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한은’ 행보 찬반
“예전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교육열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했는데,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한국에 살아보고 아이도 대학 보내보고 하면 (생각이 그대로일지) 모르겠어요.”
27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은이 낸 교육 문제 관련 보고서를 두고 한 얘기다. 이날 한은 경제연구원 연구진은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대학 입시 정원에 반영해 지방(비수도권) 인재에게 좋은 대학 교육 기회를 더 많이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에선 가난하지만 잠재력이 높은 지방 학생보다, 평범하지만 부유한 서울 학생이 좋은 대학에 입학할 기회를 더 많이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이 총재 입에선 통화정책 뿐 아니라 저출생·고령화, 수도권 쏠림 문제 등까지 거론된다. 총재 취임 후 한은이 한국 사회 곳곳을 들여다보자, “중앙은행의 본분을 벗어난 일”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한은은 “장기 구조개혁 과제가 한국 경제 성장 잠재력과도 연결되는 만큼, 한은이 싱크탱크(Think-Tank)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한은의 ‘파격 제안’에 대해서도 파장이 커졌다. “교육에 있어서는 기회의 평등을 통해 계층 이동의 길을 열어 둬야 한다”는 찬성 의견도 나오지만,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서울 학생에 대한 역차별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한은이 교육 문제에 대해 과도한 간섭을 한다”는 의견이 오갔다. 교육계에서는 “대학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은의 보고서가 논쟁의 중심에 선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과일·채소의 수입 비중을 높여 농산물 물가 수준을 잡을 필요가 있다”(BOK 이슈노트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는 제안이 대표적이다. 당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직접 나서 한은 주장을 공개 반박했다. “수입 전에 거쳐야 할 검역 절차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데다, 수입으로 인해 농가 생산 기반이 무너지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나온 돌봄서비스 최저임금 차등화 주장(BOK 이슈노트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도 파장이 컸다. 연구진은 “노인 간병비가 자녀 가구 소득의 60%에 달한다”며 “돌봄서비스 노동 공급이 부족해 외국 인력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또 돌봄서비스 업종에 한해서는 내·외국인 모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 간병비 부담을 줄이자고도 했다. 노동계는 한은 규탄 기자회견을 여는 등 즉각 반발했다.
한은 움직임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이 적지 않다. 전직 한은 관계자는 “중앙은행은 법에 정해진 책무(물가안정)에 충실히 하는 것이 먼저”라며 “한은의 연구 인력이 본연의 의무 외에 집중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직 관계자는 “특정 분야를 깊이 연구한 전문연구기관 입장에서는 한은이 괜한 오지랖을 펼친다는 비판이 나올만하다”며 “다소 섣부른 제안을 할 때도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에서는 이미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며 “한은도 아예 미시제도 연구인력을 더 충원해, 최근의 연구 움직임을 새로운 전통으로 만들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내세운 “시끄러운 한은을 만들자”는 기조는 확고하다. 오랜 시간 누증돼온 구조적 문제에 대해 한은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단기 거시정책 선택에도 제약이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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