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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작도 모자랐던 '이상한 다큐멘터리'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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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우리는 김민기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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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SBS 스페셜로 방영된 3부작 다큐멘터리의 반향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민기가 썼던 '뒷것'이라는 단어가 요즘 부쩍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많은 이들이 33년간 대학로를 지켰던 학전 소극장이 그런 곳인 줄 이제야 알았다, '아침이슬' 혹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만 알았던 김민기가 그런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다고 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SBS 이동원 PD, 고혜린 PD를 '골라듣는 뉴스룸 - 커튼콜'에 초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글은 이동원 PD 고혜린 PD와 나눴던 이야기 중 일부만 다뤘습니다. 더 자세한 제작 후기는 '골라듣는 뉴스룸' - 커튼콜 216화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링크 바로보기)

학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 모아 시작



이 다큐멘터리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학전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마음을 모아서 시작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동원 PD와 고혜린 PD는 지난 2022년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서 학전을 찾아갔고 김민기 대표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에는 배우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여러 사정으로 이 프로그램은 진행되지 못했지만, 지난해 말 학전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엔 정말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12월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는 걸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이렇게 우리끼리 얘기하고 나서 학전에 가서 말씀드리게 된 거죠. 사실은 SBS에서 정식 결재라인 보고를 거치기도 전에 일단 시작했어요. (학전이 3월에 문을 닫을 예정이었으니)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12월 말에 갑자기 촬영을 시작하게 됐죠."

사실 이전에도 학전과 김민기에 관한 보도는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이렇게 장편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 적은 없습니다. 학전 측이 이번 다큐 제작에 동의한 것은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학전에 관련된 기록과 기억을 모아놓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제작진의 기획 의도에 공감했기 때문일 겁니다. 제작진은 이 다큐에 학전 이전 김민기의 예술가로서의 삶도 꼭 함께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김민기를 잘 모르는 요즘 젊은 세대를 고려한다면, 김민기의 이야기도 다뤄야 학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그렇게 운영됐는지, 학전이 가진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설명할 수 있을 테니까요.

기억과 기록을 모아 '퍼즐 찾기'



당시 두 사람은 각자 새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었고, 소속도 달랐습니다. 회사에서 '학전 다큐멘터리 제작'이 공식적으로 결정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임시로 다른 프로그램 제작팀의 도움을 받아야 했죠. 12월 31일 '지하철 1호선'의 마지막 공연과 회식 취재를 허락받았으니 꼭 가야 한다, 회사에 그렇게 보고하고 일단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지하철 1호선'의 마지막 공연부터 취재를 시작한 제작진은, 이후 다큐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 것인가 고심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학전과 김민기에 관한 기억과 기록들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송창식 선생님, 장현성 배우도 그러셨는데, '아마도 학전이라는 공간 그리고 김민기라는 '뒷것'으로 살았던 사람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어떻게든 해보려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기억들과 기록들을 모으면 어느 정도 퍼즐 맞추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시더라고요. 70년대부터 같이 음악을 해온 친한 선후배, 그리고 학전 1기였던 배우가 같은 얘기를 한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진짜 많은 얘기를 듣고 많은 자료를 모아야 되겠다, 그렇게 된 거죠."

이 다큐에는 학전의 '전단지 알바'로 시작했던 설경구, 대기업 홍보실에 근무하다 덜컥 오디션에 합격해 '지하철 1호선'에 출연했던 나윤선, '매표소 알바'였던 황정민, 학전 총무부장이었던 강신일, 학전 음악감독이었던 정재일 등 학전을 거쳐간 배우와 스태프, 가수, 그리고 김민기의 오랜 지인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송창식, 조영남,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등 모두 100여 명이 인터뷰이로 등장했습니다.

"일정되는 대로 인터뷰하면서, 새로운 내용 나오면, 이를테면 '농촌에 가셨대', 이러면 또 농촌을 찾아가고, 먼저 인터뷰한 분이 이야기한 걸 바탕으로 이런 분들도 만나야겠다, 해서 새로 찾아내고 연락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뻗어나갔습니다."

학전은 곧 김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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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의 인터뷰는 '저희도 잘 모르니 학전이나 김민기 선생님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시면 듣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1시간, 2시간이 훌쩍 지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방송에 안 나가더라도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다. 제작 방향에 참고해 달라'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설경구 씨 인터뷰할 때, 매니저가 1시간밖에 없다고 했어요. 질문 서너 개 하면 1시간이 흘러가는데, 매니저가 이제 끝났다고 '마무리하겠습니다' 했어요. 그런데 20분 더 계셨나, 본인이 안 일어나시는 거예요. 이 얘기는 해야 되고, 잠깐만 이 얘기도 해야 되고, 이러면서요. 이정은 씨도, 장현성 씨도 그랬어요. 황정민 씨는 오자마자 마이크도 아직 안 달았는데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모두 내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 이야기들이 막 쏟아졌던 거예요."

제작진은 배우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학전은 어떤 곳이예요?'라고 질문하면 항상 '아, 저희 김민기 선생님은요~'라고 대답이 돌아오는 게 신기했다고 했습니다. 학전과 김민기가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었다는 거죠. 함께 밥 차려 먹었던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선생님이 음식점을 차릴까 하신 적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합니다. 학전이 함께 먹고 함께 일하는 '공동체'처럼 느껴졌고, 부럽기도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가르침을 받았고 여전히 같은 경험과 추억을 갖고 있잖아요. 소속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뭉치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공동체의 경험이 요즘은 잘 없거든요. 학전은 계약서를 쓰고 돈을 받고 일을 했던 곳이지만, 선생님을 중심으로 학전을 거쳐간 많은 배우, 스태프들이 있고, 12월 31일('지하철 1호선' 마지막 공연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그러니까 같은 마음으로 응원해 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소속감을 가진다는 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 정말 축복 같고 부러운 일이죠."

농부 김민기, 공장 직원 김민기…상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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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제작 초기에는 제작진도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펼쳐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서울 대학로 부근에서 이야기가 다 끝날 것이라고 여겼기에, 김민기가 농부로 일했던 경기도 연천의 농촌 마을에 가게 될 줄도, 김민기가 다녔던 인천의 피혁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을 만나러 지방 출장을 가게 될 줄도 몰랐습니다. 5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전 일이지만, 그는 김민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꿈은 얻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거다, 계산하지 말고 느끼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김민기의 말을 마치 '가훈'처럼 간직하고 있었고요.

"사실은 어떻게 '아침이슬' 김민기, 학전의 김민기와 공장의 김민기가 같은 사람일까, 그래서 실례되는 줄 알면서도 몇 번 여쭤봤어요. 정말 이분 맞으세요? 확실한가요? 그랬더니 '에이 그걸 모르겠어요. 내 어릴 때 우상 같았던 분인데' 그러셨어요."

공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목격한 김민기는 1978년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제작합니다. 살벌한 독재 정권 시절, 발각되면 몇 번의 의문사라도 당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제작진은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서 일할 때 의문사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긴박하게 진행됐던 '공장의 불빛' 녹음 당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작진도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김민기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일을 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공장의 불빛…시대를 증언하고 시대를 앞서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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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동조합이 다 불법이었던 시절이지만,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만든다고 하면 남성 노동자들도 오히려 반대했던 그 시절에, 여성 노동자 이야기를 노래굿, 뮤지컬 형태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앞서간 발상이었고, 누구의 지지도 못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얘기해 주신 것처럼 (김민기 선생님은) 운동권도 아니고 본인이 투쟁하신 것도 아니지만, 이런 게 예술의 힘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사람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그래서 저희도 더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저는 '공장의 불빛'을 2004년 정재일의 리메이크 음반으로만 접했기에, 1978년에 나왔던 원곡은 다큐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당시 '공장의 불빛'은 테이프에 복사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공장의 불빛'에는 시대를 증언하고,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 김민기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나 탄압받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요즘 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여전히 있더라고요. 당시에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내 이야기를 해주니까 더 와닿지 않았을까요.

뒷면에는 따라 부르도록 되어 있었다고 하잖아요. 테이프에 A면이 있고, B면이 있는데, A면에서는 노래를 다 불러주고, B면에는 반주만 넣었어요. 그리고 '여러분들 환경에 맞게 개사해서 불러보세요'라는 김민기 선생님 멘트가 있어요. 노동자들이 모여서 그걸 틀어놓고 우리 공장 이름을 넣어서 부를 수 있게 한 거예요. 그 시대 최신 미디어의 기능을 활용해서 뭔가 더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신 거죠."


제작진은 취재하고도 다큐에 담지 못한 내용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김민기가 항상 '뒷것'으로 살면서 본인의 삶을 많이 드러내지 않았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마주칠 때가 많았는데, 분량과 방영 일정의 문제로 모두 소화하지는 못했습니다.

"정말 이 시대에 다양한 곳에서 '뒷것'으로 사셨구나, 그래서 한 5부작 정도는 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요. 선생님과 친하신 분들은 이것도 부족해, 이건 빼먹었잖아, 이런 얘기도 SNS에 올리시더라고요."

'뒷것' 김민기…3부작도 모자랐다



다큐에 담지 못해 아쉬웠던 이야기를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이동원 PD는 한살림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예전에 강신일 씨 인터뷰하는데, 학전과 관련된 자료가 있으면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더니, '한살림 선언'이라는 걸 보여주셨어요. 강신일 씨가 '이거 민기 형이 쓴 거다. 한살림을 처음 만들 때, 이런 농민들을 위한 유기농 관련 조합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고 싶다고 할 때, 민기 형이 초대 사무국장을 했다'고 하셨어요. 한살림의 시작에 김민기 선생님이 계실 거라는 생각은 못했었어요. 정말 더 뻗어나갈 이야기가 많았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좀 더 취재해서 담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죠."

한때 농부였던 김민기가 초대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한살림'은 전국 곳곳에 매장이 있어서 이용해 보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자연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마음으로 농사짓고 물품을 만드는 생산자들과 이들의 마음이 담긴 물품을 이해하고 믿으며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함께 결성한 생활 협동조합'입니다.

한살림의 시작에는 1989년 10월 장일순, 박재일, 김지하, 김민기, 최혜성 등이 함께 발표한 '한살림 선언'이 있었습니다. 문명 위기론, 생명론, 한살림 운동론으로 구성된 '한살림 선언'은 80페이지, 5만 자에 이릅니다. 한살림 선언은 생명 존중의 세계관에 기초해 새로운 가치와 생활양식을 실현해 나가는 운동을 제안했고, 이후 한국의 생명운동과 친환경유기농업, 협동조합 운동에 철학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김민기는 '한살림 선언을 선배들과 함께 썼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 이주형 SBS 논설위원이 2008년 김민기와 했던 인터뷰를 소개한 취재파일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한살림 운동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도 인상적입니다. 한살림 선언은 한살림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살림 초대 사무국장, 광부 김민기…못 담아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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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린 PD는 김민기가 탄광촌에서 광부로 일한 적이 있는데, 이때 이야기는 다큐에 넣지 못했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김민기 선생님이 농부했던 이야기는 방송에 나갔는데, 보령의 광산에서 광부로 사셨던 적도 있고, 김 양식장에서 일했던 적도 있어요. 방송에 노찾사 멤버 김보성이라는 분이 나왔는데, 그분이 공교롭게도 보령에 살고 계세요. 저희가 인터뷰 요청했더니 '내가 보령에 내려와서 살다 보니 이 동네에서 민기 형이 광부로 일하며 살다 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보령에도 갔는데, 지금은 광산이 없어진 상태라서 그 얘기를 기억하는 분들을 찾지 못해서 방송에 담지는 못했어요. 김민기 선생님이 '아빠 얼굴 예쁘네요'라는 작품을 쓰셨는데, 직접 광부로 일했던 경험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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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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