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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재명 기소, 미국 ‘정치적 기소 판별법’으로 따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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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월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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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정적’ 기소를 검찰에 맡겨도 되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위증교사 혐의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첫 제동이 걸렸습니다. 앞서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이 판결에 대해선 ‘선거에서 패한 후보에 가혹한 형량’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대통령 선거의 패자를 수사·기소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기소부터가 지나치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검찰은 19일 경기도지사 시절 관용차·법인카드 유용 혐의로 이 대표를 또 기소했습니다. 6번째 기소입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조차 “(관용)차량 이용은 간혹 공무인지 사적인 일인지 불명할 때가 많다”며 “그걸 어떻게 입증하려고 기소했는지, 그저 망신주기 기소가 아닌지 아리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기준으로 전국의 지자체장들을 먼저털듯 수사하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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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정치적 표적 기소’라고 규정해도 무방한 상황입니다. 제1야당 대표이자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인 정치인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수사·기소하는 게 ‘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논란 중인 검찰권의 ‘정치무기화’







우리와 유사한 논란이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그동안 4건의 기소를 당했고, 트럼프는 이를 정치적인 “마녀사냥”이며 “선거 개입”이라고 비난해왔습니다. 이 가운데 뉴욕 맨해튼지방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지난 5월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까지 나왔습니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과거 성관계를 맺은 여배우에게 입막음용 돈을 지불한 뒤 이 돈을 회사 법률비용으로 허위 기재한 혐의입니다. 그러나 법원의 최종 형량 선고가 여러차례 연기된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뉴욕 법원은 26일(현지시각)로 예정됐던 선고를 끝내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트럼프의 주장이 법률적 성공을 거둔 모양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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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1월14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열린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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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기소를 둘러싸고 정치 진영간 사법적 응징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미국 법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검찰권의 ‘정치무기화’를 경계하고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요한 정치적 인물이라고 해서 법 위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동시에 법을 정적 탄압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어느 지점에선가 상충하는 이 두가지 원칙을 조화시키는 방안입니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이안 에어리스와 버지니아대 로스쿨 교수인 사이크리시나 프라카시는 “미국은 국가형벌권(기소권)이 정적을 치는 몽둥이로 활용되는 ‘바나나 공화국’(부패한 권력자가 지배하는 불안정한 후진국)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며 이를 위해선 주요 정치인의 경우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심각’하고 ‘충분’한 혐의에 대해서만 기소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미 연구단체, 정적 수사·기소 정당성 판별법 보고서







그럼 어떤 사건이 기소할 만한 것인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미국의 한 연구단체가 지난해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습니다. 진영간 중립을 표방하는 연구단체 ‘프로텍트 데모크라시’(Protect Democracy)의 보고서 ‘민주국가에서 정치 지도자를 수사·기소한다는 것: 법의 지배와 수사·기소권 남용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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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구단체 ‘프로텍트 데모크러시’의 보고서.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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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텍트 데모크라시’는 보고서에서 “정치권력이 법 집행을 무기화함으로써 정적을 처벌하거나 자기편을 보호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이자 독재화의 조짐”이라고 비판하며, 특정 사건의 수사·기소가 정상적인 법 집행인지 아니면 정치적 의도가 깔린 부당한 법 집행인지 따져보기 위한 질문들을 제시합니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공개된 증거들에 근거해 범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는가?



○ 같은 유형의 사건으로 다른 사람들도 공평하게 기소되고 있는가?



○ 검찰이 정치적 수사·기소를 방지하기 위한 원칙을 천명하고 있나? 실제 이를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가?



○ 검찰이 정치권력과 접촉하거나 그 영향을 받는 것을 규제하는 규정이 있고, 이 규정이 지켜지고 있는가?



○ 대통령이나 주요 정치인이 해당 기소에 대해 언급하거나 개입하려 시도한 적이 있는가?



○ 수사·기소권 남용에 대한 검찰 안팎의 견제기구(대배심, 법원, 내부 감찰기구 등)는 어떤 입장을 보였는가?





대부분 우리 현실에도 적용할 만한 질문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직접 이재명 대표 기소 사건들에 대입해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우리가 미국과 다른 몇가지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지난번 이야기(9회 ‘김건희 기소, 미·일처럼 국민이 결정할 수 있다면?’)에서 소개한 것처럼 미국에서는 주요 사건의 경우 기소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것은 시민들로 구성된 대배심입니다. 검찰에 대한 직접적인 외부 통제기구입니다. 오로지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상황입니다.



또 5회 ‘미·독·프 어디에도 ‘하나의 검찰’은 없다’에서 소개한 것처럼 미국의 검찰은 우리처럼 단일한 조직이 아닙니다. 연방과 주 차원으로 나뉘어 있는데다 각 검찰청이 자율권을 갖습니다. 트럼프를 기소한 것도 연방 특별검사(2건)와 두곳의 주 검찰청(각 1건)입니다. 미국에서는 해당 사건을 다루는 개별 검찰청이 정치권력과 접촉하거나 영향을 받는 일이 있었는지가 중요합니다. 반면 우리는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검찰 조직이 모든 사건의 기소를 결정합니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은 정치권력과 한몸이 돼 마치 하나의 정치결사체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검찰 조직 전체가 일상적으로 정치권력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고 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검찰권의 ‘정치무기화’와 관련해 훨씬 더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할 것입니다.







주요 정치인 기소는 광범위한 국민 동의 전제돼야







‘프로텍트 데모크라시’는 특히 “대통령의 정적을 수사 대상으로 할 때 중대한 문제가 된다”며 “이때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기능해야 할 뿐 아니라 그런 독립성을 국민으로 하여금 믿게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 사적 대화에서든 공적 연설에서든 특정인의 혐의 유무와 기소 여부에 대해 언급하거나



○ 자신의 정치적·개인적 이해를 충족하기 위해 정적에 대한 수사를 비롯한 특정 수사의 필요성을 주장하거나



○ 정치적 동지나 가까운 개인에 대한 무혐의 처분 또는 수사 중단을 요구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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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1월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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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을 비춰보면 어떨까요?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재명 대표를 두고 “확정적 중범죄자”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반면 김건희 여사에 대해선 여러 가지 혐의를 부인하며 두둔하는 말을 했습니다. ‘김건희 특검법’은 세번째 거부권 행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형사사법과 거리를 두고 중립적으로 행동한다고 여기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프로텍트 데모크라시’ 보고서의 핵심을 정리하면, 주요 정치인에 대한 수사·기소는 △공개된 증거들이 충분해야 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정치권력의 개입 정황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다수 국민들이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고서는 프랑스·이탈리아· 포르투갈의 전직 총리들, 아르헨티나의 전직 대통령 등 정치적 인물에 대한 외국의 수사·기소 사례를 들며, “사실관계와 법 적용에 대해 광범위한 국민들이 정당한 기소라고 받아들였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우리나라의 전례를 보더라도 전직 대통령 형사처벌은 광범위한 국민적 요구가 뒷받침될 때 이뤄졌습니다. 역대 정권에선 검찰도 야당 지도자 형사처벌에 극히 조심스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면 지금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재명 대표, 트럼프 당선자 기소는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치적 기소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상당수에 이릅니다. 그 배경에는 검찰의 중립성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습니다.







검찰 아닌 ‘제3의 기구’에 맡기자는 제안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불신받는 상황에서 정치인 기소 판단을 검찰에만 맡겨둘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제도적 구상이 필요합니다. 에어리스 교수와 프라카시 교수는 공저 논문 ‘정치인 기소를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2023)에서 검찰권이 ‘정적 죽이기’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배심에 더해 또 하나의 여과 장치를 두자고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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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예일대 로스쿨의 이안 에어리스 교수.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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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전직 검사 배심원단’ 제도입니다. 공화·민주 양당의 전직 대통령들이 연방검사 출신 변호사들 가운데 10명씩 추천하게 해 총 20명으로 배심원단을 구성하고, 이들로 하여금 대선 후보, 현직 의원 또는 후보 등 주요 정치인에 대한 기소가 정당한지를 먼저 심사하게 하는 방안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 3분의 2 이상(14명 이상)이 동의하는 사건만 대배심에 넘겨 기소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들은 검사 출신인 만큼 증거가 충분한지를 전문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무엇보다 기소 대상자가 소속된 당에서 추천한 10명 중 최소 4명이 동의해야 기소가 가능한 구조이므로 ‘정치적 기소가 아니다’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나아가 저자들은 ‘검사 배심원’이 사건을 심리할 때 증거가 충분한지와 더불어 기소를 통해 얻어질 국가적 이익과 기소하지 않을 때 얻어질 다른 국가적 이익을 비교해 판단해야 한다고 합니다. 민주주의와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 국제적 평판 등도 고려 요소로 제시됩니다.



저자들은 시뮬레이션도 해봤습니다. 역대 공화·민주당 정권에서 임명됐던 연방검사 출신 50여명을 대상으로 트럼프가 받고 있는 여러 혐의들에 대해 각각 기소가 타당한지 물었습니다. 당연히 공화당 정권 출신은 부정적, 민주당 정권 출신은 긍정적 답변이 많았지만, 의외의 결과도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퇴임 때 백악관에서 기밀 문건을 무단 반출한 혐의에 대해선 공화당 정권 출신도 63.3%가 ‘기소 타당’ 의견을 낸 것입니다. 이 혐의에 대해서만큼은 전체적으로 74.2%가 기소에 동의해 ‘3분의 2 이상’이라는 요건을 넉넉히 충족했습니다.







민주정치 왜곡하는 검찰의 정치개입 막아야







주요 정치인을 기소하는데 이처럼 까다로운 장치를 두게 되면 ‘법 앞의 평등’ 원칙에 위배되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주요 정치인이 관련된 사건의 경우 일반적인 사건보다 ‘부당한 기소가 초래하는 해악’이 더 크다는 점을 들어 반박합니다. 부당한 기소로 인한 인권 침해 등의 일반적 폐해에 더해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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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위증교사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 앞에 모인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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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요 정치인에게 형사상 특혜를 주는 제도는 이미 존재합니다. 대통령의 재임시 면책특권이나 국회의원의 회기중 불체포특권 같은 게 그것입니다. 이 역시 형사사법이 정치에 부당하게 개입해 민주주의를 위협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만 생각한다면 이런 제도도 폐지해야 맞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법치주의와 배치된다고 여기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주요 정치인에 대한 기소를 까다롭게 만들면 실제 혐의가 존재하는데도 기소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비용’보다 부당한 기소를 막음으로써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는 ‘편익’이 더 크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열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된다’는 형사사법의 원칙을 확장한 셈입니다.



에어리스 교수와 프라카시 교수는 유력 정치인을 겨냥한 정치적 수사·기소의 남발은 미국을 “바나나 공화국”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글을 맺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이미 그런 지경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제도에는 검찰의 표적 기소를 막을 아무런 실효적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특히 선거법 위반 사건처럼 정치적 영향이 직접적인 사건의 기소 여부를 오로지 검찰에 맡기는 것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입니다. 주요 정치인이 관련된 사건에는 미국 대배심과 같은 시민참여 제도를 우선적으로 도입하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이 무죄로 확정된다면, 부당한 기소로 인한 피해는 이재명 개인에게 그치지 않습니다. 제1야당 대표로서의 활동이 재판으로 지장을 받은 것은 물론, 기소로 인한 정치적 타격과 소모적인 정쟁 등은 민주적 정치 과정을 왜곡해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준 게 됩니다. 대통령의 정적에 대한 검찰의 ‘아니면 말고’식 기소, 법 집행을 빌미로 한 검찰의 정치 개입을 철저히 막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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