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의 호소, '사상누각'
성과와 윤리성 부재가 만든 위기
[산업부 임효진 기자] |
[이코노믹데일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5일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 결심 공판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발언 시간을 가졌다.
5분간의 최후진술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개인적 이익을 챙길 의도가 없었다”며 “그럼에도 여러 오해를 받는 것은 제 부족함과 불찰 때문”이라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의 ‘근본적 위기’를 직접 언급하며 현실이 녹록치 않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소명에 집중할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여기서 눈에 띈 단어는 '소명'이었다. 소명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까닭이나 이유를 밝혀 설명함', 다른 하나는 '재판에서 당사자가 증거를 제출하려고 노력함'의 뜻을 갖고 있다. 후자에서 증거는 물질에 의한 증명이 아닌 재판관의 마음을 얻기 위한 호소다.
자연스럽게 이 회장이 말한 소명은 두 가지로 해석됐다. 첫째는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 삼성이 일류 기업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고 둘째는 재판부에 자신이 신뢰할 만한 존재라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호소였다.
단순한 법적 주장에 그치지 않고 감성에 호소함으로써 재판관을 설득하려는 시도로 여겨졌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세 가지 핵심 요소로 로고스(이성), 파토스(감성), 에토스(인격)을 꼽았다.
감성은 이성보다 강하지만, 설득의 가장 강력한 요소는 인격, 즉 신뢰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과 함께 감성에 호소한 이 회장이 신뢰감을 보여줬는가 물을 수밖에 없다.
경영자를 향한 신뢰는 성과와 윤리성으로 결정된다. 지난 8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위해 분식회계를 했다고 인정했다.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엘리엇이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한 뒤 삼성은 정부와 공모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났다. 윤리성도 잃었다.
성과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1위인 대만의 TSMC와 격차가 더 벌어졌고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은 SK하이닉스에 내줬다. 삼성전자 주가는 한때 4만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지배구조를 향한 불신 때문이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이 회장의 호소가 설득력 없게 느껴지는 이유는 스스로 인정한 ‘삼성의 위기’가 그의 신뢰감을 무너뜨린지 오래여서다. 이 회장에게 삼성의 위기를 막을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성과 없는 경영이란 '모래 위에 쌓은 누각,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임효진 기자 ihj1217@economi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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