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약 남용해도 기능 저하
유산소 운동, 수분 섭취 늘려야
오늘도 200L 분량의 혈액을 쉴 틈 없이 걸러내다 보니 하루가 저물었네요. 핏속에 노폐물이 무척 많아 고단한 날이었습니다. 참,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여러분의 믿음직한 여과기로서 체내 환경을 깨끗이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콩팥’입니다.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찌꺼기를 걸러내 폐기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 화려하진 않은 직업이나 누군가는 묵묵히 해야 하는 일이지요. 그런데 요즘, 나이가 상대적으로 젊은데도 골골거리는 콩팥 동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무리하게 운동하거나 극단적으로 체중을 감량하려 하고, 진통제를 무심코 남용하는 습관이 문제입니다. 사소해 보이나 절대 사소하지 않은 나쁜 습관 탓에 콩팥이 기능을 잃어 투석 치료를 받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제 수명이 단축되면 다른 장기들도 도미노처럼 망가집니다. 나이가 젊다고 방심해선 안 돼요.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 같으나 생각보다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금부터 깨끗한 물 한잔 들이키고 여러분의 콩팥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 주세요. 그리고 성인 주먹만 한 크기의 콩팥이 당면한 위기에 관해 귀 기울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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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팥 망가지는 사소한 습관
근육 녹도록 무리한 운동
체육관을 두 번째 집인 듯 여기고 열심히 운동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선 땀 흘리며 운동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유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제는 간혹 격렬한 실내 자전거 운동인 스피닝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근육이 녹아버릴 정도로, 장시간 급격히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과한 운동은 콩팥에 심한 위협인 ‘횡문근융해증’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횡문근은 주로 움직이는 관절 주위에 있는 가로무늬의 근섬유입니다. 무리한 근육 운동을 해 횡문근이 빠르게 분해돼 녹아내리면 수많은 물질이 혈류로 급격히 방출됩니다. 이 중 하나가 근육에 색을 부여하는 미오글로빈이란 단백질입니다. 엄청난 양의 미오글로빈을 포함한 혈류가 콩팥으로 이동하면 여과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마치 수많은 콘서트 관람객이 작은 문 하나를 통해 이동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여과 장치가 막히면 콩팥에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가해집니다. 미오글로빈이 오래 정체돼 있으면 콩팥이 급격히 손상돼 기능이 뚝 떨어지고 급성 신부전까지 올 수 있어요. 실제로 스피닝 등 실내 운동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횡문근융해증 발병 환자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이들의 평균 연령은 25.7세였고, 이 중 15.3%가 신부전을 보였습니다.
한계를 뛰어넘으며 천하무적이라는 느낌에 매일같이 체육관의 영웅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근육 운동은 적절한 유산소 운동과 함께 해주세요. 처음부터 과격하게 하지 말고, 점진적으로 강도와 시간을 늘리기를 권합니다. 운동 시 적절한 수분 섭취는 필수랍니다.
장기간 습관적인 진통제 복용
신들의 왕인 제우스도 극심한 두통을 견디다 못해 프로메테우스에게 자신의 머리를 도끼로 쪼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행히 현대인에겐 진통제라는 손쉬운 방법이 있지요. 요즘처럼 추운 겨울엔 감기로 인한 두통이나 근육이 긴장해 발생한 근육통으로 진통제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집니다. 성가신 두통과 근육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너무나 손쉽게 진통제를 쓰다 보니, 오남용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굳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진통제를 마구마구 쓰는 습관은 콩팥의 수명을 갉아먹습니다. 예컨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 계열의 약은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효소를 억제함으로써 작용합니다. 프로스타글란딘은 콩팥으로 가는 혈류를 촉진하고 전해질 균형에 도움을 주는 물질입니다. 이 효소가 장기간의 약물 오남용으로 억제되면 콩팥으로 가는 혈류가 줄고 탈수 위험이 커지며 전해질이 불균형해져 콩팥이 망가집니다.
과거에는 진통제 과다로 인한 콩팥 질환 문제가 주로 노인에게서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는 젊은 환자, 두통 환자에게 진통제 남용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보고됩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진통제 오남용으로 인한 콩팥 기능 저하와 투석 환자 증가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진통제를 복용해야 하면 주의사항을 읽고 권장량을 따르세요. 약에 손을 뻗기 전에 그것이 정말 필요한지 한 번 더 생각해볼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드립니다. 적당한 수분 공급과 영양이 풍부한 식사, 가벼운 운동을 통해 몸이 자연스럽게 불편함을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간단하고 건전한 접근 방식이 가장 효과적일 때가 있답니다.
원푸드 다이어트로 체중 감량
고기나 채식만 먹는 원푸드 다이어트로 체중 감량을 자주 시도하고, 다이어트 약물과 변비약을 남용하는 분을 흔히 봅니다. 젊은 여성들에게서 콩팥이 나빠지는 주요 원인입니다.
육류의 살코기만을 주식으로 2~3주 이상 섭취하는 이른바 황제 다이어트는 혈중 요독 수치를 병적으로 높입니다. 단백질이 분해되면 요소·암모니아를 포함한 노폐물이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제 작업량에 과부하가 걸리고, 거름망 역할을 하는 모세혈관인 사구체 내 압력이 높아져 손상을 유발합니다. 반대로 야채만 섭취하는 다이어트는 혈중 단백질이 심하게 부족해져 근육 소실뿐 아니라 장기 기능에도 장애를 유발합니다. 기본적인 건강과 기능 유지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살을 뺀다며 변비약과 다이어트 약을 남용하는 습관 역시 사소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강력히 말씀드립니다.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일부 다이어트 약은 혈압과 심박수를 상승시켜 콩팥 기능 저하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에 더해 변비약을 체중 감량 목적으로 오남용하면 콩팥의 여과 기능에 혼란을 가져옵니다. 변비로 탈수증이 심해지면 콩팥으로 가는 혈류가 감소해 노폐물을 효과적으로 걸러내기 어렵습니다. 칼륨·나트륨 같은 전해질이 불균형해져 피로해지고, 부정맥(심장의 전기 신호 이상)을 일으키는 결과도 불러옵니다. 여러분의 콩팥이 직무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도록 건강한 습관과 신중한 약물 사용, 꼭 기억해 주세요.
■ 콩팥 살리려면 기억하세요
소변 검사 결과 놓치지 않기
소변에서 단백질이 정상 이상으로 나오는 단백뇨는 콩팥이 손상됐음을 나타내는 조기 지표다. 정기적인 소변 검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소변 검사 결과에 이상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지내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진행돼서야 병원을 찾는 환자가 있다. 특히 자가 면역 반응이 주원인인 대부분의 사구체(여과기 역할의 모세혈관 덩어리) 질환은 20~30대에 발생하는데, 상대적으로 연령이 젊어 검진 결과를 소홀히 하다 진단, 치료가 늦어지기도 한다.
당뇨·고혈압·가족력 챙기기
만성 콩팥병의 흔한 원인은 당뇨병·고혈압이다. 말기 신부전으로 투석받는 환자의 70%가량은 당뇨병·고혈압 환자다. 만성질환을 철저히 관리해야 콩팥 기능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춘다. 콩팥병 가족력이 있으면 증상이 없어도 정기적인 진료를 받는 게 좋다. 콩팥에 물혹이 생겨 기능이 저하되는 ‘다낭성 신장 질환’은 가장 흔한 유전성 콩팥병이다. 자녀에게 50% 확률로 유전된다. 40~50대에 콩팥 기능이 10% 이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발견돼 바로 투석을 받기도 한다.
환자는 채소 잘게 잘라 데치기
콩팥 건강이 안 좋을 땐 병의 진행과 환자 상태에 따라 칼륨·단백질 섭취를 제한하거나 줄이는 것이 도움된다. 고단백 식이는 대사 과정에서 노폐물을 많이 만들어내므로 콩팥에 부담을 준다. 또 콩팥병 환자는 소변으로 배출되는 칼륨양이 감소해 혈중 칼륨 농도가 높다. 칼륨은 생채소나 과일에 많이 들었다. 껍질을 벗기고, 채를 썰거나 작게 잘라 물에 충분히 헹구거나 데쳐서 먹는 게 좋다. 다만 만성 콩팥병이어도 저칼륨혈증이 있는 경우가 있다. 환자의 칼륨 수치와 평소 식단을 의료진과 분석한 뒤 이에 맞는 식사를 해야 한다.
※위 기사는 대전성모병원 신장내과 장윤경 교수가 투석 환자를 치료하며 경험한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콩팥의 목소리를 통해 재구성한 것이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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