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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동물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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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오랜만에 딸을 데리고 동물원에 갔다. 300여 종의 동물을 수용하고 있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동물원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동물을 무척 좋아해 동물원에 자주 갔었고, 야생동물 사진작가가 될 꿈을 한동안 품기도 했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 방문한 미국의 한 동물원에서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침팬지 한 마리가 유리창문에 입을 대고 걸쭉한 침을 묻힌 뒤 조금 있다가 다시 그 침을 핥아먹는 것을 보았다. 그럴 때마다 관객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얼마나 심심했으면 관객에게서 과격한 반응을 자아내는 방법을 터득했을까. 평생을 유리창 뒤에서 살아야 하는 그 침팬지가 가여워 나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고, 그 뒤로 동물원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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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동물원(zoological park)이라는 시설은 19세기 런던에서 비롯됐지만 그 개념은 중세 귀족이나 왕실의 ‘머내저리(menagerie)’를 거쳐 고대 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황제들이 곳곳에서 수집한 동물들을 경기장에서 풀어 싸움을 시켰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2009년 발견된 이집트 히에라콘폴리스의 머내저리는 기원전 3500년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다.

영국의 헨리 1세와 3세, 중국 주왕(紂王)과 프랑스 루이 14세 등 유명한 동물 수집가들에게 희귀 동물은 왕실의 권위와 부를 상징하기 위한 전시용이었다. 이에 반해 현대 동물원은 과학적인 연구, 생태 보존 및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감금돼 맥이 없는 영장류나 뛰어다니지 못하는 맹수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겨우 100여 년 전에는 사람도 우리에 가두어 전시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1906년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에 침팬지와 같이 전시된 콩고의 피그미족 오타 뱅가(사진)는 백인들의 시선을 느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무도 짧은 시간에 너무도 많은 변화를 겪은 인류문명사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스친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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