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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드론으로 바라보는 세상

레바논 교민 "포격 소리에 밤 새고, 낮엔 드론 날아다녀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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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째 멈추지 않는 가자전쟁은 레바논으로 전선을 확장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국경을 넘어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와의 지상전에 돌입하는 등 공세를 강화했고, 지난 3주 사이 레바논에선 127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1400여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는 7500여명이고, 100만명 이상 피란길에 올랐다.

중앙일보는 레바논에 체류 중이던 교민 3명을 전화 및 e메일을 통해 인터뷰했다. 이들은 "날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포격 소리, 소방차와 엠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심해져 뜬눈으로 밤샌 날이 많았다"면서도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만을 표적 공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 피해를 입을 거란 공포가 크진 않았다"고 전했다.

전황이 악화하자 정부는 공군 수송기 KC-330 시그너스·C130J 수퍼 허큘리스를 현지에 긴급 투입했다. 한국 국민 96명과 레바논인 가족 1명을 태운 수송기는 5일 낮 12시 50분쯤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아직 레바논 현지엔 한국 교민 30여 명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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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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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 폭발 진동과 사이렌에 밤새 뜬눈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폭사한 뒤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죠."

레바논 베이루트에 12년째 거주하며, 현재 한인회장을 맡고 있는 이충환(55)씨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충돌은 수년간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5일 군 수송기를 타고 귀국했으며, 인터뷰는 귀국을 전후해 이뤄졌다.

수없는 분쟁을 목격한 그가 지금의 상황을 더 심각하게 보는 건 나스랄라의 죽음이 갖는 파급력 때문이다. 그는 "나스랄라 죽음 이후 헤즈볼라가 극도로 흥분했고, 무슬림의 다른 종파에도 '연대하자'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레바논 전역에 긴장이 고조됐다"고 설명했다.

공습도 날로 격화하고 있다. 베이루트 안에서도 한인 교민 거주지와 헤즈볼라 지역은 8㎞ 이상 떨어져 있다. 이스라엘의 공습 초반엔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 등 헤즈볼라 지역에 폭탄이 떨어지면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치솟는 연기가 보이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상전 이후 점점 강도가 세지더니, 최근엔 창문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로 폭발이 가까이 느껴졌다고 이씨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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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레바논 베이루트의 슈에이파트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폭발이 일어난 후 불꽃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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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남부 베카의 자흘레 지역에서 2012년부터 시리아 난민 봉사를 해온 정바울(53) 사랑의하우스 대표 역시 "강한 폭음과 진동을 갈수록 빈번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강력한 공습이 주로 밤에 이뤄지다 보니, 한밤중에 지축이 '쿵쿵' 울리는 느낌과 사이렌 소리에 지역 주민들이 밖으로 뛰쳐나온 게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면서 "나도 그런 날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실시간 뉴스를 보고 상황을 살폈다"고 전했다. 그 역시 군 수송기 편으로 귀국했다.

이스라엘 정찰 드론이 날아다니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고 정 대표는 전했다. 레바논의 방공망이 취약해 이스라엘의 드론이 영공을 침범해도 사실상 속수무책이라는 설명이다. 정 대표는 "이스라엘은 초정밀 정찰 드론으로 헤즈볼라의 무기고 등을 손금 보듯이 파악한 듯 하다"며 "이스라엘이 정보전에서 완벽한 우위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2006년 레바논 전쟁 때와는 다른 양상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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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이스라엘 헤르메스 450 UAV 드론이 레바논 베이루트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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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자·피란민, 시아파뿐…"무차별 전쟁 아니다"



하지만 교민들은 아직까지 직접적인 신변의 위협을 받는 수준은 아니라고 전했다. 2008년부터 레바논에서 지내온 김성국(56)씨는 "레바논은 다종족·다종교 사회로, 종교와 인종에 따라 거주지가 확실히 나뉘어 있다"며 "이번 충돌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일로, 레바논 내 수니파와 시리아 난민, 기독교도는 '남의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헤즈볼라는 무슬림 시아파의 한 분파다.

이스라엘군의 공격도 무차별 공격이 아닌 헤즈볼라의 고위 인사, 무기 창고만 타깃으로 하는 정밀한 '핀셋 타격'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대다수 레바논 현지인들도 많이 긴장했을 뿐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공포 분위기는 아니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민항기 편으로 귀국했다.

레바논 정규군이 자국 국경을 넘은 이스라엘 군대에 특별한 대응 조치를 하지 않는 것 역시 이스라엘군의 목표가 헤즈볼라의 무력화일 뿐 레바논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게 교민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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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이스라엘의 남쪽 공습을 피해 탈출한 난민들이 레바논 베이루트 남쪽 남부 마을 세블린에 있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가 운영하는 직업 훈련 센터에 앉아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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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사상자와 피란민 규모는 헤즈볼라가 엄청난 무기를 쌓아두기 위해 시아파 거주지의 민간인 건물주가 소유한 창고 등을 임대해 활용해온 관행과 관련이 있다고 교민들은 전했다. 이런 곳의 위치까지 이스라엘군이 속속들이 알고 파괴하면서 민간인 사상자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인근 시아파 무슬림 거주지인 바알벡에서 빠져나온 피란민들이 수니파와 기독교 거주지까지 밀려들고 있다"며 "우리 집에서 2분 거리인 교회의 게스트 하우스, 공립학교도 피란민으로 꽉 찼다"고 전했다.

대다수 레바논 국민은 현재 이번 위기가 이스라엘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고 교민들은 전했다. 2006년 이후 헤즈볼라는 레바논 사회에서 각종 봉사를 하고, 학교·병원 등을 거점으로 주민들에게 많은 혜택을 베풀며 지지 기반을 넓혀왔다. 반면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 레바논과 군사적 충돌을 반복하며 무자비한 학살 정권이라는 인식이 깊어졌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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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지상작전이 진행 중인 레바논 체류 국민들이 5일 오후 서울공항에 도착한 군수송기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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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수송기, 무박 2일 수송 작전=레바논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 수송작전은 ‘무박 38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아내·딸과 함께 귀국한 교민 이국희(31)씨는 "레바논 자흘레에 있는 집 인근에 미사일이 계속 떨어졌다"며 "레바논은 늘상 위험하지만, 지금이 일상적인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6세·4세 자녀들과 도착한 교민 김서경(39)씨도 "밤마다 폭탄이 떨어지는 레바논에서 한국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현재 레바논·이스라엘은 여행경보 3단계(출국 권고)다. 양국 접경 지대는 4단계(여행금지) 상태다.

박형수 기자·국방부 공동취재단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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