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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홍콩, 언론자유 후퇴·민주파 와해·보안법 압제 속 조용한 ‘우산운동 1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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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범죄인 인도조례(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우산운동 5주년 다음날인 2019년 9월29일 코즈웨이베이에 모여 홍콩을 지지하는 다른 나라 국기를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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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세계에 널리 알렸던 ‘우산운동’이 오는 28일 10주년을 맞는다.

우산운동은 홍콩정부 수반인 행정장관의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하며 시민들이 거리 시위와 광장 점거농성을 하며 2014년 8월29일부터 79일 동안 이어진 운동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은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높은 수준의 언론 자유와 경제적 번영을 누렸지만 스스로 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누렸다고 보기 어려웠다. 홍콩의 민주주의는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홍콩 시민들은 우산운동에 앞서 2003년 중국의 홍콩 보안법 시도, 2012년 애국교육법 도입을 막아내며 사회운동의 힘을 확인했다.

중국의 홍콩 행정장관 선거 방침이 우산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2014년 8월31일 중국이 홍콩 반환 당시 약속한 행정장관 직선제를 실시하되 당국이 승인한 후보만 출마할 수 있다고 발표하자 홍콩 시민들은 동맹휴업, 거리농성 등을 통해 불복종 의사를 표시했다.

이 가운데 ‘사랑과 평화가 광장을 점령하게 하자’는 구호로 광장 점령 운동이 주목을 받았다. 시위대가 경찰의 최루액을 막기 위해 우산을 펼쳐들면서 ‘우산운동’ 나아가 ‘우산혁명’으로 불렸다. 홍콩반환 이후 태어나 자란 10대~20대 젊은층이 적극 가담했다. 중국과의 교류가 늘면서 심해진 부동산 가격 폭등과 주거난도 젊은층 참여의 원인으로 평가받는다.

우산운동은 홍콩 민주화 운동의 절정으로 평가받는다. 우산운동을 시발점으로 커졌던 시민 불복종 운동은 이후 된서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우산운동은 시위 가담자 1000명이 체포되며 막을 내렸다. 홍콩 시민사회는 분열을 경험했다. 시위가 계속되면서 중산층을 중심으로 안정을 위해 물러서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한편에서는 ‘일국양제’를 거부하고 ‘홍콩 독립’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6년 대만 선거에서 민진당으로의 정권교체에도 영향을 줬다.

우산운동의 에너지는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로 이어져 더 큰 규모의 저항을 낳았다. 반년 가까이 지속된 송환법 반대 시위는 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와해됐다. 2020년 중국의 홍콩 보안법이 실시된 후 민주파 인사들이 대거 체포·투옥됐다.

우산운동 당시 주목받았던 활동가들은 대부분 투옥됐거나 망명했다. 이들은 우산운동 좌절 이후 데모시스토당을 창당해 제도 정치 안에서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려 했으나 홍콩 당국에 의해 선거 출마 자격을 박탈 당하고 보안법의 표적이 됐다.

2015년 홍콩학생연합 리더였던 네이선 로는 우산운동 참여 혐의로 투옥됐으며 2020년 홍콩보안법 제정 이후 영국으로 망명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그네스 차우는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참여 혐의로 투옥된 뒤 지난해 석방돼 캐나다로 망명했다. 차우는 연말까지 돌아온다는 조건으로 홍콩을 떠났으나 망명을 신청해 홍콩 경찰에 수배자로 지정됐다.


☞ 은둔·망명·감옥행…홍콩 민주화 운동 젊은 주역들의 달라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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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시스토를 이끈 조슈아 웡은 현재 감옥에 있다. ‘사랑과 평화의 센트럴 광장 점령’을 제안한 전 홍콩대 법대 교수 베니 타이는 2021년 민주파 진영의 예비선거(경선)에 출마해 국가 전복을 모의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광장 점령을 조직한 추유민 목사와 찬킨만 전 홍콩중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만으로 망명했다. 찬은 지난 25일 자유아시아방송 인터뷰에서 “우산혁명은 분수령이었다”며 일각에서는 광장 점령이라는 불법적 방식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 강경한 탄압을 부른 빌미가 됐지만 당시 정치적 좌절과 경제적 불평등에 내몰린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홍콩 정부가 자체 보안법까지 제정하면서 후속 활동도 힘들어졌다. 중국·홍콩 정부는 우산운동 이후 불거진 홍콩 독립 논의와 반송환법 시위 때 나타났던 폭력 저항을 민주화 인사들의 체포·투옥과 광범위한 시민사회 감시를 정당화하는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홍콩에서 우산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는 열리기 어려울 전망이다. 열리더라도 안보 위협 행위를 모호하게 규정한 보안법에 따라 체포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5월1일 노동절 행진도 처음으로 노조 측에서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간담회로 대체됐다. 지난 6월4일 허공에 톈안먼 광장 군대 투입일을 의미하는 8964(1989년 6월 4일)를 쓴 행위 예술가가 체포됐다.


☞ [현장]5년 연속 노동절 행진 열리지 않는 홍콩···당국 ‘안보’ 강조에 노조마저 행진 포기
https://www.khan.co.kr/world/china/article/202405021726001


중국은 홍콩의 중국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물밑에서 홍콩인의 중국에 대한 적개심은 강해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홍콩민의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18~29세 가운데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76%에 달했으며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중은 2%에 불과했다.


☞ 홍콩 반환 후 첫 언론인 ‘선동죄’ 유죄 판결…“이미 관에 들어간 언론 자유에 대못”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408301456001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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