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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치료 못하는데…" 응급실 뺑뺑이 책임론에 들끊는 의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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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의정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9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월 27일 오후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응급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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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한 10대 환자를 “신경외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수용 거부한 병원의 대응은 응급의료법 위반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오자 의료계에선 “부당한 판결”이라는 반발이 일고 있다.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 의료사고 발생 시 의사들에게 법적 책임을 지우는 법원 판단이 잇따르면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은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구가톨릭대병원을 설립·운영하는 학교법인 선목학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을 받은 뒤 항소했다. 서울행정법원 12부(부장판사 강재원)가 지난 9월 26일 선고한 해당 판결을 법원이 최근 밝히면서 병원 측의 항소 사실도 알려졌다.

사건은 지난해 3월 대구의 한 4층 건물에서 17세 A양이 추락해 머리와 다리를 다치면서 시작됐다. 출동한 119구급대는 병원 2곳에서 수용 거부당한 뒤 대구가톨릭대병원에 연락했으나, 병원 측은 “신경외과 의료진이 없다”며 거부했다. 구급대는 응급실 3곳에 더 전화했으나 잇달아 거절당했고, 대구가톨릭대병원에 다시 수용 가능 여부를 물었지만 재차 거부당했다. 결국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던 A양은 구급차 안에서 심정지가 왔다. A양은 사고 발생 2시간 30여분만에 응급실에 이송됐지만, 심장박동 회복을 위한 처치 중 숨졌다.

해당 사건을 조사한 보건복지부는 대구가톨릭대병원 등 병원 4곳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없다’는 응급의료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시정명령과 6개월 보조금 지급 중단 처분을 내렸다. 복지부는 행정처분 당시 병원이 위반한 사항에 대해 “환자에게 어떤 진료가 필요할지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신경외과 의료진 부재를 이유로 한 수용거부의 정당성은 인정되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측이 이런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복지부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응급환자를 직접 대면해 진단 결과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하거나 전원조치 등을 취하지 않았다”며 “환자에 대한 기초적인 1차 진료조차 하지 않은 채 구급대원이 통보한 환자의 상태만을 기초로 응급환자인지 여부와 진료과목을 결정한 다음 수용을 거부해 최선의 조치를 취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간 응급환자가 여러 병원을 떠도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종종 발생했지만, 법원이 환자 수용을 거부한 병원의 책임을 인정한 적은 없었다.

의료계에선 응급의료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런 판결은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응급의학과를 사직한 전공의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는 정말 응급실로 돌아가면 안 되겠다. 응급의학과 입장에서 최종치료가 불가능한데, 저런 환자를 어떻게 받으라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적었다.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심장만 뛰게 하면 되는 것이냐”라고도 반문했다.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 최종치료가 안 되는 병원이 환자를 무리하게 수용하면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이렇게 응급실 수용거부의 정당성을 두고 갑론을박 벌어지는 건 응급의료법상 환자를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 모호한 영역으로 남아있었던 탓이다. 복지부는 지난 9월 ‘응급의료법상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을 마련했지만, 해당 판결에는 이런 지침이 적용되지 않았다.

지침에 따르면 ‘응급의료기관 인력·시설·장비 등 응급의료자원의 가용 현황에 비추어 응급환자에게 적절한 응급의료를 할 수 없는 경우’는 정당한 진료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 이 지침에 따르면 대구 사건 관련 병원들의 수용 거부도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 다시 따져봐야 해 단순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모호한 의료사고에 대해선 의료진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법원의 지적처럼 응급실 의사들이 기본적인 1차 진료조차 꺼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의료계 목소리도 있지만, 이 역시 그간 최선을 다한 치료에도 법적 책임을 묻는 판결이 누적되면서 형성된 분위기라고 토로한다. 가령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한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해 의료계 반발을 샀다.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B 교수는 “10~20분 내에 처치 받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는 초응급 환자라면, 배후 진료과 의료진 유무를 떠나 가까운 병원에서 일단 처치한 뒤 전원을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도 “현실적으로는 한번 환자를 수용하면 그 뒤에 환자를 받아줄 다른 병원을 찾기 상당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단 환자를 살려놓더라도 최종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환자가 악화되면,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은 처음 환자를 받은 응급실 의사가 오롯이 떠안게 된다”며 “이 때문에 처음부터 환자를 받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도권 지역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C 교수도 “초기 응급 치료에 소극적인 분위기가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만든 건 오랜 시간 누적된 사법부의 판결들”이라며 “최선을 다해 치료해도 안타까운 사망이 발생할 수 있는 게 응급의료인데, 의사에게 형사적·행정적 책임을 물어 진료를 위축시켰다. 이런 부분에 대한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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