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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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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알랭 드 보통 “현대의 공식 종교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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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대인들의 삶은 바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바쁜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과업을 회피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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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 생존법



불안정한 시대를 이해하고 평온함을 찾는 법



알랭 드 보통 & 인생학교 지음, 최민우 옮김 l 오렌지디 l 2만7500원



현대의 삶은 치료가 필요한 일종의 질병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주장이다. 보통과 그가 설립한 ‘인생학교’를 지은이로 해서 나온 신간 ‘현대 사회 생존법’은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여러 양상을 열거하면서 그것들이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그 위협에 맞서 심신의 평온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책은 소비, 매체, 사랑, 일, 개인주의, 교육, 과학 등으로 장을 나누어 각각의 영역에서 현대인을 괴롭히는 유병 요인을 짚고 그로부터 벗어날 방도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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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 생존법’의 지은이 알랭 드 보통. ⓒ 마티아스 마르크스(Mathias Marx)


현대 사회의 삶을 질병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역설적으로 ‘행복’이다. 행복은 물론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가치이지만, 그것이 표준이자 과제처럼 주어진다는 점에서 문제를 낳는다. “현대의 공식 종교는 행복이다.” 그런데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행복해야 한다는 요구는 거꾸로 불행감과 고통을 높일 수 있다. 보통은 “행복이 표준 상태여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현대가 우리에게 저지른 핵심적인 부당 행위”라며 “울적할 권리”와 “비참할 자유”를 주창한다. 가령 아이를 대하면 어떻게 해서든, 심지어 간지럼을 태워서라도 웃게 만들려는 사람들의 태도가 행복에 관한 현대 사회의 그런 방침과 통한다 하겠다. 아무리 갓난아이라도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 “아기들도 슬플 일이 많다.” 그들의 슬픔과 고민을 무시하고, 아이가 웃을 때까지 재미난 표정을 짓거나 위아래로 흔들고 간지럼을 태우는 어른들처럼 현대 사회는 우리를 상대로 계속 까꿍 놀이를 하려는 것 같다. “텔레비전, 광고, 파티, 친구, 매체, 이 모든 것들이 작당하여, 훌륭한 일을 하면서 잘 적응하고 낙관적이며 쾌활한 기분으로 사는 것이 정상이라는 식으로 은근히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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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대한 강박과 완벽주의,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향한 미친 듯한 추구는 행복 지상주의와 통하는 또 다른 병증들이다. 신분 제도가 없어지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성취 기회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런데 자유와 기회가 확대된 만큼, “실패로 인한 심리적 영향은 견디기 어려워졌다.” 누구나 성공을 바라지만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공의 이면에는 실패가 있고, 승자는 불가피하게 패자를 만들게 마련이다. 그런 현실을 무시한 채 사소한 결함이나 결핍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패배감과 굴욕감을 강요한다. 현대 사회의 이런 압박에 맞서려면 “불완전함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보통은 강조한다. “서로의 취약함과 두려움을 인정할 수 있어야만 본질적인 이해와 연결로 이어질 수 있다.”



성공과 행복,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매우 바쁘다는 것이다. 이들은 직업과 생계 활동에서 바쁜 데에 그치지 않고 여가와 취미 생활, 사교, 문화적 기회 향수 등에서도 한결같이 적극적이고 치열한 면모를 보인다. 남들이 읽은 웬만한 책, 남들이 본 웬만한 영화, 남들이 다녀온 웬만한 전시회와 음악회는 다 챙겨야 하고, 사회적 관심사에는 꼭 끼어야 한다. ‘포모’(fear of missing out,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증후군이 이들을 지배한다. 게다가 차별화를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경험을 추가해야 한다. 에스엔에스라는 과시 공간이 그런 강박을 부추긴다.



그러나 바쁘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바쁜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과업을 회피한다. 그들은 벌떼처럼 분주하게 활동하지만, 실상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갖는 진짜 감정을 숙고할 시간은 내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가 가는 방향에 대한 조사를 한없이 미루며, 삶의 목적을 이해하는 데 게으르다. 그들의 바쁨은 미묘하지만 강력한 형태의 산만함이며, 사실 일종의 나태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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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 알랭 드 보통은 “바쁜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과업을 회피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바쁜 게 게으른 것이라는 통찰은 뜨끔하면서도 통쾌한 일갈이다. 이처럼 상식을 뒤집는 반어와 역설은 이 책의 두드러진 면모를 이룬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반대되는 쪽에 사태의 진상이 있다는 식의 논법은 도가나 불교 같은 동양적 사유를 닮았다. ‘바쁜 게 게으른 것’이라는 통찰을 뒤집어 말한 것이 “가장 생산적인 순간은 겉으로는 조용하고 한가해 보이는 순간들”이라는 명제일 것이다. 실제로 공원을 산책하거나 멍하니 하늘의 구름을 올려다보던 어느 순간 최고의 생각이 떠올랐다는 경험담을 종종 듣곤 한다. 새로운 경험을 추가하려 하기보다는 기존의 경험에서 더 깊고 넓은 가치를 끌어내도록 하라는 제언, 고독을 실패자나 외톨이의 저주가 아니라 깊은 내면과 높은 이상의 증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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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동차 올즈모빌의 1951년 광고. “자동차 광고는 남근을 닮은 로켓 위에서 포옹한 채 아마도 오르가슴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을 연인의 이미지를 통해 사랑을 향한 추구와 연결될 수 있다.” 오렌지디 제공


행복과 성공, 바쁨의 반대쪽에서 현대인을 괴롭히는 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난 시절 종교가 제공했던 내세와 구원의 약속이 과학의 칼날 아래 난도질당한 지금, 오히려 과학의 냉철함에서 위안과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통은 주장한다. 자아, 즉 ‘나’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를 멈추고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자아란 교묘한 환상이고, 스스로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불안정하게 깜박이는 찰나의 불꽃”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뜻밖의 구원과 평화가 찾아오리라는 것이다. 가령 공원 산책길에 마주치는 청둥오리가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청둥오리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더 나아가 “우리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 준다.” 이것이야말로 “현대를 사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장 관대하고, 친절하며, 꼭 필요한 메시지 중 하나”라는 것이 보통이 일깨우는 반어적 진실이다.



신문을 읽는 일이 “온갖 정보에 해박하고 걱정과 고민이 깊은 동시에 무력한 상태”를 만들기 때문에 가급적 신문을 읽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신문 종사자로서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법력 높고 연민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스님의 말씀을 듣는 듯한 깨달음과 위로를 주는 책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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