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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사설] ‘양극화 해소’ 필요하나, 선심 포퓰리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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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후반기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이 ‘양극화 타개’를 새 국정 목표로 내세우면서, 정부도 그간의 ‘건전 재정’ 기조에서 벗어나 추가경정예산 등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검토한다고 한다. 대통령의 ‘양극화 타개’ 국정 목표도 갑자기 나왔는데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가 재정 운용 기조를 바꾸겠다는 것도 놀랍다.

양극화 해소를 국정 목표로 삼는 건 문제 될 것이 없다. 어느 정권이든 이름만 달랐지, 양극화 해소 내지 완화를 주요 국정 과제로 삼아왔다. 문재인 정권의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론’도 양극화 해소를 내세운 정책이었다. 최저임금을 2년 연속 두 자릿수로 올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프로젝트, 노인 일자리 100만개 만들기 등이 구체적 정책으로 실행됐다. 그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고용 참사, 분배 참사로 이어졌고, 나라는 400조원이 넘는 새 빚을 떠안게 됐다.

우리나라 양극화 문제가 악화된 것은 정규직·비정규직 근로자 간,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노동 개혁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일자리’를 위한 과도한 경쟁이 과도한 사교육 부담과 노후 준비 부실 문제, 서울 초집중 현상에 따른 집값 양극화 등 다양한 양극화 문제를 낳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양극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쾌도난마식 해법은 없다. 정부가 노동 개혁과 사회 개혁을 하고, 양질의 일자리와 저렴한 주거 공간을 만드는 노력을 꾸준히 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소득은 일자리에서 생기고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니, 기업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주 52시간 근무제, 중대재해처벌법, 세계 최고의 상속세율 등 과도한 규제를 정비하는 것도 양극화 타개에 도움이 되는 근본적 방안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은 이런 근본 해법이 아니라 선심 정책 포퓰리즘으로 양극화 문제에 접근해 왔다. 소상공인 코로나 손실 보상 50조원, 병사 월급 200만원, 전 국민 기본 소득, 기초 연금 인상, 아동 수당 확대 등 여야 불문하고 갖가지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은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씩 풀자는 공약을 내세웠고, 국민의힘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약속했다. 금투세 폐지로 재미를 봤다고 여기는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내년 시행될 예정인 가상 화폐 과세도 2년 유예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세금을 줄이면 지출도 줄여야 하는데 양극화 해소라며 지출을 늘린다고 하니 결국 나랏빚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과 무엇이 다른가.

윤 정부 들어 작년 56조원에 이어 올해도 30조원 이상 세수 부족 사태를 낳고 있다. 세수 구멍을 메우기 위해 환율 방파제로 쓸 기금 돈까지 끌어다 쓰고 있다. 16년 넘게 등록금을 동결하고 대학생 국가장학금을 확대한 결과, 대학생 200만명 중 150만명이 국가장학생이 됐다. 이것은 장학금이 아니라 현금 뿌리기다. 하위 70% 노인에게 무조건 기초 연금을 지급하면서 월 소득 700만원 이상 노인도 기초 연금 수급자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라가 빚내 돈을 풀어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양극화 문제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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