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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여든일곱의 화가 “비행기 접어 날리던 동심으로 그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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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가 김봉태, 내달 7일부터 이중섭미술상 기념전

조선일보

1세대 추상화가 김봉태가 서울 평창동 작업실에서 회화 ‘춤추는 상자(Dancing Box)’ 두 점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두 작품 모두 다음 달 7일 개막하는 제36회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에 나온다. /전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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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창동 작업실에서 만난 노(老)화가는 몇 달 새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두 달 전 폐렴인 줄 알고 입원했다가 신부전증으로 고생 좀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자유로웠어요. 어릴 때 종이로 비행기 접어 날리던 동심을 떠올리면서 신작을 그렸지요. 상자를 해체해 펼친 작품을 보면, 팔과 다리가 모두 펼쳐진 인간 같지 않나요? 내 마음도 함께 하늘을 날고 있는 겁니다.”

한국 추상미술 1세대를 대표하는 화가 김봉태(87)는 신작을 화제로 삼자 눈을 빛냈다. 7일 개막하는 제36회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 ‘축적(Accumulation)’에 신작 시리즈 ‘날으는 상자(Flying Box)’가 나온다. 20년 넘게 버려진 상자를 주제로 작업해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 다양한 상자 연작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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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날으는 상자(Flying Box)’.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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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집에 오는 길, 골목에 버려진 박스가 너저분하게 쌓여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 삶을 떠올렸다. “인간들도 상자처럼 고정된 틀에 갇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틀을 깨고 자유를 발산하려는 인간의 몸부림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누워있던 상자를 세우고, 열고, 평면적인 박스에 입체감을 넣어 생명을 불어넣었다. 초기의 ‘춤추는 상자’, 2010년대부터 선보인 ‘축적’에 이어 지난해 시작한 ‘날으는 상자’까지 시리즈를 발전시켜 온 작가는 “점점 더 해체하고 분해하면서 내 마음에도 해방을 가져왔지만 나는 아직도 답답하다”며 “아무리 해체를 해도 상자는 규격이 갖춰져 있으니 그마저도 없애려 한다. 앞으로는 상자 시리즈에서도 해방돼 형태가 없이 더 자유로운 그림을 그려보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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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창동 작업실에 서있는 서양화가 김봉태. /전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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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같은 조각, 조각 같은 회화가 특징이다. 밝고 투명한 원색을 사용하고, 강한 색채 대비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끌어내기 때문에 ‘색의 마술사’라고도 불린다. 역대 이중섭 미술상 수상자 중 최고령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조선일보와의 오랜 인연도 뒤늦게 알게 됐다”며 1963년 11월 15일 자 기사를 보여줬다. 파리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판화를 출품한 그의 작품을 프랑스 정부에서 구매했다는 기사가 ‘각광받는 한국미술’이라는 제목으로 큼직하게 실려 있었다. 그는 “당시 비엔날레 참가 후에 곧바로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한국 신문에 난 기사를 보지 못했다”며 “이중섭미술상 수상 소식을 듣고 지인이 기사를 보내줬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곁을 지키던 아내 최은형씨는 “(남편이) 입원하고 일주일 새 4~5㎏가 빠져서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작업실 계단을 혼자 내려가는 것도 위험해서 당분간은 쉬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지만, 작가는 “괜찮으니 이제 (작업할 수 있게) 자유를 달라”며 웃었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막 부풀어 오르고 있거든요. 새롭게 그리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시간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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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창동 작업실에서 만난 서양화가 김봉태는 "앞으로는 상자 시리즈에서도 해방돼 형태가 없이 더 자유로운 그림을 그려보려 한다”고 했다. /전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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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봉태(87)

색면회화로 한국 미술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전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며 ‘60년 미술가협회’를 결성했고, 추상 회화를 주창하는 앵포르멜 운동을 펼쳤다. 1960년대부터 미국 LA에서 활동하며 기하학적 형태를 실험했다. 1986년 덕성여대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에 정착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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