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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김여정의 착각’, 부산 입항 미 공격핵잠에는 핵미사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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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2년 8월10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공개 연설을 통해 남측에 의해 코로나19가 북에 유입됐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보복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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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핵 항공모함과 핵 잠수함이 국내에 들어오면, 핵무기가 왔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핵 항모와 핵 잠수함은 배의 추진 방식에 따른 분류로, 추진 동력을 원자로의 핵 분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핵 잠수함에는 핵 미사일로 무장한 잠수함과 어뢰, 순항미사일 등 재래식무기만으로 무장한 잠수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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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지난 24일 저녁 조선중앙통신으로 발표한 ‘담화’를 통해 최근 부산에 들어온 미국 핵 잠수함을 핵 공격을 하는 ‘핵전력 자산’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광기적인 군사전략적 기도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담화에서 김여정 부부장은 원자력추진잠수함(SSN·공격핵잠)을 원자력추진탄도유도탄잠수함(SSBN·전략핵잠)으로 착각했다.





김 부부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 수반의 직속 독립 정보기관인 항공우주정찰소는 지난 23일 10시3분 10초 한국 부산항의 상시 주목 대상인 어느 한 부두에서 이상물체를 포착했으며 그 정찰자료를 보고했다”고 밝혔다. 최종일 해군 서울공보팀장은 지난 24일 오전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미 해군의 원자력추진잠수함 버몬트함이 어제(23일) 군수 적재 및 승조원 휴식을 위해서 부산 작전기지에 입항했다”고 말했다. 버지니아급 원자력추진잠수함인 버몬트함(SSN-792·7800t급)은 길이 115m, 폭 10.4m, 승조원은 130여명 가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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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 버몬트함이 지난 23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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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부부장은 “2020년에 취역한 이래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본 적이 거의 없는 이 최신 핵잠수함이 사상 처음으로 부산작전기지에 나타난 것을 결코 `유람항행’으로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폭격기 동향을 거론하며 “미 해군의 최신 핵잠수함까지 한국 부산항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내보임으로써 미국은 이른바 ‘3대 핵전략자산’이라는 주패장들을 모두 꺼내든 셈”이라고 주장했다.





3대 핵전력자산은 냉전 때부터 확립된 미국의 ‘3대 핵전력’(Nuclear Triad)을 말한다. 지상에서 발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바다 속에서 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하늘에서 전략폭격기가 투하하는 핵폭탄을 가리킨다. 3대 핵전력은 적의 핵 선제공격을 받더라도 살아남아서 반격하려고, 핵무기를 땅(ICBM 발사 기지)뿐만 아니라 바다(전략핵잠), 하늘(전략폭격기)에 분산 배치한 것이다. 주식을 투자할 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며 분산 투자를 강조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김 부부장은 “미국의 최신 핵잠수함이 다름 아닌 한국에 기항한 것은 걸핏하면 핵전략자산을 꺼내들고 힘자랑을 하며 상대에 대한 위협을 증대시키고 기어이 악의적인 힘으로써 패권적 특세를 ‘향유’하려는 미국의 야망이 극대화되고있는 데 대한 증명”이라며 “미국이 수중에서 최후의 핵타격을 가하는것을 사명으로 하는 잠수함까지 수면우에 끌어올려 그 무슨 ‘압도적 능력’을 시위하여도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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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3대 핵전력(Nuclear Triad)은 지상에서 발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왼쪽), 전략폭격기(오른쪽 위)가 하늘에서 투하하는 핵 폭탄, 전략핵잠수함(오른쪽 아래)이 바다 속에서 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가리킨다. 미 공군·해군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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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산에 들어온 버몬트함을 “수중에서 최후의 핵타격을 가하는것을 사명으로 하는 잠수함”이며 “핵전략자산”이라고 주장했다. 버몬트함을 마치 핵탄두가 달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무장한 핵추진 탄도유도탄잠수함(SSBN)인양 주장한 것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원자로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미 해군 잠수함은 원자력추진잠수함(SSN), 순항유도탄잠수함(SSGN), 탄도유도탄잠수함(SSBN) 등 3종류로 나뉜다.





버몬트함은 원자력추진잠수함(SSN)이다. SSN은 Nuclear Powered Attack Submarine의 약자로, 원자력추진 공격잠수함 또는 공격핵잠으로도 불린다. 미국이 이 잠수함을 냉전 때부터 옛 소련 잠수함 추적용으로 사용해왔고, 수상전투함·대잠수함 공격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공격’이란 말이 붙여 공격핵잠이라고 불린다. 이 잠수함에는 어뢰와 순함미사일같은 재래식 무기가 실려있다. SSGN은 핵 미사일이 아닌 순항미사일을 싣고 다닌다. SSN과 SSGN은 추진 동력은 원자력에서 얻지만 핵 무기가 실려있지 않기 때문에 ‘전략 자산’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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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19일 부산에 들어온 미국 해군의 전략핵 잠수함(SSBN)인 켄터키함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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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BN은 핵 탄두 탑재가 가능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무장해 “수중에서 최후의 핵타격을 가하는것을 사명으로 하는 잠수함”이며 “핵전략자산”이다. 지난해 7월18~21일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했던 미국 잠수함 켄터키함(1만8천t급)이 전략핵잠수함(SSBN)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국가의 안전이 미국의 핵위협 공갈에 상시적으로 로출되여있기에 외부로부터의 각이한 위협에 대응하고 견제하기 위한 우리의 핵전쟁 억제력은 질량적으로, 지속적으로 그리고 한계없이 강화되여야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미·대남 등 대외문제를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 부부장이 직접 나서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김여정 담화’는 첫 머리에서 버몬트함 부산 입항을 문제삼으며 미국의 ‘핵위협 공갈’을 강조했지만,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공격핵잠(SSN)인 버몬트함에는 핵무기가 없다. 김여정 담화는 공격핵잠을 전략핵잠으로 착각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핵전쟁 억제력 확보’란 핵심 주장까지 틀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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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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