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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기자의 눈] ‘N번방’ 꼬리표를 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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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2일 텔레그램의 한 지인능욕방. 텔레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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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N번방'만큼은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요?"

'서울대 N번방' 사건으로 알려진 음란물 사건 피해자 A씨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그는 동문이 자기 졸업사진을 이용해 몹쓸 합성사진을 만들고, 이를 텔레그램에 공유한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주변 모든 지인을 의심"하며 지냈단다. 무려 2년 넘는 시간이다. 주범들이 검거돼 일상의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A씨는 사건이 알려진 후 또 다른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조주빈의 N번방 사건만큼 심각한 건 아니지 않으냐"며 남의 고통을 마음대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더욱 힘들다.

서울대 동문 음란물 합성 유포 사건에서도 어김없이 'N번방'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원조 N번방'과 범죄의 성격도 피해 규모도 달랐지만, 피해자들은 언론과 여론이 왜 굳이 자신들의 사건에 'N번방'이라는 말을 붙이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적 착취물이나 합성물 사건만 일어나면 'N번방'이란 꼬리표를 다는 이 현실. 이것은 아직 조주빈의 N번방과 그 뒤를 이은 유사 범죄가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았고, N번방 사태에서 노출됐던 각종 제도상의 미비점을 우리가 여전히 고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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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 면에서 아직 N번방을 극복하지 못했다. 특히 수사기관의 대응이 그렇다. 서울대 사건에서도 경찰이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피해자들은 네 차례나 수사중단 혹은 불송치를 통보받았다. 피해자 A씨는 "일선서 경찰이 단순 몰카(몰래카메라)범으로 보는 것 같았고, 중고 카페 사기 IP추적 등을 다루던 수사관들이 성 범죄건을 맡다 보니 텔레그램 성범죄 수사에 익숙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성범죄 피해자들은 증거를 직접 들이밀어도 '이게 왜 음란이냐’는 수사관의 반문을 듣기도 했단다.

플랫폼 운영자는 가해자 정보를 내놓지 않았다. 주범들이 잡힌 서울대 사건을 두고 성범죄 피해자들은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한다. 어렵게 법원으로 넘겨도 단죄는 쉽지 않다. 디지털 성범죄를 다수 맡은 변호사들은 "법원 역시 '(범죄물을) 유포하지 않았다'는 가해자의 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기도 한다"고 입을 모은다.

N번방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제대로 대응할 제도와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 예산과 인력 지원을 통해 수사기관에 전문화된 팀을 만들고, 사이버 기술의 발전과 그 기술로 가능한 범죄 유형에 관해 지속적인 연구와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법원의 양형도 더 엄해질 필요가 있다.

이제는 '우리 시대의 N번방'을 떨쳐버릴 때가 됐다. 남을 착취해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시도에 맞서려면 △정부의 강력한 단속 △사법부의 일관성 △여론의 관심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더 이상 N번방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안전한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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