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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1.1㎜ 날 위에선 모두가 신생아…반년만 견뎌봐, 빙판을 활주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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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에는 중국 하얼빈에서 겨울아시안게임이, 2026년 2월에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이 개최됩니다. 두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메달밭은 스케이트, 그중에서도 단연 쇼트트랙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접했지만, 잘 알지는 못했던 스케이트. 한겨레 스포츠팀 장필수 기자가 8개월간 직접 체험하고 대회까지 출전해 보는 생생한 후기를 전하려 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 쇼트트랙 한번 배워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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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수 기자가 25일 새벽 6시께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강습 도중 코너를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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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앉아요! 더! 엉덩이! 엉덩이!”



25일 새벽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장. 상급반 10여명의 회원이 잔뜩 웅크려 미끄러지듯 코너에 진입하자, 코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링크장의 서늘한 공기를 찢었다. 두께 1.1㎜의 스케이트 날에 온몸을 맡긴 채 질주하다 보면, 헬멧 턱 끈은 축축해지고 분당 심박수는 180까지 치솟는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허벅지가 후들거리지만, 얼음판이 주는 짜릿함을 맛본 이상 멈출 수 없다. 입문한 지 8개월 밖에 안된 초보이지만 10월27일 ‘전국동호인 스케이팅대회’를 생각하면 발목과 다리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얼음판에선 모두 신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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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수업 회원들이 25일 새벽 6시께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강습을 받고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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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과 양궁은 공통점이 있다. 올림픽 출전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뚫기가 더 어렵고 생활체육에 한정하면 저변이 넓지 않다. 서울시에만 10여개의 링크장이 있어 접근성도 나쁘지 않은데, 오랜 기간 제대로 배우는 사람은 드물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코치들이 링크장마다 포진해 있지만, 배드민턴이나 스키처럼 대중화되진 못했다.



이는 쇼트트랙이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고난도 운동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두 발로 땅을 밟고 살다가 갑자기 미끄러운 얼음판 위를, 그것도 1.1㎜ 두께의 날로 버티기란 쉽지 않다. 신생아 시절 두 발로 처음 걸음을 내딛던 순간, 그 감각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 잠깐 한눈을 팔면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고, 발목에 힘이 빠져 스케이트가 눕는다. 일상에서 전혀 쓰지 않는 근육을 쓴 데 따른 피로감마저 낯설다.



그러나 6개월가량 인내하며 활주를 위한 준비를 마치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빠른 속도로 코너를 빠져나오며 스릴과 쾌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무게 중심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유영할 수 있게 된다. 이전과 달리 하체는 몰라보게 튼실해지고 잠들어 있던 엉덩이도 깨어난다. 여타 스포츠처럼 쇼트트랙 또한 실제로 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





밀기부터 활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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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수업 회원들이 25일 새벽 6시께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찍기 연습을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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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에 입문하면 ‘밀기→찍기→코너→활주’ 단계를 밟아야 한다. ‘밀기’는 허리를 숙이고 쪼그려 앉아 한 다리를 고정하고, 다른 다리로 빙판을 지긋이 미는 동작이다. 머리-무릎-발이 일직선에 놓인 상태에서 고정 다리에 온 체중을 싣는 게 중요하다. 여기까진 모두가 웃으며 배운다.



문제는 ‘찍기’부터 생긴다. 밀기 동작을 마친 다리를 접어 고정 다리의 발목에 가져다 대는 동작인데,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 한 발로 스케이팅하는 자세를 익히는 과정인데, 고정 다리가 흔들리면서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때부터 스케이트를 당근 등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리는 사람들이 생긴다.



찍기라는 큰 산을 넘으면, 오른발을 들어 왼발 옆에 두는 코너를 배운다. 처음에는 선 채로 발을 옮기다 점차 자세를 낮춘다. 빠르게 코너를 돌 때 생기는 원심력이 이겨내고자 몸은 최대한 눕히고 엉덩이도 코너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밀기→찍기→코너’가 자연스레 연결되면 활주에 돌입한다. 여기까지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이 소요된다.



활주 단계에 도달하면, 빈약했던 허벅지는 주인도 모르게 딴딴해져 있다. 1.1㎜의 날에 몸을 맡기는 경험도 공포에서 쾌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쫀쫀하게 잡아당기는 원심력을 이겨내자 몸을 감싸며 지나간 찬 공기는 한 여름밤 에어컨 바람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상쾌하다. 이때부터는 쇼트트랙이 주는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계속 타면 결국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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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수 기자가 25일 새벽 6시께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강습 도중 활주를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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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는 ‘감각 운동’이기에 자주, 오래 타며 감각을 깨치는 게 중요하다. 운 좋게 어린 시절 쇼트트랙을 접했던 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얼음판에 곧바로 적응하는데, 잊고 살았던 옛 감각을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다.



실력이 늘지 않아도 자책은 금물이다. 활주까지 이르는 길에 왕도는 없기에 ‘하면 된다’는 말처럼 타면 된다. 올해 정년 퇴임을 앞둔 고등학교 선생님, 두 자녀의 어머니, 배운 지 3달이 채 되지 않은 직장인, 졸업을 앞둔 대학생 모두 자신만의 페이스를 따라 빙판을 누빈다. 배우는 과정이 쉽진 않지만, 한고비씩 넘기다 보면 어느덧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쇼트트랙 동호인들 또한 신입 회원들에게 자신이 체득한 바를 전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저변이 넓지 않기에 열심히 배우려는 회원 한명 한명이 소중하다.



주말에 딱 한 번 땀 흘리는 수강생에게 “주 3일 타는 새벽반을 추천드린다”는 국가대표 출신 장아무개 코치의 말이 처음에는 영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속는 셈 치고 새벽반을 등록했고, 일렬로 발맞춰 드넓은 빙판을 질주하는 모습에 두 눈은 커졌고, 가슴은 마구 뛰었다. 장 코치의 조언은 진심이었다.



모두가 잠든 매주 월·수·금 새벽 6시. 누군가는 목동 아이스링크장에 모여 속도감에서 나오는 짜릿함을 즐기고 있다. 이 과정에서 펑퍼짐한 트레이닝복은 어느덧 쫄쫄이(트리코)로, 스케이트 또한 자신의 발에 꼭 맞는 준선수화 또는 선수화로 바뀐다. 쇼트트랙 역시 ‘장비 빨’이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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