소심한(wan, mousy) 여자가 이성을 잃은 나머지, 잠이 든 불운한 남자를 죽였다는 대중적 신화가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폭력의 비례성에 대해서도 그는 법 해석이 서부 총잡이들의 결투처럼 대등한 물리력을 지닌 이들의 대결을 전제하고 있다며,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대응 살인에서는 남녀의 신체 조건과 나이, 폭력 전력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프랜신 휴즈의 경우처럼 당시 여성들의 거의 유일한 변론 논거였던 ‘구타당하는 여성 신드롬(BWS)’, 즉 ‘일시적 정신이상’과 ‘학습된 무기력’ 논리를 무력화하는 거였다. 그는 여성이 기소-유죄 평결을 면하려면 미친 사람이 되거나 철저히 무력한 존재가 돼야 하는 건 바람직하지도 옳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잘못된 건 여성이 아니라 가정폭력이고 그걸 용인하는 사회와 법 관행이라는 것. 그는 “여성을 병리화하거나 그들의 이성과 능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의 영향을 설명하려면 BWS 논리를 지양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제자들을 가르치고 현역 변호사들과 여성 인권 활동가들을 설득했다.
공익 로펌에서 형사 전문 변호사로 일하던 1981년 무렵의 홀리 맥기건. 그는 86년 대학으로 일터를 옮긴 뒤로도 젠더 폭력과 여성 대응 범죄 관련 법조계 및 시민단체와 긴밀히 협력했다. Temple University Libraries, Philadelphia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홀리 맥기건은 공장 관리인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의 딸로 버지니아주 버팔로에서 태어났다. 중세사학자가 되기 위해 펜실베이니아 스와스모어 칼리지(66년 졸업)와 UC버클리 대학원(69년 졸업)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2013년 한 법률저널 '로앤오더' 인터뷰에서 그는 “변호사란 사람들을 무척 싫어했다. 늘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떠벌리지만(…) 보석금은 한 푼도 보태 주지 않는 사람들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그 생각은 대학원 시절 반전-페미니즘 시위 현장의 인권변호사들을 만나면서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69~72)을 나와 만 3년 관선변호사로 일한 뒤 관선 출신 선배들이 차린 공익 로펌(75~86)으로 옮겼다. 가정폭력과 대응 상해-살인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던 무렵이었다.
60년대 이후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여성 범죄(공공질서 사범, 비폭력 재산 범죄 등) 뿐 아니라 상해-살인 등 비전통적인 여성 범죄도 늘어났다. 70년대 여성 수감율(인구 10만 명 당 수감자 비율)은 남성 수감율을 약 2배 가량 앞질렀고, 70년대 말 이후 2009년까지 무려 800%나 증가했다. 젠더폭력 전문 변호사 마이클 다우드(Michael G. Dowd)는 비전통적 여성범죄로 수감된 이들 상당수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라고 밝혔다.
앞서 언급했듯이 가정폭력으로 입건-기소되는 예는 극히 드문 반면 가해 남편을 살해한 여성은 거의 예외 없이 1-2급 살인죄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검찰과 법원은 왜 이혼하지 않았는지, 총이나 칼로 대응해야 할 만큼 남편의 폭력이 위협적이었는지를 주로 따졌다. 정당방위냐, 과잉방어 또는 의도 살인이냐는 거였다. 변호사 맥기건은 "가정폭력 관련 사건은 무척이나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아무도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에서 누구보다 자주 무력감을 경험했다. 그 무력감은 부채감이기도 했다. 그는 뉴욕시립대(86년)를 거쳐 뉴욕대 로스쿨 교수(87~2021)로 재직하면서도 늘 한 발은 ‘현장’에 두었다.
프랜신을 변호한 관선변호사는 “정당방위-무죄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일시적 정신이상(심신미약)을 변론 요지로 삼았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말했다. 미국 심리학자 리노어 워커가 영미 가정폭력 피해 여성 1,500명을 인터뷰한 뒤 정립한 ‘학대 사이클(cycle of abuse)’ 이론과 BWS 이론이 갓 알려진 직후였다. 학대 사이클이란 만성적인 학대와 폭력이 대개 일정한 패턴 즉 스트레스와 갈등이 중첩돼 긴장이 고조되다가 언어-심리적 학대 단계를 거쳐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고, 사과-화해를 시도하며 적대적인 소강 국면을 지난 뒤 상습 폭력으로 악화·고착화된다는 이론.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처음엔 수치심과 혼란스러움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다가 점차 두려움과 공포, 자포자기의 무력감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게 BWS 이론이다. 앞서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의 60년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이론이 있었다. 낮은 칸막이로 양분된 상자 안에 개를 넣어놓고 한쪽 바닥에 전기충격을 가하면 개는 반대편으로 피하지만 개가 이동할 때마다 그 칸에 계속 충격을 가하면 어느 순간 개가 회피 노력을 포기해버린다는 것. 가정폭력 피해 여성은 경찰의 방관과 신고 이후의 보복 폭행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점차 대안을 모색하는 시도조차 못하게 된다. 피신에 성공한 이후의 생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미국의 여성 쉼터는 70년대 중반에야 일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가정폭력 관련 범죄 전문 변호사 티파니 스미스(Tiffanny Smith)는 “여성이 폭력적인 파트너와 결별하는 순간이야말로 살해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며 “결별을 포기하는 것도 역설적인 형태의 자기방어”라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주장했다.
구타당하는 여성 신드롬(BWS) 이론과 폭력 사이클 이론 등으로 수많은 가정폭력 피해- 대응 폭력 가해 여성이 무죄 평결을 받는 데 크게 기여한 페미니스트 여성 심리학자 리노어 워커. drlenoreewalker.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워커의 이론, 즉 구타당하는 여성들이 겪는 불안과 위축감 등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처럼 대체로 옳았고, 재판에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워커는 70년대 말부터 변호인측 전문가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하곤 했고, 80년 책 ' 구타당하는 여성'을 출간했다.
하지만 맥기건이 주목한 건 워커의 이론이 지닌 한계와 역기능이었다. 그에게 워커의 이론은 가정폭력을 지나치게 단순화-일반화한 거였고, ‘학습된 무기력’ 개념은 여성을 정당방위의 적극적 주체로 서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장애물이었다. 질병이나 장애 증상에 흔히 붙는 ‘증후군’이란 용어도 그는 못마땅해 했다. 여성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 즉 여성은 감정 통제 능력이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한 여성을 나약하고 불안정한 존재로 규정한다는 거였다. 근년에는 저 용어 대신 ‘폭력 반응(Violence Response)’ 등 성중립적 용어가 일반적으로 쓰인다.
하지만 저 의미 있는 헌신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폭행 피해 여성이 정당방위 재판에서 이기는 게 80년대보다 오히려 힘들어졌다”고 다우드는 2016년 법률저널 'FindLaw' 칼럼에 썼다. 세상이 바뀌면서 사회가 가정폭력의 부당함을 알게 되고 여성이 가해자와 맞서 싸울 권리를 인정하게 됐지만 이제 새로운 듯 전혀 새롭지 않은 편견 즉 ‘해당 여성’은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 보호받을 자격이 없는 여성이라는 논리와 더 힘겹게 싸워야 한다는 거였다. 다우드에 따르면 법원이 요구하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착한 피해 여성’은 남편에게 늘 순응하며 가사에 층실한 주부이면서 불륜이나 알코올-약물 남용 전력이 없는, 아내의 미덕을 갖춘 여성이다.
맥기건은 69년 결혼한 첫 남편과 74년 사별한 뒤 ‘헌법적 권리 센터(CCR)’ 활동가 애브딘 자버라(Abdeen Jabara)와 97년 결혼해 해로했다. 그는 한때 연인이었던 민주당 수석전략가 출신 폴 툴리(Paul Tully)와 딸 한 명을 두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