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미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의 예일대 스털링 메모리얼 도서관 앞 담벼락에 반전 팻말들이 놓여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강에서 바다까지 해방을 위하여!’ 문구에 한반도기가 팔레스타인 국기와 함께 그려진 팻말도 있다. /윤주헌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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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대학가에서 들불처럼 번진 반(反)이스라엘 시위와 관련해 뉴욕 컬럼비아대와 하버드·MIT·예일대 현장을 취재해 기사로 전하자, 독자분이 “충격적”이라면서 한 영상을 제보했다. 지난달 29일 미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촬영됐다고 적힌 이 영상에는 “학생 시위대가 북한을 찬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설명과 함께 한국계로 보이는 한 남성이 “북한과 팔레스타인의 연대를 강조하고 싶다”고 연설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독자는 “어떻게 이승만 대통령의 모교에서 종북 세력이 대놓고 북한을 찬양하고 시위대가 이에 환호하느냐”며 씁쓸해했다.
그런데 어쩌다 일어난 일은 아닌 것 같다. 뉴욕대에서도 지난 5일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동양 여성이 “북한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폭력과 억압이라는 공통된 역사가 있다”면서 북한과 팔레스타인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영상이 퍼지자 네티즌들은 “그렇게 좋으면 북한으로 가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28일 코네티컷주(州) 예일대 캠퍼스 반이스라엘 시위 현장에 갔을 때 기자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한쪽 구석에 세워져 있는 팻말이 눈에 띄었는데 거기엔 한글로 ‘백두에서 한라까지 강에서 바다까지 해방을 위하여!’라고 적혀 있었다. ‘강에서 바다까지’는 팔레스타인 지지 세력에서 사용하는 문구다. 이번 반이스라엘 시위에서도 사용됐다. 그런데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말은 반이스라엘 시위대에서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다. 어떤 세력이 대충 갖다 붙였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번 반이스라엘 시위는 지난 10월 무장세력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촉발됐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인질로 잡히자 분노한 이스라엘이 하마스가 사실상 지배한 가자지구를 융단폭격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3만4000명이 사망하는 등 극심한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고, 이제는 국제사회도 ‘보복이 과하다’며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고 있다. 반이스라엘 시위는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이 참지 않고 저항에 나선 것이 본질이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시위 전개 과정을 곱씹어 보면 종북 세력이 아니고서야 팔레스타인과 북한이 같은 처지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한국은 지난 몇 년간 반공(反共)이라고 말하면 군내 나는 퀴퀴한 사람으로 눈총 받는 나라로 변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을 별다른 대책 없이 경찰로 넘길 정도다. 그런데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대학 시위에서 한국계로 추정되는 동양인이 거리낌 없이 북한을 옹호하고 찬양한다. 분단 국가 한국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나.
[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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