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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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罪·富·神이란 무엇인가… 연극이 인간의 심연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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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질문에 경쾌한 답변 ‘트랩’ ‘몰타의 유대인’ ‘고트’

“그럼, 제가 피고를 연기해 드리면 될까요?”

졸부 같은 정장 차림의 남자는 ‘당신들의 수작에 다 맞춰 드리겠다’는 듯 여유롭다. 퇴직 검사가 손을 내젓는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죄를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니까!”

섬유 회사 판매 총책임자인 남자 ‘트랍스’(김명기)는 이 저택 만찬에 모인 사람들이 수상쩍다. 우연히 묵게 된 시골, 판사·검사·변호사 등으로 정년 퇴임한 노인들의 소일거리는 값비싼 음식과 와인을 즐기며 벌이는 모의 법정 게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은 ‘피고’다. 변호사 노인이 트랍스를 걱정해준다. “당신, 정말 죄가 없다고 생각해요?” 트랍스는 확신한다. “완벽히!” 그러나 이 확신도 곧 산산조각 날 운명이다.

잊고 살아가는 삶의 본질적 문제,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질문은 무대예술에 특화된 힘. 명성 있는 극단, 관록의 배우들, 탄탄한 텍스트의 희곡으로 무장하고 죄(罪), 부(富), 신(神) 같은 묵직한 질문에 경쾌하게 접근하는 연극들이 잇따라 무대에 올랐다.

◇‘트랩’의 ‘죄(罪)’

조선일보

그래픽=김의균


2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한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은 죄와 양심에 관해 질문한다. “얼마 전엔 막 당선된 국회의원이 공갈 협박죄로 14년형을 선고받았지. 우린 프리드리히 대제에게도 무능력을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했다네!” 기세등등한 노인들은 트랍스가 임원으로 승진하게 된 계기인 직속 상사의 죽음에 그의 미필적 고의는 없었는지 추궁해 간다. 게임에 말려들수록 트랍스의 무죄 확신은 뜻밖의 부조리한 방향으로 변화한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법정 공방을 지켜보는 배심원이 된 기분. 무거운 주제인데도 객석은 자주 폭소로 들썩인다. ‘트랍스’ 역의 김명기를 비롯, ‘판사’ 역의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 남명렬 등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환상과 실재의 경계에 있는 듯한 연극에 또렷한 현실감을 입힌 덕이다.

등장하는 이름들 역시 독일어로 검사는 ‘초른(zorn·분노)’, 변호사는 ‘쿰머(kunmmer·걱정)’, 사형집행관은 ‘필레(filet·고기 덩어리)’. 연극은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은 욕망이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속이고 짓밟는 존재임을 일깨우는 우화가 된다. 스위스 작가 프레드리히 뒤렌마트의 단편소설을 올해 서울연극제 대상을 받은 하수민 연출가가 무대로 옮겼다. 10월 20일까지, 4만~5만원.

◇‘몰타의 유대인’의 ‘부(富)’

조선일보

그래픽=김의균


29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몰타의 유대인’도 객석에서 탄식과 폭소가 쉴 새 없이 교차했다.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에 깊은 영향을 끼친 영국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원작은 르네상스 유럽을 뒤흔든 블랙 코미디의 원조. ‘천국도 내친 자’로 혐오와 멸시를 견디며 나라 없이 떠도는 유대인인 바라바스(권지숙)의 유일한 목표는 오직 돈을 벌어 부(富)를 쌓는 것뿐이었다. 몰타의 총독에게 평생 쌓은 부를 몰수당한 뒤, 바라바스는 금지옥엽 외동딸까지 이용해 간계를 꾸미며 죽음과 배신, 몰락과 부활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탄다. 끝없는 탐욕과 집착의 끝, 모두가 죽고 평생 이룬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도시를 바라보며 바라바스는 말한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물질적 부를 향한 인간의 탐욕은 참 질기다.

◇‘고트’의 ‘신(神)’

조선일보

그래픽=김의균


최근 폐막한 연극 ‘고트(Gott)’는 제목부터 독일어로 신(神). 암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남자가 ‘내 뜻대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며 낸 사망 조력을 위한 약물 청원이 거절당한 뒤, 이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의사, 법학자, 가톨릭 주교, 시니컬한 변호사 등이 맞서며 각자 입장에서 논리를 전개한다.

‘신과 인간 앞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제정되었다’는 독일 헌법 전문의 언급은 나치즘에 대한 독일의 반성이자 완벽한 국가나 법체계는 없다는 인간 겸손의 표현. 그러나 연극은 이미 신을 버린 세상에서, 인간은 자유의지로 자신의 죽음조차 결정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탄탄한 텍스트의 힘을 증명하는 무대. 관객은 귀를 쫑긋 세우고 두뇌를 최대치로 가동하며 연극을 따라간다. 의사는 “의학이 환자가 죽는 걸 돕기 시작하는 순간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포함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그런 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다. 모든 논리가 옳지만, 그 논리마다 허점은 있다.

연극은 매 공연 끝에 ‘사망 조력’ 허용 여부를 관객들의 온라인 투표에 부쳤고, 찬반 결과는 그날그날 라이브 무대의 설득력에 따라 엇갈렸다. 이런 역동성 역시 연극만이 갖는 매력이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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