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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 원흉’도, ‘친환경 발전’도 불붙는 베트남… 탈석탄 포기 못 하는 이유는 [아세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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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갈 길 먼 에너지 전환

편집자주

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금요일마다 함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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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베트남 하이즈엉성 치린시에 위치한 북부 지역 최대 규모 발전소 파라이화력발전소의 굴뚝이 까만 연기를 내뿜고 있다. 하이즈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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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달 15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56㎞ 떨어진 하이즈엉성 치린시 파라이화력발전소. 베트남 북부 최대 규모 발전소인 이곳에선 각 굴뚝마다 시꺼먼 연기를 쉴 새 없이 내뿜고 있었다. 연기가 바람에 흩어지기 무섭게 또 다른 까만 연기가 빈자리를 채우면서 하늘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뒤덮였다.

약 1㎞ 거리에 있는 꺼우강에선 석탄을 가득 실은 바지선이 바쁘게 오갔고, 강둑엔 석탄이 가득 쌓여 있었다. 공장 앞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A씨는 “1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했지만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지 않는 날을 본 적이 없다”며 “심지어 올해(2023년) 5월 유독가스 배출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발전기는 계속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2. 같은 달 2일 하노이 인근 하남성 풀리시의 한 5층 건물 옥상에선 태양광발전 설비 설치 작업이 한창이었다. 발전 패널 14개 남짓, 크지 않은 규모였으나 직원들은 행여 실수라도 할까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팀장인 풍은 “2, 3년 사이 일반 대지부터 농지, 기업, 가정집까지 태양광발전 패널을 설치하고 싶다는 문의가 급격하게 늘었다”며 “최근 정부 지원액 축소로 예년만 못해도 찾는 고객은 여전히 꾸준히 있고, 오늘도 또 다른 설치 스케줄이 잡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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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베트남 하이즈엉성 치린시 파라이화력발전소 인근 꺼우강 강변에 석탄이 가득 쌓여 있다. 하이즈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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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태양광 메카’ 떠오른 베트남


‘지구온난화 원흉’으로 꼽히는 석탄화력발전과 ‘친환경’ 상징인 태양에너지. 양극단을 달리는 두 발전원의 공존은 베트남 같은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전환 상황을 여실히 보여 준다.

전 세계적인 탈탄소 추세에 발맞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도 신재생에너지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10개 회원국 중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8개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넷제로·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태양광이나 수력,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발전을 늘리는 추세다.

특히 베트남은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이 빠른 동남아 국가다. 2022년(상반기 기준) 태양광발전은 전체 전력 수요의 11%를 차지했다. 2017년 거의 제로(0)였던 점을 감안할 때 유례없는 속도의 성장 사례다. 2020년에는 1만6,500㎿(메가와트)를 생산하며 한국 태양광발전량(1만4,500㎿)을 뛰어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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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베트남 하남성의 한 대지에서 태양광발전 설비 업체 직원들이 패널을 설치하고 있다. 풍 팀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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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급 원전인 한국 신고리 1호기를 대입해 보면, 베트남은 태양광만으로 16.5기의 원전 발전 용량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베트남 정부가 태양광 설비 설치 장려를 위해 2018년부터 발전차액지원(FIT) 제도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 데 따른 결과다. 베트남은 내년까지 태양광발전 용량을 1만7,200㎿로 늘리겠다고 밝혔는데, 민간 투자가 급격히 늘고 있어 실제로는 2만5,000㎿ 이상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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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태양광 발전 용량 변화 추이. 그래픽=김문중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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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급수적인 성장에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전체 전력 점유율 측면에서만 보면 베트남의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프랑스나 일본보다 높다”며 “화석연료로 어두운 동남아 하늘 중 가장 밝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경제 발전’ 전력 공급보다 수요 높아


그러나 베트남은 석탄 의존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지난해 베트남전력청(EVN)은 전체 전력 생산량 가운데 49.8%가 석탄화력발전에서 나왔다고 공개했다. 수력발전(22.9%)과 재생에너지(13.8%) 등 제2, 제3의 발전원을 합쳐도 화력만 못하다. 정부는 2022년 말 2만5,300㎿였던 석탄발전소 용량을 2030년까지 3만130㎿로 늘린다는 방침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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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발전원별 전력 생산 비중. 그래픽=김문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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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베트남 하남성 풀리시에서 태양광발전설비 업체 직원들이 패널을 설치하고 있다. 하남=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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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교적 ‘값싸고 빠르게’ 전력을 얻을 수 있는 석탄발전 특징 때문으로 풀이된다. 베트남은 △연평균 5%대의 고성장 △탈중국에 따른 외국 기업들의 생산 거점 이동 △중산층 확대에 따른 전자기기 구매 증가 등이 맞물리면서 기업과 가정의 에너지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아무리 재생에너지 투자와 생산량을 늘린다고 해도 친환경 전력 공급 속도가 수요 급증을 따라잡지 못하는 탓에, 석탄을 포기하지도 못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여름 이상고온으로 수력발전소 수위가 낮아지고 전력 생산량이 줄었을 당시에도 베트남 정부는 석탄발전을 최대 15%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렇다고 베트남이 ‘탈탄소’라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 추세에 역행하려는 건 아니다. 베트남을 포함해 아세안 10개국은 2016년 탄소 배출량을 제한하기로 한 파리기후협약을 비준했는데, 이를 지키려면 앞으로 탄소를 대량 배출하는 화력발전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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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베트남 하이즈엉성 치린시 파라이화력발전소 인근에 발전소와 연결된 송전탑과 송전선이 위치해 있다. 발전소에서 나온 연기로 하늘이 뿌옇다. 하이즈엉=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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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지난해 “2030년 이후 신규 석탄발전소를 짓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국가전력계획 청사진도 발표했다. 베트남의 ‘결심’을 지원하기 위해 주요 7개국(G7)과 노르웨이, 덴마크는 155억 달러(약 20조 원)를 차관 형식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2030년’이라는 모호한 시간표를 불편해하는 시각도 여전하다. 향후 6년간은 ‘규제 사각지대’ 속에서 화력발전소 신설에 의존해 비교적 손쉽게 발전 용량을 늘려오던 지금까지의 방식을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는 “베트남 정부가 지속불가능한 에너지 생산을 허용했다”고 비판했다. 앤드리 프라세티요 트렌드아시아 연구원은 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스에 “재생에너지 개발을 방해하는 실망스러운 결정”이라고 일갈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에너지 전환에 시동을 걸긴 했지만, 현실적 이유로 여전히 갈 길은 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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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즈엉·하남(베트남)=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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