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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바이든의 변곡점과 기시다의 전환점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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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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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최고 지도자가 던지는 ‘말 한마디’는 때로 우리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곤 한다.



미국 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달 뒤인 2021년 2월19일 유럽의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했다. 이 연설에서 세계의 이목을 끌어모은 것은 ‘변곡점’(inflection point)이란 조금 독특한 용어였다. 바이든은 현재 인류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변곡점’ 위에 있다면서 “로마(이탈리아)부터 리가(라트비아)까지 유럽연합(EU)의 파트너들과 함께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을 우리 편과 상대편(러시아)으로 갈라치며 앞으로 본격화될 ‘신냉전’을 예견한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자동적으로 떠오른 것은 75년 전 이뤄졌던 또 하나의 연설이었다. 윈스턴 처칠(1874~1965) 전 영국 총리는 1946년 3월5일 미국 미주리주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발트해의 슈체친에서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까지 철의 장막을 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언급한 도시 이름은 달랐지만, 75년의 시차를 두고 처칠은 ‘냉전’, 바이든은 ‘신냉전’이라 불리는 세계의 분단을 예언한 셈이다.



달랐던 것은 방향이었다. 처칠은 소련이 먼저 ‘철의 장막’을 치고 있다고 우려한 것이지만, 바이든은 자신이 먼저 중·러를 상대로 ‘민주주의 장막’을 치겠다고 선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위협할 야심을 갖고 있었는지, 바이든의 이 연설이 ‘자기 실현적인 예언’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1년 뒤인 2022년 2월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바이든은 24일 마지막 유엔 총회 연설에서도 또 한번 ‘변곡점’이란 말을 입에 올리며 민주주의 진영의 단합을 호소했다.



바이든에게 ‘변곡점’이 있었다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는 말을 주로 써왔다. 그의 취임 1주년 연설 제목은 ‘역사의 큰 전환점 위에―취임 1년을 돌아보며’였다. 이런 현실 인식에 기초해 기시다는 ‘안보 3문서’ 개정을 통해 일본이 북·중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을 갖추기로 결정했고, 윤석열 대통령의 ‘양보 외교’의 도움을 받아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의 첫발을 떼는 데 성공한다.



변곡점의 바이든은 내년 1월, 전환점의 기시다는 10월1일 이시바 시게루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퇴임한다. 말은 사람의 인식을 규정하고, 이를 통해 현실을 바꾸게 된다. 말이란 무서운 것이다.



길윤형 논설위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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