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플라스틱 협약 협상이 진행되는 벡스코 안에 운영되는 카페. 모든 식기가 플라스틱이 코팅된 일회용품으로 제공되고 있다. 플뿌리연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회의장 앞에 있는 카페로 갔는데 코팅된 일회용 종이컵에 커피를 제공하고 있더라구요. 주문할 때 ‘쿠키는 그릇에 담지 말고 냅킨에 싸주면 된다’고 했는데, 일회용 접시에 담아서 내오기도 하고….”
26일,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정부간협상위원회에 ‘옵저버’ 자격으로 참여한 유혜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황당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4000명가량이 모인 회의에서 플라스틱 컵과 함께 대표적인 일회용품인 종이컵을 통해 커피가 제공된 것이다. 실제로 이날 전 세계에서 모인 회의 참여자들은 각양각색의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환경보존’의 의지를 보였지만 한쪽에선 일회용품이 제공되고 있었다. 유 활동가는 “‘플라스틱 협약이 논의되는 곳에서 어떻게 이렇게 일회용품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나’,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밝혔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옵저버들은 협상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을 포함해 진행되는지, 특히 산유국이나 로비단체에 의해 영향받지는 않는지 지켜보는 구실을 한다. 그런데 공간이 협소하단 이유로 이들이 회의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거나 들어가기 위해 ‘오픈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유 활동가는 “오늘 아침 10시에 시작되는 그룹 회의에 참여하려고 30분 일찍 회의장에 도착했는데 입구에 차단봉을 따라 쭉 서있는 줄이 보였다. 줄을 섰지만 끝내 ‘옵저버를 위한 의자가 다 찼으니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라. 담당자에게 바닥에 앉아서 참여할 순 없는지 물었는데 그건 허락되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유 활동가는 그렇게 허탈한 심정으로 근처 카페로 향했고, 거기서 일회용 종이컵이 제공되는 풍경을 본 것이다.
부산 국제 플라스틱 협약 협상에 참여하는 옵저버(시민사회)가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해 자리가 나길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플뿌리연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국내외 시민단체들의 연대체인 ‘플뿌리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뽑는 연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회의 첫날부터 최악의 정부간협상위원회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최국인 우리 정부의 대응에 부족한 부분이 있어, 회원국과 옵저버들의 참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 정부는 그간의 모든 협상위 회의를 참여해왔으며 개최국 연합의 소속국가로 활동하고 있다”며 “현재 발생 중인 회의장 관련 문제는 이미 예견되었으며 이에 한국 정부는 대비하겠다는 답변을 한 바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협약의 주요 이해관계자인 원주민이나 쓰레기 수거자(웨이스트 피커)들은 인도, 캐나다 등에서 비용 및 생계 부담을 안고 이번 회의에 참석했으나 정작 회의장 내 참석하지 못해 큰 좌절을 표했다”며 “옵저버들 사이에서는 ‘최악의 협상위’라는 평까지 나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국내외 시민사회는 유엔환경계획(UNEP)과 한국 정부에 넓은 회의장 확보를 요청했으나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길 뿐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시민사회’(Civil Society and Rights Holders Coalition)는 이날 유엔환경계획과 한국 정부에 성명서를 제출하고 회의장을 확장하거나 타 회의실과 통합해 수용 인원 최대화할 것, 인원이 많이 참석하는 중요한 세션을 더 큰 회의실로 조정할 것, 다른 회의장에서 생중계 중계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 등을 전달했다고 플뿌리연대는 밝혔다.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핫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