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마마 시상식. 씨제이이엔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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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동안 15개 이상 열리는 케이(K)팝 시상식의 난립 문제를 해결하려는 가요계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케이팝 시상식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한국음악콘텐츠협회는 지난달 30일 아티스트와 매니지먼트사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표준 계약서를 만들어 공개했다. 많은 시상식이 연예 매체들이 주관하는 탓에 출연료, 안전 조치, 저작권, 사전 합의 사항 준수 등이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25년 역사의 국내 최대 규모 케이팝 시상식인 씨제이이엔엠(CJ ENM)의 ‘마마’(MAMA)가 심사 기준과 시상 분야 등을 개편한다고 발표해 주목을 끌고 있다. 마마 쪽은 “케이팝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심사 방식을 고도화한다”며 “‘올해의 앨범상’의 경우, 앨범 판매량에 국한하지 않고, 기획부터 음악, 아트워크까지 완성도, 비주얼,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최근 중요해진 퍼포먼스 분야 시상을 위해 ‘베스트 코레오그래피’ 부문을 신설했다.
시상식 개편 발표에 앞선 지난 4일, 마마의 윤신혜 총괄프로듀서(CP),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을 제작한 패치웍스 정형진 대표,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가 서울 마포구 씨제이이엔엠 사옥에서 만나 케이팝 시상식과 케이팝의 미래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참석자들은 현재 케이팝 시상식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 윤 시피는 “시상식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현재 케이팝 시상식 평가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며 “단순히 앨범이 몇장 팔리고 음원을 얼마나 듣느냐로 상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번 시상식 개편도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심사 기준 고도화에 대해선 “상은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판매량 등 수치에 매몰되지 않도록 심사위원들의 평가 항목과 채점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을 제작한 패치웍스 정형진 대표(왼쪽부터),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마마의 윤신혜 총괄프로듀서(CP)가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씨제이이엔엠 사옥에서 만나 케이팝 시상식과 관련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씨제이이엔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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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평론가는 “케이팝 산업이 최근 급속하게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통해 수익을 챙기려는 움직임이 증가했다. 일종의 어뷰징으로 케이팝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각자 시상식의 고유한 정체성이 없다면 시장에서 자연적으로 퇴출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우후죽순 늘어나는 시상식이 결국 제 살 깎아먹기 경쟁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정 대표도 “어뷰징 이슈가 발생한 시상식 난립에다 공정성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며 “최종 시상식 이후에 어떤 방식으로 채점이 돼서 상을 주었는지 대외적으로 공표를 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생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제대로 된 시상 선정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특히 케이팝의 정체성과 관련해 이제는 단순히 판매량으로 시상을 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차 평론가는 “그동안 앨범 판매 등 숫자로 설득하는 것이 차라리 간단하고 빨랐다면, 이제는 질적 분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케이팝 업계에서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 건전한 시상식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윤 시피는 “과거엔 판매량이 많으면 속칭 대상을 받을 확률이 높았지만, 이제는 그 앨범에 어떤 것이 담겼고,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도 굉장히 중요해졌다”며 “시상식마다 차별화된 심사 기준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답했다.
시상식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공정성 시비도 대담의 주제였다. 요즘 가요계에선 케이팝 시상식을 두고 아티스트가 참가해 노래하면 주는 ‘참가상’이란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정 대표는 “데이터를 뒤집을 수 있는 세밀한 평가 기준을 만들고 이를 대중과 아티스트에게 설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앨범을 이렇게 많이 팔았는데 왜 상을 주지 않느냐’라는 반발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윤 시피는 “데이터에 더해 심사위원들의 정성적 평가가 잘 반영되도록 평가 기준을 세밀하게 마련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차 평론가는 현재 음악시장 상황상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는 “각자 시상식마다 개성이 있고 이것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모든 시상식 결과가 똑같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시상식 자체가 문화적 맥락이다. 더군다나 음악 외적인 뮤직비디오, 앨범 패키징 같은 모든 것을 종합해야 하는 케이팝에서 선정 결과는 시상식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을 제작한 패치웍스 정형진 대표(왼쪽부터), 마마의 윤신혜 총괄프로듀서(CP),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가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씨제이이엔엠 사옥에서 만나 케이팝 시상식과 관련한 대담을 나눴다. 씨제이이엔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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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상식이 케이팝에만 집중돼 록, 재즈, 트로트 등 다른 장르가 소외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토론이 이어졌다. 윤 시피는 “마마의 경우 케이팝 시상식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케이팝 위주로 진행됐지만,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2022년 임영웅이 출연했을 당시 그가 더 이상 트로트에 머무는 가수가 아니라는 판단이 있었다. 그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뮤지션을 소외시키진 않았다”고 했다.
정 대표는 “마마는 글로벌 시상식을 표방하기 때문에 케이팝신 안에서 경향을 잘 반영하면 된다”며 “오히려 시상식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모든 장르를 끌어안는다면 정체성이 없어지면서 도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차 평론가도 “과거처럼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아니다. 모든 음악 장르를 다 듣고 판단할 수 없다”며 “종합시상식이란 개념은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차라리 다른 장르들은 틈새시장 공략 차원에서 별도의 시상식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케이팝 산업과 아티스트들이 오래 살아남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윤 시피는 “이제는 아티스트의 독창성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최근 나오는 아이돌 중 실력이나 외모가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며 “음악에 자기들만의 스토리, 안무, 비주얼 등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했다. 정 대표도 “외연을 넓히는 게 핵심 과제”라며 “시도하는 장르 자체를 다양화해야 한다. 인디 뮤지션 등 다른 뮤지션들과의 협업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차 평론가는 “이제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해진 시대”라며 “음악에 자신만의 메시지, 특히 거창한 것이 아닌 자신들의 나이에 맞는 경험이 묻어나오는 솔직한 메시지를 담아야 케이팝이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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