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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일본의 ‘최저임금 치킨 게임’ [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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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7월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 쪽은 “최저임금의 구분적용 시행”을 요구하고 있고 근로자위원 쪽은 “최저임금의 적용 대상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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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재 | 도쿄 특파원





지난달 도쿄 특파원으로 온 뒤 “일본 물가가 진짜 싸냐”는 말을 듣는다. 최근 일본 물가가 우리랑 엇비슷한데다, 한때 100엔당 850원대까지 떨어졌던 역대급 엔저로 많은 이가 일본을 부담 적은 해외 여행지로 삼으려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체험 물가는 대략 이렇다. 얼마 전 들른 도쿄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한잔이 420엔(3900원) 정도였다. 한국(4500원)보다 조금 싼 편이다. 스타벅스 커피값으로 국가 물가를 비교하는 ‘스타벅스 지수’를 봐도, 올해 한국(4.11달러)이 일본(3.57달러)보다 높다. 한국에서 먹던 점심 한끼가 8천원 정도였는데, 일본 소고기덮밥 체인점에서 먹을 만한 게 700~800엔(6420~7340원) 정도다. 물론, 일본 물가가 높은 것들도 많다. 교통비는 악명 높다. 지하철로 짧은 거리만 이동해도 180엔(1650원)이 든다. 고속철인 신칸센은 서울-부산 정도 거리 편도가 1만5천엔(13만8천원)쯤 한다. 10㎏ 쌀도 우리보다 두배가량 비싸다. 임대료는 극악무도해서 도심의 방 3개짜리 작은 아파트가 보증금 없이 월세 350만원 정도다. 반면 휴대전화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는 8천엔 안팎으로 우리랑 비슷하다.



그만그만한 한·일의 물가 차이를 눈여겨본 건 최근 일본 도쿠시마현의 파격적인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다. 현은 앞으로 1년간 적용될 최저임금 인상액으로 정부가 제시한 시간당 50엔에, 지자체 판단으로 34엔을 더해 무려 84엔(780원)을 올리기로 했다. 일본 최저임금 체계는 먼저 후생노동성 중앙 최저임금심의회 소위원회가 전국을 세 권역으로 나눠 인상 기준액을 제시한다. 올해 정부안은 세 권역 평균 1055엔(9675원)이다. 광역지자체에서 이를 반영해 자체적으로 최저임금을 한번 더 조정해 확정한다. 올해는 도쿄도(1163엔)·가나가와현(1162엔)·오사카부(1114엔) 등이 높았고, 지난해 최하위 도쿠시마현은 896엔이던 최저임금을 단숨에 980엔(9.4%↑)으로 끌어올려 중위권에 포진했다.



한국도 지난달 내년 최저임금을 1만30원으로 고시했다. 전년 대비 인상액은 불과 170원(1.7%)이었는데, 사용자 단체들은 “몇년째 일본보다 높다”는 식으로 평가했다. 2000년대 초 일본에 왔을 때, 이곳 편의점 급여가 시간당 850~950엔(7800~8700원)이었다. 당시 한국은 2500원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끝났다. 지금 한국 경제력을 고려하면, 최저임금 몇백원 차이를 놓고 ‘일본보다 높을 정도로 많다’는 식은 민망하다. 게다가 일본 편의점 등에선 실제 시급이 최저임금을 훌쩍 넘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에서 최저임금이 수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가장 보통의 월급’인 것과 상황이 다르다.



우리 사용자 단체 쪽에선 업종·지역 등에 따른 최저임금 구분 적용도 요구하고 있다. 주요 사례가 또 일본이다. 고토다 마사즈미 도쿠시마현 지사는 지역별로 구분된 최저임금과 관련해 “지역 청년의 불안이 커진다”고 토로했다. 가뜩이나 모자란 젊은 일손이 최저임금을 더 주는 지역으로 줄줄이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지자체끼리 ‘눈치싸움’을 하는 촌극도 빚어진다. 올해 아키타현이 먼저 최저임금(951엔)을 확정하자, 이와테현·미야자키현(952엔) 등이 1엔씩 보태 꼴찌에서 벗어났다. “해마다 ‘치킨게임’을 벌이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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