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죽신 이제 안 통하나?
연말 입주를 앞두고 있는 경기 광명뉴타운 ‘트리우스광명’ 단지 전경. (윤관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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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7호선 광명사거리역 8번 출구로 나와 약 7~8분쯤 걸었을까. 멀리 신축 아파트 단지 한 곳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미 도색 작업은 마무리됐고 사전점검까지 마친 단지다. 광명2구역을 재개발한 ‘트리우스광명(이하 트리우스)’이다. 대우건설과 롯데건설,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을 맡은 이곳은 3344가구 규모 대단지다. 북쪽으로는 목감천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개봉교를 경계로 한다. 동쪽으로는 광명자이더샵포레나, 남쪽으로는 광명센트럴아이파크, 광명자이힐스테이트SKVIEW와 맞닿아 있다.
올해 12월 입주를 앞두고 있는 트리우스에서 최근 마이너스 프리미엄(마피)이 붙은 매물이 속출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트리우스는 이래저래 사연이 많았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절정에 이르던 2021년 11월 분양을 하려고 했지만 당시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던 시기였다. 3.3㎡당 평균 2000만원 선에서 분양 가격이 결정됐다.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 때문에 조합 측에서는 선분양을 포기하고 착공에 들어갔다. 이후 정부가 지난해 ‘1·3 대책’을 통해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 지역의 민간 택지에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해제했다. 동시에 트리우스 일반분양 가격을 올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난해 10월 트리우스는 일반분양에 나서면서 분양가를 3.3㎡당 평균 3270만원으로 책정했다. 전용 84㎡ 분양 가격은 약 11억~12억원, 전용 59㎡의 경우 8억~9억원대로 주변 시세 대비 다소 비쌌다. 고분양가 논란에 휩싸이면서 트리우스 1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2.53 대 1에 그쳤다. 당시 광명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청약 성적이 좋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1순위 완판되기는 했지만 이후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일반분양 물량 중 약 20%(517가구 중 105가구)가 미계약 물량으로 남았다. 무순위 청약을 수차례 진행한 끝에 올해 8월이 돼서야 마지막 미분양 물량 16가구를 털어내면서 분양을 마무리했다.
트리우스는 올해 11월 초 사전점검을 마치고 점등식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현재 시장 분위기가 좋지는 않다. 동·호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분양가보다 낮은 마피 매물이 쏟아진다.
폭증하는 광명 입주 물량
내년까지 1만4000가구 준공 예고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트리우스 전용 84㎡ 기준 최대 5000만원 마피가 붙은 매물이 등장했다. 현재 나온 매물 중 입지가 상대적으로 좋은 1단지의 경우 무피 매물이 많으며 간혹 500만~1000만원 프리미엄이 붙은 매물도 보인다. 반면 2단지는 상당수 매물에 마피가 붙어 있다. 적게는 마피 500만원부터 최대 마피 5000만원까지 시세가 형성됐다.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가구나 투자자 물량을 중심으로 마피가 형성되고 있다”면서도 “워낙 대단지기 때문에 전세가 또한 예상보다 시세가 낮다”고 말한다.
올해 수도권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신축 전성시대였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사비 상승에 따른 공급 부족 우려와 금리 인하 기대감이 맞물리며 신축 아파트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했다. ‘얼죽신(얼어죽어도 신축)’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로 신축 선호 현상이 강했다.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대출 규제다. 시중은행이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대출을 틀어막아 한도 자체가 많이 줄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 등도 영향을 줬다. 잔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집주인들이 늘어나면서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통상적으로 대단지 아파트 분양권을 보유한 사람들은 크게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무주택자로 실거주 계획이 있는 가구다. 이들은 대체로 분양권을 확보했을 때부터 자금 조달 방법을 마련했다. 대출 규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겠지만 그조차도 계산에 넣어둔다. 준공과 동시에 입주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 번째는 실거주 계획은 있지만 대출 한도나 금리에 따라 실거주 여부를 결정하는 가구다. 주로 1주택자가 이에 해당한다. 실제 입주할지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세 번째는 준공 전 매도하는 것이 우선순위지만 마피가 붙는 등 시세가 떨어지면 입주 혹은 임대로 선회할 수 있는 이들이다. 두 번째 유형과 세 번째 유형은 임대 계획도 있기 때문에 향후 전세 시세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분양권 상태일 때 무조건 매도할 수밖에 없는 경우다. 주로 10% 계약금만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다. 입주를 하거나 최소 전세로 임대를 주려면 분양가 대비 최소 40% 자금이 필요하다. 이들은 이조차 마련이 불가능하다.
입주 당시 마피가 속출하는 단지들은 상당수 마지막 유형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입주가 코앞이지만 단기간에 수억원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손해를 감수하면서 매도에 나서면서 마피 매물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세가 인근 대비 20% 낮아
가격 하락 신호탄 vs 입주장 후 회복
물론 광명 신축 아파트 단지가 모두 마피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 올해 10월 입주한 호반써밋그랜드에비뉴와 철산자이더헤리티지의 경우 분양가를 훌쩍 넘는 가격에 시세가 형성됐다.
다만 이들 단지는 대체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했다. 호반써밋그랜드에비뉴의 경우 전용 84㎡ 기준 8억원 초중반대로 트리우스와 비교해 분양 가격 자체가 1억~2억원 차이가 난다. 철산자이더헤리티지 역시 인근 시세 대비 분양 가격이 저렴했다.
반면 트리우스는 인근 시세 대비 분양가를 더 높게 책정하면서 입주 시기가 다가오자, 마피 매물도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광명의 경우 광명뉴타운과 인근 철산동 일대에 내년까지 약 1만4000가구 입주 물량이 쏟아진다.
올해 10월 호반써밋그랜드에비뉴(광명10구역, 1051가구)를 시작으로 올해 12월 트리우스(3344가구), 내년 5월 철산자이더헤리티지(철산주공8~9단지, 3804가구), 내년 11월 광명센트럴아이파크(광명4구역, 1957가구), 내년 12월 광명자이더샵포레나(광명1구역, 3585가구)가 입주를 기다린다.
2027년까지 시계를 넓혀보면 입주 물량은 약 2만가구로 늘어난다. 2026년 1월 철산자이브리에르(철산주공10~11단지, 1490가구), 2027년 자이힐스테이트SK뷰(광명5구역, 2878가구)와 롯데캐슬시그니처(광명9구역, 1509가구) 등이 대기 중이다.
입주 대기 물량이 많다는 점은 당장 전세 시세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
트리우스 전세 시세는 전용 84㎡ 기준 4억원 후반대에서 5억원에 시세가 형성됐다. 광명14구역을 재개발한 광명푸르지오포레나(2023년 9월 준공) 전용 84㎡ 전세가 올해 초 5억원 후반대에서 6억원까지 거래된 것을 감안하면 인근 시세 대비 약 20% 낮다. 앞으로 2~3년 동안 광명에 끊임없이 새 아파트가 쏟아진다면 전세가 회복은 당분간 요원하다. 전세가 하락은 앞서 언급한 두 번째, 세 번째 유형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면서 그 지역 전체에 변화를 가져온다.
결국 광명 부동산 시장은 ‘일부 단지 마피 형성 → 2025년 입주량 증가 → 전세가 하락 → 매매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2~3년 후 모든 단지 입주가 마무리되면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광명은 수도권 서남부 지역에서 가장 선호하는 지역 중 하나기 때문에 주변 지역에서 끊임없이 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광명은 2027년까지 입주가 이어지고 장기적으로 광명시흥 3기 신도시가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 불안 요소다. 광명이 갖고 있는 입지적 장점이나 개발 호재 등을 감안하면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향후 1~2년이 매수자 우위 시장에서 내집마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강승태 감정평가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6호 (2024.11.27~2024.12.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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