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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조용헌 살롱] [1463] ‘쩐교’와 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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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사이비 종교로 홀대했던 과오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이제부터는 제도권 종교로 잘 모시겠다는 다짐을 해보는 종교가 있으니 그것은 ‘돈’이다. 21세기는 ‘쩐(錢)교’가 주류 종교임이 확실하다. 인종과 문화권에 상관없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이다. 시아파도 없고 수니파도 없으며 대승과 소승의 구별도 없다. ‘쩐교’의 가장 큰 강점은 믿으라고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부분이다. 아주 자발적이다.

그다음 장점은 예배당에 갈 필요가 없이 집 안에서 휴대폰과 인터넷을 통해서 예배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꼽고 싶다. 아, 얼마나 모던한가! 예배 방식은 주식, 부동산, 코인이다. 월급쟁이가 입교하는 가장 쉬운 방식은 주식이다.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단타 매매야말로 쩐교가 지닌 효율성과 접근성, 그리고 기도발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양태이다.

쩐교의 메카는 미국이고, 최종 순례지도 미국이다. 모든 돈은 미국에서 주무른다. 쩐교의 당대 구루는 워런 버핏이고, 버핏 다음 급으로는 무슨 무슨 ‘펀드’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 구루들을 열성적으로 숭배하고 가르침을 귀담아들어야 돈이 생긴다. 당대의 구루와 식사를 한번 하려면 수십만 달러도 지불해야 한다. 은총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아깝지 않다.

강호의 선수인 혜중(慧中)에게 자문을 해보니 유명한 펀드의 이야기들이 있다. 쩐교의 메카에서는 펀드가 대세다. 한때 주목을 받았던 M펀드에 직원들이 투자하면 수익률이 60~70%에 육박했다고 하니 그 영험이 대단했던 셈이다. 그 영험함은 내가 가서 빌었던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을 능가한다. 고수익을 올렸던 펀드의 장문인은 일주일에 80시간을 일한다고 인터뷰했다. 사무실에 침대를 갖다 놓고 잔다는 말이다. 신당(神堂) 내에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신당 밖에 나가서 세속의 잡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는 경건한 라이프 스타일이다. 이 정도의 가열찬 수행 정진과 고행을 하니까 60~70%라는 은총을 받는 것 같다.

유명 펀드의 특징은 그 사제들이 수학자들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하버드, MIT의 수학 교수들을 영입하였다. 수학 전문가들이 짠 알고리즘으로 모든 변수에 대비하고, 사고파는 타이밍을 결정하고, 투자 비율과 금액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금융을 아는 사람이 수학을 하는 게 아니고, 아예 프로페셔널 수학자들이 금융에 투입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강호동양학의 바이블인 ‘주역’의 메시지도 결국 상(象)과 수(數)로 압축된다. 주역은 상수학(象數學)이다. 수즉신(數則神)이요, 신즉쩐(神則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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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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