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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사망한 나스랄라, 헤즈볼라 32년 이끌어…시아파 무슬림에겐 ‘존경받는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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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부터 ‘반이스라엘’ 활동

2000년 이 레바논 철군 한몫

하마스에 군사 훈련 지원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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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공습에 폭사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64·사진)는 32년간 헤즈볼라를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조직 중 하나로 키운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과 미국엔 테러리스트였지만, 시아파 무슬림에게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의 혈통을 의미하는 존칭 ‘세예드’(존경받는 스승)라 불렸을 정도로 지지를 받았다.

나스랄라와 이스라엘의 악연은 레바논 내전과 함께 시작됐다. 그는 1960년 베이루트 외곽에서 청과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1975년 기독교 민병대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 갈등으로 내전이 발발하면서 피란민이 됐다. 15세에 이슬람 시아파 군사·정치 조직인 아말에 가입해 복수를 다짐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지원을 받은 아말은 1982년 헤즈볼라 창설에 참여했고, 그도 전투원으로 합류했다. 1992년 아바스 알무사위 당시 헤즈볼라 지도자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하자 헤즈볼라 수장인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그가 맡은 동안 헤즈볼라는 ‘저항의 축’(이란이 중동에서 이끄는 비공식적인 군사·정치 동맹)의 주요 조직으로 떠올랐다. ‘그림자 전술’을 펼치는 이란으로부터 미사일과 로켓 등을 받았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라크·예멘 민병대 등에 군사 훈련을 지원하면서 동맹 전선을 구축했다.

2000년 이스라엘이 18년 만에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한 이후 레바논의 국민 영웅 반열에 올랐다. 2006년 헤즈볼라는 34일간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다. 성공적으로 대이스라엘 항전을 했다는 칭송을 받은 그는 전쟁 이후 이스라엘에 암살당할 가능성을 염려해 최근까지 은둔 생활을 해왔다. 대이스라엘 강경 입장을 밝혀온 그는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자 하마스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고, 개전 다음날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무력 대치해왔다.

미국 등 서방은 나스랄라를 ‘극단주의자’로 칭하지만 많은 레바논인은 그를 ‘카리스마 있고 현명한 전략가’로 평가한다. 헤즈볼라는 마약, 무기 밀매 등 불법 사업으로 자금을 모아 의료, 교육 등 레바논 시민들이 필요한 분야에 서비스를 제공했다. 큰아들이 18세의 나이에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사망하고, 둘째 아들도 남부 전선에서 싸웠다는 점도 레바논인의 지지를 얻었다. 레바논 남부와 베이루트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헤즈볼라는 레바논 의회(전체 128석)에서 14석을 차지하고 있다.

나스랄라의 후임으로는 사촌 하심 사피 알딘(60)이 물망에 올랐다. 헤즈볼라 집행위원장인 그는 2017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테러리스트 명단에 포함됐다. 헤즈볼라 2인자 나임 카심도 아직 살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즈볼라 의사결정기구 슈라위원회는 차기 사무총장을 선출하기 위해 조만간 회의를 소집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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