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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책은 1권인데 공동저자 162명, 전국 초등생들의 '사랑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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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제로 그림책을 만들어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김해 동광초의 동내화(38) 교사가 지난해 11월 5일부터 12월 29일까지 전국에서 받은 우편물의 모습. 동내화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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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우체국 사서함 4호에는 지난해 11월부터 전국에서 보낸 그림과 글 200여편이 쌓였다.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학부모가 보낸 것도 있었다. 보낸 사람은 다양하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는 같았다. 함께 그림책을 만들어 기부하자는 한 초등학교 교사 제안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작품이었다.



“함께 그림책 만들어 기부”… 초등교사 제안에 가득 찬 사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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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제로 그림책을 만들어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김해 동광초의 동내화(38) 교사가 지난해 11월 5일부터 12월 29일까지 전국에서 우편으로 받은 그림과 글들의 모습. 동내화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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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광초의 동내화(38) 교사는 ‘사랑합니다’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림책을 만들어 수익을 전액 기부하는 활동인데, 책의 저자는 동 교사가 아니다. 전국에서 작품을 보내온 100명이 넘는 학생과 함께 만들어가는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동 교사는 지난 11월부터 동료 교사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책 공동저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블로그와 SNS에도 홍보물을 올리고 그림과 글을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당신은 어떤 말과 행동에 사랑을 받았다고 느꼈나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나요”라는 동 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이 글과 그림으로 전국에서 몰려왔다. 그가 사랑을 주제로 삼은 이유는 최근 문제가 된 학교폭력과 교권 침해가 계기였다. 동 교사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면 이러한 문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친구 사랑에 ‘갈치 사랑’까지… 저마다의 뭉클한 사랑 경험



지난해 12월 29일까지 사서함에는 전국의 162명이 보낸 200장의 글과 그림이 도착했다. 동 교사는 “가장 인상 깊은 것을 딱 하나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그림과 글에서 전해져 오는 저마다의 감동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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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제로 그림책을 만들어 기부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중학생 옹달샘(필명) 양이 보낸 글과 그림. 동내화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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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옹달샘(필명) 양은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친구들이 집 문 앞에 놓아준 책과 간식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는 “학교에 못 나가고 있을 때 친구들이 제가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교과서와 간식을 가져다주었다. 친구들이 저를 정말 아껴주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4학년 1반 명패가 달린 교실 안에 선생님과 자신의 모습을 나란히 그린 초등학생 이로아 군은 “제가 사고를 쳐도 항상 용서해주시고 이해해주시고 저를 가르쳐주시고 사랑해주신 4학년 선생님, 저에게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글을 함께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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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제로 그림책을 만들어 기부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초등학교 1학년 다문화학생이 보낸 글과 그림. 동내화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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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사랑을 받았다고 느낀 경험은 저마다 다양했다.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초등학교 1학년 다문화 학생은 친구에게 안경을 건네주는 그림과 함께 서툰 글씨로 “안경을 닦아줬다”고 적었다. 초등학교 4학년 곽근우 군은 엄마가 생선 살을 발라주는 모습을 그리고 “나는 엄마께서 갈치살을 발라주실 때 사랑을 느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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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제로 그림책을 만들어 기부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초등학교 4학년 곽근우 군이 보낸 글과 그림. 동내화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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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할머니도 색연필 그림 그려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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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제로 그림책을 만들어 기부하는 프로젝트에서 '동네할머니'라는 필명으로 참여한 70대 할머니의 그림. 동내화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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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뿐만 아니라 부모와 할머니도 참여했다. ‘동네할머니’라는 필명의 70대 할머니는 색연필로 두 손을 꼭 모아 기도하는 백발의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사연을 보냈다. 할머니는 ‘칠십의 고개를 넘으며 배운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음에, 세상 모든 분의 수고와 노동으로 먹고 누리고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라며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모든 일상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음은 세월이 가르쳐 준 지혜인 것 같다”고 적었다.

40대 학부모인 민경인씨는 강아지 그림과 함께 “양갱이는 우리 가족에게 절대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며 “고3 큰아이는 입시에 지쳐 힘든 몸과 마음을 양갱이를 통해서 충전할 수 있고, 중학생 둘째 아이는 이불 속을 파고들어 품 안에서 함께 자는 양갱이를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수익금 모두 기부… “올해는 더 따뜻한 사회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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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제로 그림책을 만들어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김해 동광초의 동내화(38) 교사(가운데)의 모습. 동내화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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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교사는 이러한 그림과 글을 모아 올해 상반기 안에 그림책과 e북을 출간한 뒤 인세 등의 수익금은 모두 ‘국경 없는 의사회’에 기부할 계획이다. 앞서 동 교사는 2020년에는 ‘감사’를 주제로 제자 27명과 함께 그림책을 만들고, 수익금 271만원을 모두 ‘초록나무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기도 했다.

동 교사는 “모두가 함께 만든 그림과 글을 다양한 공공장소에서도 전시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다시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올해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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