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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이안나기자] “기계가 완성된 다음에 쓴다면 ‘이삭줍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씨앗을 뿌리고 키워야 할 때입니다.”
지난 20일 연세대학교 송도 국제캠퍼스에 IBM 127큐비트 양자컴퓨터 도입을 발표하면서 이학배 양자선도융합사업본부장이 한 말이다. 양자컴퓨터 실용화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 속에서도 그의 발언엔 지금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실제로 양자컴퓨터가 산업 현장에서 폭넓게 활용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IBM은 지난해 ‘양자 오류 완화’ 기술을 발표했고, 2029년까지 ‘오류 수정’이 가능한 양자컴퓨터 개발을 완료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오류율 줄이기는 양자컴퓨터 실용화를 위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기술적 과제다.
하지만 IBM은 현재를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IBM 표창희 상무는 “우리는 이미 ‘양자 유용성’ 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양자 유용성이란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 능력을 뛰어넘어 신뢰할 수 있는 계산을 수행하는 단계다.
100큐비트 이상 대규모 양자 시스템에서만 이런 결과값을 얻을 수 있는데, 연세대에 설치된 127큐비트 시스템이 바로 이 단계에 해당한다. 연세대학교는 2026년 127큐비트 이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계획을 갖고 있다.
더 주목할 점은 3년 후다. IBM은 2026년이면 ‘양자 우위’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한다. 양자 우위란 양자컴퓨터가 고전적 컴퓨팅 방식을 넘어 실질적이고 중요한 이점을 제공하는 단계다. 표 상무는 “양자 우위가 달성되면 특정 연산에서 양자컴퓨터가 기존 방식보다 더 저렴하고 빠르며 정확한 해결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IBM은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상호 보완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IBM은 ‘퀀텀 센트릭 슈퍼컴퓨터’라는 양자컴퓨터와 고전컴퓨터의 하이브리드 방식 컴퓨팅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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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자 우위까지 가는 길목에서 현주소는 걱정스럽다. 국내 양자컴퓨팅 기술 수준은 미국(100점) 대비 2.3점에 불과하다. 중국(35점)은 물론 일본(28.5점)에도 크게 뒤진다. 전문 인력은 더 심각하다. 국내 양자 알고리즘 전문 연구원은 10명 이하라는 게 업계 평가다.
정재호 연세대 양자사업단장은 “대학이 나서야 하는 이유가 있다”며 “양자역학은 인류가 쌓아온 지성체계 최고봉으로, 이를 실용적 도구로 만드는 과정에서 대학 역할은 필수적”이라고 평가했다.
양자컴퓨터는 기업만으로는 완성하기 어렵다. 당장의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과 달리, 대학은 더 긴 호흡으로 기초 연구와 인재 양성에 집중할 수 있다. 특히 신약 개발이나 기후변화 예측 같은 인류 공통 난제는 학계의 광범위한 연구 과정이 필수다.
더 중요한 건 ‘양자문해력’ 향상이다. 연세대는 이를 위해 학부와 대학원에 양자 관련 정규 학위과정을 개설하고, 산업계 실무자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양자컴퓨팅이 새로운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만큼,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닌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바이오는 양자컴퓨팅 핵심 응용 분야다. 정 단장은 “최근 FDA 승인을 받은 유전자 치료제는 한 바이알(주사기 용량)당 46억원”이라며 “양자컴퓨팅으로 이런 개발 비용을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이미 반도체를 비롯한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이러한 산업 기반도 양자컴퓨팅 도약 발판이 될 수 있다.
연세대 양자컴퓨터 도입은 단순히 장비 구축을 넘어, 양자 유용성에서 양자 우위로 가는 과도기에,대학이 기초 연구와 인재 양성이라는 본연의 역할로 국내 양자컴퓨팅 생태계를 만들어가겠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IBM이 전망한 2026년 양자 우위 시대까지 연세대는 양자 바이오 클러스터 구축을 완료하고 전문 인력 양성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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