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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염재호 칼럼] 사회학과의 장례식과 맹목적 사회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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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


지난 7일 대구의 한 대학교에서는 45년 만에 사회학과가 문을 닫게 되어 장례식을 치렀다. 인문학을 대표하는 문·사·철 전공이 위기여서 ‘문송하다’라고 했는데, 이제 사회과학의 기초학문인 사회학과까지 위기에 처하게 됐다.

2024년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전국 4년제 대학 247개에서 사회학과가 개설된 대학은 48개에 불과하다. 사회학과 재학생 전체도 2014년 6823명에서 2024년 5246명으로 줄었고 휴학생도 1803명에 달한다. 전국 대학에 개설된 학과가 총 1만3474개이고 재학생도 전체 161만 명이나 되는 것에 비하면 너무 낮은 비중이다. 반면 경영학 관련학과는 826개, 행정학 관련학과는 409개이고, 사회학 관련 응용학과인 가족 및 사회복지학과도 454개나 되는데 기초학문인 사회학은 대학에서 홀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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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전 경북 경산시 대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누리마당 앞에 설치된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추모공간'에서 사회학과 교수가 묵념하고 있다. 대구대 사회학과 학생들과 교수들은 내년 사회학과 폐과를 앞두고 전날부터 메모리얼 파티(장례식) 학술제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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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광풍 같은 맹목적 교육열기

AI로 변화할 삶과 직업 이해 못해

사회과학 지원했던 최종현 회장

AI 시대 예견하는 지혜 갖추어야

사회학은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학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사회학은 왜 이런 위기에 빠지게 되었나? 사회학의 대가 피터 버거 교수는 학계도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자전적 저서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에서 오늘날 사회학이 두 가지 병을 앓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을 한다. 사회학이 맹목적 방법론 숭배와 이데올로기 편향으로 학문이 추구해야 할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기초학문을 도외시하고 취업에 유리한 전공에만 몰려든다. 의대 광풍으로 초등학교 2학년생이 중학교 수학을 배우는 초등 의대반 사교육이 성행한다. 조기교육뿐 아니라 의대 진학을 위한 수능 N수생도 급증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 자료에 의하면 2022년 전국 191개 대학 총 졸업생 취업률은 66.3%에 불과하다. 올해 임금 근로 일자리 중 20대 이하 신규 채용은 작년보다 8.6% 줄었고 30대도 5.3%나 감소했다. 그러니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취업이나 전문직에 유리한 학과에 몰리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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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분기 임금 근로 일자리 중 20대 이하 신규 채용 일자리는 145만4000개를 기록해 전년 동기(159만개) 대비 13만 6000개(8.6%) 감소했다. 2분기 신규 채용 일자리는 2018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적은 수치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대학교 채용 게시판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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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IT 발전과 AI 활용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하면 기존 일의 형태는 급격하게 바뀔 것이다. 2024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AI가 2028년이 되면 기존 업무의 44%까지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했다. 2030년이 되면 85%의 직업이 20세기에는 존재하지 않던 직업이라는 예측도 있다. 직업의 형태도 회사에 취직하는 취업 형태가 아니라 유튜버나 웹툰 작가 등과 같은 개인 중심의 창직(創職) 형태가 더욱 활발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정보처리, 법무, 회계, 교육, 소프트웨어 개발과 같은 반복적 사무업무들이 먼저 AI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의료계도 AI의 등장으로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되고 원격의료가 보편화할 것이다. 자동차가 등장하자 마차를 몰던 마부가 직업을 잃게 되는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1920년에 100만대에 불과했던 미국 자동차 대수는 1929년에 2900만대가 되어 9년 만에 29배나 늘었고, 운전기사 직업도 마부 직업보다 수천 배 늘어났다.

20세기 대량생산 방식의 제조업과 관료제 사무에 익숙한 우리는 21세기 AI가 몰고 올 시대 변화에 둔감할 수 있다. 그러나 만 년 이상의 인류역사에서 인간이 회사에 취업해서 먹고 산 기간은 고작 100여년에 불과하다. 이제 취업보다는 AI를 활용하는 프로페셔널 프리랜서들의 시간제 맞춤형 일자리인 ‘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대세를 이룰 것이다. 이런 빠른 변화 속에서 20세기에 주목을 받았던 직업을 위한 교육에 올인하는 것이 현명한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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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6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한국고등교육재단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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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최종현 선대 회장이 사비를 출연해 설립한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1974년 일인당 국민소득이 400달러에 불과했는데 당시 작은 단독 주택 한 채 값에 달하는 미국 사립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매년 재단 장학생들에게 지원했다. 그것도 이공계가 아니고 사회과학 인재로 시작했다. 사회과학 지원의 이유로 최종현 회장은 앞으로 사오십년 후가 되면 한국은 경제 대국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회가 복잡해져서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예견대로 우리는 지난해 일인당 국민소득 3만6194달러를 달성해 일본을 추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반면에 정치와 사회 갈등은 심화하여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AI가 기존의 전문적 일들을 대체하게 되면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몫이 될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도 없이 우리 사회가 의대 광풍처럼 맹목적으로 휩쓸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AI 시대에 더 필요한 소프트파워 역량을 키워줄 인문학과 사회학이 대학 사회에서 종언을 고하는 것은 우리 사회 지성의 몰락일 뿐 아니라 AI 시대 변화를 예견 못 하는 어리석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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