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르다 따질 문제 아냐…본질은 당권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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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격태격하다 쇄신론 실종, 민생부터 챙겨주길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한동훈 대표와 가족의 이름으로 윤석열 대통령 비방 글이 수백 건 올라왔다는 의혹을 두고 벌어진 여당의 내분이 점입가경이다. 그제 최고위원회의에선 김민전 최고위원이 “‘한동훈 사퇴’ 글을 (게시판에) 쓰면 고발당하나”라고 한 대표를 겨냥했다. 이에 한 대표가 “발언할 때는 사실관계를 좀 확인하고 말하라”고 반박하는 모습이 TV에 그대로 흘러갔다. “기사를 보고 말하는 것이다”(김 최고위원), “그 기사를 제시해 봐라”(한 대표)는 공방이 이어졌고, 친윤·친한 참석자들도 언쟁을 벌였다. 여당이 한 지붕 두 가족으로 갈려 말로 패싸움을 벌이는 모습이다. 정말 스스로 망하기로 작정한 조직 같다. 집권당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뒤 당원 게시판 논란과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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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안은 사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따질 거리도 못 된다.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도 아니다. 친윤의 주장은 “한 대표가 자신의 가족이 그런 짓 한 적이 없다고 딱 한마디만 하면 모든 게 깔끔하게 끝나는데 왜 안 하느냐”는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는 있다. 하지만 한 대표가 그걸 밝혀야 할 법적 의무도 없다. 정치적 결단의 문제일 뿐이다. 그걸 안 하겠다는 한 대표를 붙잡고 흠집을 낼 이유도 없다. 오로지 당내 권력 다툼일 뿐이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익명성이 보장된 게시판 소동 자체가 나를 흔들고 끌어내리려는 의도”라고 반박하는 친한 측의 논리도 구차하다. 정치인이라면 정치로 풀 생각을 해야지 언제까지 익명성 운운하며 법률적 논리에 머물러 있는가. 또 “게시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 대부분이 명태균 리스트과 관련된 인물들”이란 역공도 적절치 않은 물타기다.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짚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정치적으로 사과하면 그만인 일이다. 윤 대통령도, 한동훈 대표도 검사 출신들은 왜 이렇게 사과에 인색한 것인가. 이러니 ‘검찰 출신 정치인의 한계’란 지적이 나온다.
친윤·친한이 게시판을 놓고 티격태격하는 사이 정부·여당 쇄신론은 쑥 들어가고 말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칼을 뽑아든 관세 전쟁, 의료대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 예산 확보 등 민생 현안에 대한 논의는 주도권이 야당에 넘어간 양상이다. 국민들 눈에는 이재명 대표가 위증교사 재판 1심에서 무죄를 받자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똘똘 뭉쳐 눈물 흘리는 모습도 기괴했지만, 당원 게시판을 놓고 벌이는 집권당의 자중지란이 더 한심하고 볼썽사납게 비쳤다. 자기 기득권 지키기에만 늘 안주해 온 보수정치는 이래서 자멸하는구나란 생각이 절로 든다.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이런 게시판 논란에 더 이상 몰입할 때가 아니다. 2주 넘게 옥신각신한 이 문제 말고 이제는 친윤·친한 모두 민생 개혁과 여권 쇄신 쪽에 힘써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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