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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기고]내가 나의 보호자, 온전한 자립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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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스물두 살을 맞이한 해 나는 보호종료아동이 됐다. 내가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사실은 위탁보호자인 고모가 자립정착금 수령을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알게 됐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모와 살았고, 그렇게 성인이 됐다. 가정위탁이란 제도로 고모에게 맡겨진 사실도 성인이 돼 알았다. 나처럼 가정위탁이나 아동양육시설에서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된 청년을 보호종료아동, 요새는 자립준비청년이라 부른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추억이 없다. 여느 학생처럼 운동회에 부모님이 참석하거나, 학예회 때 응원을 와준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가족은 나와 남동생 둘이기에 동생이 아프면 함께 조퇴하고 병원에 가야 했고, 동생이 친구와 다투면 나는 그 친구의 어머니와 다퉈야 했다. 내가 동생의 보호자이자 누나로서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의지할 수 있는 부모가 없었다. 그게 내 주된 결핍의 원인이 됐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나이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도움을 구하거나 물어볼 사람 없이 모든 걸 혼자 결정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근무시간을 모두 채워야 채용된다는 말에 덜컥 서명하고 시작한 첫 직장은 하루 12시간을 서서 일하며 화장실도 편히 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내가 겪는 힘듦을 이겨낼 방법은 돈이라고 생각했다. 스리잡으로 휴일 없이 근무하며 급여의 80% 이상을 저축했다. 5년 후 모으고자 한 금액에 도달한 후 번아웃이 왔다. 인생 목표 없이 돈만 좇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물다섯 살에 우연히 자립준비청년의 자조모임을 알게 됐고, 내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굿네이버스 경남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주최하는 자립준비청년의 자조모임과 경남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자문활동을 하는 바람개비 서포터즈, 그리고 이제 막 자립준비청년이 된 동생들과 선배로서 함께 고민을 나누며 상담하는 멘토링은 지금도 내 삶의 일부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내 삶을 나누는 게 어색했지만, 동생들은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경험을 나누다 보니 내가 얻는 행복이 더 컸다.

자립준비청년의 온전한 자립을 위해선 국가와 사회의 끊임없는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나는 다양한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지역과 나이별로 제한을 두는 활동이 많다. 자립준비청년 지원 사업에서 지역과 나이 제한을 완화하고 보호종료 5년 이후의 청년도 참여할 수 있도록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많은 단체와 기관이 다양한 자립준비청년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와 정보를 모르는 자립준비청년이 많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자립준비청년이 있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며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도움을 요청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정보를 찾아보는 힘을 기르길 바란다.

이제 내 삶의 목표는 누구보다도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부모와 가족의 사랑이 너무도 간절했던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내가 나의 보호자로서 자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모두 좋은 거름이 되어 앞으로 꽃을 피우고 행복의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되길 꿈꾼다.

경향신문

김민지 자립준비청년


김민지 자립준비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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