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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길] ‘거북이 동네’ 구산동의 아기 거북이 구출 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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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밥을 먹고 있는 거북이(구산이). /은평구 구산동주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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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독거노인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방에 거북이가 있어요.”

지난달 21일 서울 은평구 구산동 주민센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구산동 원룸에 혼자 살던 76세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방에는 할아버지의 가족이던 강아지 한 마리와 앵무새 두 마리, 거북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 강아지와 앵무새는 이웃집이 키우기로 했다. 그러나 거북이는 갈 곳이 없었다. 길이 20㎝, 우리나라에서 서식하지 않는 갈색 거북이였다.

키우겠다는 사람이 없어 공무원이 주민센터로 데려왔다. 직원들은 이 거북이 이름도 지었다. 동네 이름인 구산동을 따 ‘구산이’로 지었다. 구산동이란 명칭은 거북이처럼 생긴 산이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거북이 공부를 시작했다. 구산이는 국제 멸종 위기종인 설카타육지거북이였다. 주로 중앙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는 거북이다. 다 크면 1m까지 자라 세계에서 가장 큰 거북 중 하나다. 보통 100년을 산다. 구산이는 태어난 지 3~4년쯤 된 새끼 거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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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은평구 구산동 주민센터에서 아기 설카타 육지 거북 '구산이'의 환송식이 열렸다(위 사진). 한 달 가까이 구산이를 돌보며 정을 나눈 주민센터 직원 13명이 모두 모였다. 구산이는 전소라(오른쪽에서 넷째) 주무관이 안고 있다. 날씨가 쌀쌀해 담요로 꽁꽁 싸맸다. 아래 사진은 풀숲을 달리고 있는 구산이. /서울 은평구 구산동 주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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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이는 거북이지만 발이 빨랐다. 전소라 주무관은 “구산이는 토끼와 달리기를 해도 이길 아이”라며 “발도 빠르고 활동량이 많아 산책까지 시켜야 하더라”고 했다. 구산이를 주민센터 텃밭에 내려놨더니 키우던 배추를 순식간에 반쪽이나 먹어치웠다고 했다.

구산이는 매일 주민센터 곳곳을 돌아다니며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직원들은 ‘거북이 동네’ 구산동의 마스코트로 구산이를 계속 키우고 싶었지만 주민센터는 구산이가 살기에 추웠다.

날씨가 쌀쌀해지자 임현웅 복지지원팀장이 잠시 집에 데려가 키웠다. 햇볕이 쨍쨍한 날에는 일광욕도 시켰다. 집에서는 보일러를 24시간 틀었다. 임 팀장은 “적외선 찜질기를 틀어주면 목을 쭉 빼고 늘어져 자더라”고 했다. 구산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치커리와 배추였다.

직원들이 구산이를 키워줄 곳을 찾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유기동물보호센터는 기르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안락사를 시킨다는 말에 포기했다고 한다. 야생동물보호협회는 야생동물이 아니라 맡아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다 충남 서천에 있는 국립생태원이 구산이를 키우겠다고 했다.

지난 18일 구산동 주민센터에서 ‘구산이 환송식’이 열렸다. 구산이는 주민센터 직원 13명과 기념촬영을 한 뒤 주민센터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 임 팀장 품에 안겨 국립생태원으로 떠났다.

국립생태원에는 같은 종 거북이 일곱 마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내년 봄 날이 풀리면 구산이를 일반인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봄이 되면 구산이를 보러 생태원에 가기로 했다. 구산이의 사진을 넣은 열쇠 고리도 만들었다.

전 주무관은 “이제 ‘거북이 박사’가 됐는데 아쉬운 마음뿐”이라고 했다. 임 팀장은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구산이가 없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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