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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경찰과 행정안전부

"경찰 간부들은 영양가 없어" 뇌물 풀세트 다섯 곳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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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룸살롱 황제와 비리 경찰②〉



(*단독 입수한 검찰 진술 내용을 독백 형태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 잘들 지내쇼? " 늘 재밌어. 여기 경찰서에 들어와서 큰 소리로 인사하는 순간은. 인사를 받는 그들의 표정이 매번 똑같거든. 웃지도 울지도, 아는 체하지도 외면하지도 못하는 그 어정쩡한 표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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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찰서의 내부 모습. (*기사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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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나를 반기지.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재킷 안주머니 속 봉투를 환영하는 거겠지만 말이야.

어디 보자. 오늘은 물이 어떤가. 어, 못 보던 얼굴인데? 아, 새로 왔다는 계장이구먼.

과장이나 계장 같은 간부들은 사실 계륵이야. 1년 뒤면 다른 곳으로 옮길 사람들이라 열과 성을 다해 모실 필욘 없단 말이야. 그렇다고 성의 표시를 안 할 수도 없고.

" 안녕하세요? 계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첫인사 때 껄끄러워하는 표정들도 하나같이 똑같아. 내가 누군지 이미 아는 거지. 처음이니 명함을 줘야지. 아차 이쪽 주머니가 아니었네. 여긴 오락실 명함인데, 이거 내밀었다가는 간부 나리들이 곤혹스러워할 수 있거든.

그래 여기 반대쪽 주머니에 있는 명함을 줘야지. XX 건설회사 대표. 이 정도는 줘야 혹여 서랍 뒤짐을 당해도 나리들이 민망하지 않지.

담배 피우러 나가시는 모양이네. 그럼 인사나 해볼까. 처음이니까 300만원 정도? 이렇게 봉투에 넣어서 서랍 속에 넣어두고 가면 서로 민망할 일 없지.

매달 주냐고? 아니. 간부들한테는 ‘월정’을 주진 않아. 아까 말했잖아. 별로 영양가 없다고. 이렇게 경찰서 한 번씩 올 때마다 200이나 300 정도 봉투에 담아 서랍 속에 넣어주면 되는 거야.

내가 월급 주는 건 반장들이야. 경찰서 방범과 안에 질서계, 여성청소년계 같은 곳이 있는데…. 뭐? 내가 누구냐고?

에고 이 정신머리하고는, 아직 내 소개도 안 했네. 물 한 모금 마신 뒤에 내가 누군지, 그리고 예전에 유흥업소들이 경찰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세세하게, 속속들이 다 얘기해 줄게. 기분 좋으면 나를 잡아넣은 그 현직 국회의원 양반 얘기를 해줄 수도 있으니 잘 따라와 보라고.

나는 이씨야. 이름은 말하고 싶지 않으니 그냥 넘어가 줘. 벌써 환갑이네. 10여 년 전 수사받던 그때만 해도 50도 안 된 한창때였는데.

‘룸살롱 황제’라 불린 이경백하고 아는 사이야. 더 정확히 말하면 둘 다 경찰 믿었다가 뒤통수 맞은 사람들이지. 내가 먼저 당했고, 그 직후에 경백이가 당했어.

경백이는 그냥 돈 준 사람들 불고 말았지, 로비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는 언급하지 않은 모양이더라.

근데 나는 참기가 힘들더라고. 그래서 기회 생길 때 검찰에 다 말해 버렸어. 우리 같은 놈들이 어떤 수법으로 어디까지 로비하는지 말이야.

나는 성인오락실을 몇 개 운영했어. 뭘 또 기분 나쁘게 불법 오락실이래? 직장인들 일과 끝난 뒤에 스트레스도 풀고 재수 좋으면 용돈도 타 가는, 아주 건전한 곳인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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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삼동의 한 성인오락실 내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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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디까지 했더라? 맞다, 경찰서 반장들, 질서계, 여청계. 여기가 직접 업소 단속을 하는 곳이거든. 간부들은 그냥 인사치레로 가끔 용돈이나 주더라도 여기는 차원이 다르게 잘 관리해야지.

계 아래에 여러 개의 반이 있는데 반 하나 관리하는 데 월 500씩 들어가. 다 더하면 꽤 많겠지? 그리고 가끔 계통 밟지 않고 불쑥불쑥 손 내미는, 무례한 자들도 있어. 내가 주머니에 항상 500씩은 넣어 다니는 이유지.

왜 주냐고? ‘비하인드: 서초동 그날’ 지난 회 기사를 보니까 경백이도 말한 것 같은데 결국 단속을 피하고, 무마하려고 돈 주는 거야. 단속 자주 맞으면 문 닫아야 하거든.

〈관련기사〉

“경찰에 월 4000만원 상납” 2012년 룸살롱 황제의 고백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7984

중앙일보

서울경찰청이 민생치안 확립을 위해 창설한 그린포스 및 스텔스 대원들이 2008년 9월 서울 구로구 가리봉시장 일대 성인오락실을 대상으로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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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장사 오래 했어. 비결이 뭐냐고? 우리 가게들은 단속 안 당하기로 유명했거든.

“이 전무 가게에 오면 112가 많이 안 떨어지고, 게임 아주 편하게 할 수 있어서 좋아.”

오랜 단골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면 기분 좋지. 서비스에 만족하는 고객을 보는 것만큼 장사하는 사람들이 보람 느낄 때가 또 있겠어? 그리고 고객이 마음 편하게 즐겨야 나한테도 돈이 많이 떨어지는걸.

단속 루트? 서울지방경찰청에 신고가 들어가면 그게 일선 경찰서 통해 지구대로 내려가지. 일선 경찰서로 신고가 들어가면 바로 지구대로 내려가고.

어쨌든 단속 주체는 지구대야. 지난 회 기사에서 경백이가 말한 거 다 맞아. 우리도 지구대에 ‘월정’을 상납하지. 그 바로 윗선인 일선 경찰서 반장들한테 돈을 주는 것도 같은 이치고.

돈만 주면 되냐고? 기본적으로는 그런데, 나처럼 보험을 하나 더 드는 업주들도 있었어. ‘전관’ 쓰는 거지. 돈 받다가 잘리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경찰을 그만둔 사람들. 그 사람들 경찰 그만두면 할 일이 없거든. 그래서 먼저 찾아오는 이들도 많아.

그런 사람 중에 쓸 만한 자들을 고문으로 고용하는 거야. 사실 나 혼자 다 관리하는 건 힘들거든. 지구대가 한두 군데가 아니잖아? 내 업소 관리하는 지구대만 네다섯 군데는 돼. 그걸 내가 다 관리할 수 있나?

그래서 고문들이 일부를 분담하지. 단속 정보 빼내는 것뿐 아니라 일 터지면 로비하는 것까지 전직 경찰관들이 아주 유용하거든. 오락실뿐 아니라 룸살롱이나 안마시술소 같은 데도 이들을 고문으로 많이 활용해.

서울지방경찰청에는 로비 안 하냐고? 왜 안 하겠어? 서울청 생활질서계, 여성청소년계는 신(神)이야 신. 거기는 서울 전역의 유흥업소들을 관리하잖아. 마음만 먹으면 시도 때도 없이 단속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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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 연합뉴스



여기도 한 달에 한 부서씩 상납하지. 역시 월 500만원. 뭐 회식이 있거나 별도의 접대 수요가 발생하면 더 주지. 그러면 그치들이 “오늘은 어느 지역 단속 예정이다”라고 알려주거나 “오늘은 성매매 단속, 내일은 술집 단속, 모레는 오락실 단속한다”고 단속 대상 업태를 알려주지.

더 없냐고? 아 참, 너무 말을 많이 하는데 오늘.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얘기해 주지.

풀세트가 있어. 들어봤어? 가게 하나를 하려면 로비를 해야 하는 곳이 다섯 군데야. 지구대, 경찰서 생활질서계(또는 여청계)와 경제팀, 서울경찰청, 그리고 구청. 이 다섯 곳을 묶어서 한 세트 또는 풀세트라고 해. 풀세트 다 뛰어봤냐고? 흐흐, 여기까지만 하자. 더 알면 다쳐.

어쨌든 모두 행복한 시간이었어. 나도 행복하고 손님도 행복하고 경찰관들도 행복하고. 다들 행복하면 된 거 아냐? 근데 이상한 놈이 등장하더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박살 내버렸지.

(계속)

“그는 조현오였어. 이명박 정부 때 경찰청장 하던 양반이었지”

“아 참, 그때 조현오 밑에서 우리를 수사했던 사람이 국회의원 됐더라고”

성인오락실을 운영한 업자가 폭로가 더 이어집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룸살롱 황제와 비리 경찰 이야기를 더 만나보세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9726




노소영이 제 발로 나타났다…한동훈 찾아온 뜻밖의 손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5650

룸살롱 황제가 매수하려 했다…‘조국의 오른팔’이 된 그 남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2920

“경찰에 월 4000만원 상납” 2012년 룸살롱 황제의 고백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7984

경찰 1명이 50억 받아 갔다, 룸살롱 상납받은 ‘꿀보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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