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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한담] “박봉, 전주 근무 다 참겠는데 이건 너무합니다”… 국민연금 운용역들의 푸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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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국정감사 시즌이면 여러 의원실을 통해 전북 전주에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임직원 이탈 문제가 도마 위에 오릅니다. 민간 대비 낮은 급여와 지리적 여건의 한계로 운용역 퇴사가 끊이질 않는다는 지적이 대부분인데요. 비슷한 문제 제기는 올해도 이어졌습니다. 처우 수준과 근무 지역이 달라진 게 없으니 같은 지적이 반복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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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민연금 지사에서 관계자가 근무하고 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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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한 기금운용직은 총 30명입니다. 운용직 퇴사자는 2014년 9명, 2015년 10명에서 지방 이전이 결정된 2016년 30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이후로도 매년 20~30명이 전주를 떠나고 있고요. 또 올해 3분기 말 기준 책임운용역 급여는 평균 8789만원으로, 6년 전인 2018년 말(8484만원)보다 겨우 300만원가량 느는 데 그쳤습니다.

처우도 근무지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난제입니다. 매년 기시감 드는 국감 지적을 현직 운용역들은 어떻게 바라볼까요. 국민연금에 남아 계속 근무 중인 운용역 다수에게 질문했습니다. 이들 역시 지방 근무나 급여 수준에 대한 아쉬움은 분명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국민연금에 입사 지원서를 낼 때부터 이미 알던 내용이라 퇴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운용역 A씨는 “상당수 운용역이 평생직장의 개념으로 국민연금에 오는 게 아니고 개인 커리어를 쌓기 위해 오는 것이다 보니 대부분 적당한 시점에 떠날 생각을 한다”며 “(연봉이나 지방 근무가) 퇴사 결정 과정에 간접적인 사유로 작용할 순 있지만, 몰랐던 게 아니기에 그 자체에 불만을 품고 떠나는 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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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경. /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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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역은 무엇 때문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요. 조선비즈와 대화한 복수의 현직자는 해외사무소 인력 배치에 관한 조직 결정에 뒷말이 무성하다고 귀띔합니다. 올해 8월 국민연금은 ‘해외·대체투자 등 운용 전문가 15명 모집’ 공고를 냈는데요. 이 공고에서 국민연금은 새로 뽑는 15명 중 5명은 해외사무소 배치 인력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이 공고를 접한 현직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운용직이 박봉과 지방 근무를 감수하면서까지 국민연금에 지원하는 주된 이유가 해외사무소에서 글로벌 투자기관과 접촉하며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는 기대감인 탓입니다. 현직자로선 해외 파견 기회를 잡고자 수년간 열심히 일하며 버텨왔는데, 갑자기 ‘해외사무소 전담 인력을 새로 뽑겠다’는 공고가 나간 겁니다.

당초 국민연금은 해외사무소 근무 인력 전원을 현지 직접 채용 시스템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실장급 고위 운용역들이 “파견 메리트까지 없애버리면 누가 전주까지 오겠냐”며 강하게 우려를 표명하자 ‘현지 채용’과 ‘해외 보낼 사람을 국내에서 선발’ 두 형태를 섞는 걸로 타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조차도 자기 순서를 기다려온 기존 운용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의사결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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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현지시각)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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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현재 미국 뉴욕·샌프란시스코, 영국 런던, 싱가포르 등 4개 지역에서 해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무소는 부동산·인프라·사모펀드 등 대체투자 부문을 중점적으로 관리합니다. 현재 불만이 특히 큰 운용역도 그래서 대체투자 관련 근무자라고 합니다. 운용역 B씨는 “해외사무소 근무 기회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란 사실이 근로 의욕 저하로 이어지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시장 관계자들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핵심 실무자인 허리급(책임·전임) 운용역의 이탈이 앞으로 더 두드러질 것을 우려합니다. 이미 지금도 매년 발생하는 20~30명의 퇴직자 대부분이 책임·전임급 운용역입니다. 지난해 퇴사자 30명 중 24명(80%)도 이 두 직급에서 나왔습니다.

마땅한 대책 없이 매년 반복되는 국민연금의 투자 전문가 관리 문제, 언제까지 내버려둬야 할까요. 인력 이탈과 무관하게 준수한 수익을 꾸준히 내니까 괜찮다고요? 서명옥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 9.4대 1 수준이던 기금운용직 채용 경쟁률은 지난해 4.1대 1까지 추락했습니다. 올해 6월 기준으로 보면 3.1대 1로 더 떨어졌죠. 조만간 ‘누구나 갈 수 있는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전락할 기세입니다.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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