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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석가탄신일 지나면 정산할게요" 고려청자 받아 사라져버린 남성의 정체[경제범죄24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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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4000만원 상당 도자기 받아 잠적

분양시행금 부족해 메우려 범행 계획

부산 중구에서 화방을 운영하는 박정찬씨(가명)가 지인의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해 4월 말. 서울에서 화방을 운영하던 지인은 박씨와 여러 차례 공예품을 거래한 적이 있는 동종업계 종사자이기도 했다. 몇 달 만에 연락한 지인은 박씨에게 “최근에 좋은 물건 없냐”면서 “좋은 가격에 팔아주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마침 고려청자와 조선청화백자가 있다는 박씨의 말에 지인은 조만간 부산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얼마 후인 5월 3일, 지인은 원모씨(58)와 함께 박씨의 화방을 찾았다. 원씨는 “아는 절의 주지 스님이 도자기들을 좋은 가격에 매입하려고 한다”면서 “다만, 석가탄신일이 지나고 대금을 치를 수 있는데 물건부터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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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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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담보도 없었지만, 박씨는 자신과 거래를 자주 해왔던 지인의 신용을 믿고 물건을 건넸다. 특히 고려청자의 경우 유명한 TV프로그램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조선청화백자 또한 한국도자문화원에서 진품으로 감별된 물건이었다.

그러나 석가탄신일이 지나고도 대금 정산이 되지 않았고, 박씨가 여러 차례 독촉했으나 원씨는 연락을 피하기만 했다. 한 달이 넘도록 도자기값을 받지 못한 박씨는 결국 같은 해 7월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원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원씨의 신분을 특정하고, 출석요구서를 보냈으나 원씨는 조사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했다. 이에 체포영장까지 발부받아 추적에 나선 경찰은 서울 은평구의 가족 집에 숨어지내던 원씨를 수사 착수 4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붙잡아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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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피의자 일러스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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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 결과 주지 스님에게 도자기를 팔아주겠다는 원씨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건설업에 종사하던 원씨는 분양 시행대금이 부족해지자 이런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원씨는 박씨로부터 건네받은 도자기 두 점을 서울 동묘시장의 도자기 매매상에게 5000만원에 팔아넘겼다.

고려청자가 2억원, 조선청화백자가 4000만원 상당의 값어치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헐값에 넘긴 셈이다. 금이나 도자기 같은 경우 정상적인 경로로 판매하게 되면 거래장부를 작성해야 하는데, 장물이다 보니 쉽게 팔고자 매매업자가 제시한 터무니없는 가격에 물건을 넘긴 것.

경찰은 애초부터 대금을 치를 생각이 없었다는 점에 비춰 사기 혐의를 적용해 지난해 12월10일 원씨를 구속 송치했다. 결국 올해 2월7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원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으나 법원이 기각해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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