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발언을 듣고 처음에는 황당했다. 이 엄중한 시기에 카카오 쇄신의 중책을 맡은 사람이 카카오 문제의 원인을 임직원들의 과한 골프로 꼽다니 말이다. 본질을 회피하려는 꼼수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삼성전자 위기론을 접하면서 이 발언을 다시 곱씹고 있다. 삼성전자의 위기 관련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는데 거의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원인은 삼성전자에 언젠가부터 ‘공무원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직이 위기에 닥칠 때마다 문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조직문화는 조직의 성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경제학자들이 풀지 못하는 국가 간, 기업 간 생산성 차이의 원인을 문화나 관습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조직의 위기 돌파를 위해 홍위병을 동원한 ‘문화대혁명’을 하려는 거 아니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결국 문화에 있어서도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연구를 보자. 미국 S&P 500 기업의 홈페이지를 분석했는데 85%가 ‘기업문화’라고 부르는 섹션이 있으며, 이는 모든 직원이 지침으로 삼아야 할 원칙과 가치를 다루고 있다. 가장 흔히 언급되는 가치는 ‘혁신’으로 80%, 그다음으로 ‘정직’과 ‘존중’이 70%이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말로 기업문화를 천명하는 것과 기업의 성과와는 아무런 연관관계도 없었다. 아무도 이런 뻔지르르한 말에 감동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원들이 최고경영진을 신뢰하고, 최고경영진이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생산성과 이윤이 증가한다. 직원들은 리더의 말과 행동을 보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는 최고경영진을 대상으로 질문했다. 92%의 경영진이 자사의 문화를 개선하면 기업가치가 증가할 것이라고 믿는 반면, 이들 중 단 16%만이 자사의 문화가 좋다고 대답했다. 최고경영진은 기업문화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바꾸지 않고 (또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바꾸지 않나? 놀라운 것은 응답자의 약 20%가 최고경영진이 기업 문화의 변화를 저해한다고 대답했다. 최고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라는 점에서 이는 일종의 자기고백이다.
한국사회의 중요한 리더는 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이다. 그런데 최근 위기를 겪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삼성 이재용 회장 그리고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묘하게 통한 부분이 있다. ‘측근 중심의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측근 중심 인사가 조직에 주는 신호는 ‘우리 보스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이다. 왜 이 세 명은 사람을 믿지 않는 것일까? 사람을 믿지 않는 원인으로는 경제적 실패 경험, 소수집단 소속으로서의 차별 경험, 거주지역 내의 갈등 경험 등이 있는데 세 명은 해당 안 된다. 남는 것은 최근에 겪은 외상(trauma)이다. 윤 대통령의 최근 외상은 통화녹취 공개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재용 회장과 김범수 의장의 최근 외상은 검찰조사이지 싶다. 배신과 실망이 난무하는 상황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리더가 측근들에게만 계속 의지하고 측근들이 모든 걸 게이트키핑 하면 조직은 망가진다는 것이다. “나는 매몰차지 못했는데 돌아오는 건 배신이구나,” “검찰조사를 받아보니 임직원 중에 믿을 놈 없더라” “충신만 믿고 가자” 이런 생각에 세 명이 매몰되면 본인들의 마음은 평온할 수 있으나 한국의 미래는 불행해진다. 신뢰 없는 조직에 혁신은 없다.
본인들은 본인들이 리더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약 400년 전 아프리카 노예무역에 관한 연구를 보면 40%는 납치, 25%는 전쟁 포로로 노예가 됐는데 놀랍게도 20%는 가족이나 친구의 배신에 의해 노예로 팔려갔다. 가족, 친구를 노예상인에게 팔아넘기면 총기나 무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신으로 자기를 보호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경험은 오늘날 아프리카를 옥죄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의 낮은 신뢰수준의 기원이 노예무역에 있어서의 배신의 기억이다. 리더들이 조직을 ‘불신지옥’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 경제적 부작용은 상상 이상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짧게 살고 천천히 죽는 ‘옷의 생애’를 게임으로!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